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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8호 목차 › 붕우칼럼

부활의 신앙

788호 · 2015-04-03

나는 우리 성도들에게 망한 집을 사고, 망한 기업을 인수하라고 한다. 내 말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나는 확신하는 게 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망한 집에 들어가면 그 집이 살아나고, 망한 기업도 회생된다는 것을. 이는 우리 안에 예수의 영인 성령이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지 않은가.

내 말에 코웃음을 치는 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마르다가 그랬다. 요한복음 11장에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그의 집에 오셨다. 예수님이 늦게 오신 것을 한탄하는 마르다를 보시며 예수님은 “네 오라비가 살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마르다는 이렇게 대답한다.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요11:24). 마르다에게 있어 부활은 죽은 다음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로 국한되어 있었다. 종말론적인 부활이다. 이를 보시고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고 하시며, 그 자리에서 썩어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셨다.

부활(復活), 죽음 다음에 다시 사는 영의 부활과 함께 삶에서의 부활도 나타나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죽은 것, 꼬부라진 것, 망한 것들이 되살아났듯이 지금도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죽은 가정, 죽은 기업과 죽은 심령이 살아나야 하고, 병든 교회와 병든 사회가 나음을 입어야 한다.

기독교는 부활의 신앙을 말한다. 부활이 없었다면 주님의 죽으심도 헛되며, 우리에게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도 헛되다. 그 부활에 동참하고자 한다면 현재의 신앙과 삶의 부활이 선행되어야 하리라.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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