희생한 자의 바람은 단 열매다
목사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해 설명하실 때마다 그 희생이 주는 의미를 이렇게 말씀하신다.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겐 축복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해외집회를 위해 비행기를 탈 때마다 정말 깊이 감사합니다. 물론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지만, 이 나라의 오늘을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들께 깊이 감사합니다. 일제식민치하에서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아니했던 분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전쟁터에서 이름도 빛도 없이 죽어간 분들,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 와서 죽어간 타국의 젊은이들, 독일의 광부로, 간호사로 일하며 조국근대화의 초석이 되었던 분들, 정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피와 땀과 눈물을 쏟아낸 분들이 있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곰곰이 생각해볼 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순국선열들이 오늘의 세대에게 바라는 점이 무엇일까요? 알지도 못하는 나라로 아들들을 보내 죽고 심지어는 주검조차 찾지 못한 가족들, 그 나라 사람들이 진정 우리나라에 바라는 점이 무엇일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하나입니다. 바로 자신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기를 바랄 것입니다. 6.25 참전용사들이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감개무량해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부모세대들이 끼니를 굶어가며 죽도록 고생하여 자녀들을 교육시킨 이유도 더 좋은 환경에서, 더 넉넉하고 풍요롭게 자유를 구가하며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랄 것이 분명합니다. 바로 희생한 자들이 바라는 것은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고 풍성한 단 열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주는 진정한 의미도 바로 여기에서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분의 희생을 생각하며 그분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것은 오직 그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복된 소식을 전하는 것 이상일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뜻을 곡해하여 자신의 몸을 학대하며 가난이 정상인 줄, 병든 게 정상인 줄 여깁니다. 이거야말로 난센스입니다. 어느 부모가 자신의 고통을 자식에게 대물림하길 원합니까? 대물림하기 싫어서 그 모든 어려움을 견디며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자녀들의 질병 때문에 로마병정의 채찍을 견디셨고, 자녀들의 평안한 삶을 위해 죄 없는 그분이 빌라도 법정에서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의 영생과 구원을 위해 십자가형을 받고 돌아가셨습니다(사53:5). 누구든지 이 사실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기만 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값없이 주신 은혜입니다. 또한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그분이 가난한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은 자녀들이 그분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부유한 삶을 누리게 하려 하심입니다(고후8:9).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더 무엇으로 설명하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 질곡의 모든 한계를 직접 겪으신 후, 사망권세의 모든 법을 초월하여 부활의 영광으로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갚기 위해 우리는 잘 살고, 건강하고, 행복해야 하고, 세상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려야 하고, 그 권세 있는 삶을 여전히 고통 속에 있는 이웃들에게 전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이 그분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는 길입니다.
못 먹고, 못 입고, 죽어라 고생하여 유학 보낸 자식이 사기꾼이 되고, 살인자가 되고, 빌어먹고 있다면, 과연 부모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따라서 우리 빛의 자녀들은 정직한 정도의 삶, 건강하고 부유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단 열매의 삶입니다.”
제자들이, 성도들이 당신보다 더 능력 있고,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하게 잘 살아가길 바라는 목사님의 바람 또한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이것이 모든 핍박과 수모를 견디고 이룬 30년의 성취를 뒤로 하고, 또 다시 새로운 30년을 꿈꾸며 오늘도 기도의 무릎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한은택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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