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한 다윗 (행13:21~23)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 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행13:21~23).
저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왜 하나님은 다윗을 이토록 사랑하신 것일까?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다윗의 계통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을까? 다윗도 흠이 많은 사람인데….’ 하는 생각입니다.
사실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다윗의 범죄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충신인 우리아의 처를 취하기 위해 용의주도하게 우리아를 죽인 것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라고 마태복음 1장 1절에까지 말씀하신 것을 보면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야 선민 이스라엘의 합법적 조상이자 처음으로 메시야 언약을 받았던 자이니까 거론되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 많은 조상들을 제치고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한 것은 정말이지 깊이 생각해볼 일입니다. 신약에도 ‘다윗의 자손 예수’라는 말이 많이 언급됩니다. 이는 예수 이름이 증거되는 곳에 다윗도 함께 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이토록 다윗을 사랑하셨을까요? 제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다윗은 ‘은혜를 아는 자’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 중 다윗처럼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으려고 애쓴 자가 없습니다. 성경 곳곳에 다윗의 감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은혜를 아는 자가 감사하는 법이지 않습니까?
먼저 므비보셋에게 은혜를 베푼 일입니다. 다윗과 사울의 맏아들인 요나단은 의형제로서 친형제 이상이었습니다(삼상18:1~4). 그 요나단이 사울과 함께 길보아산에서 전사했을 때 다윗은 만가(挽歌)를 불러 요나단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노래하기도 했습니다(삼하1:17~27). 이런 다윗이 수소문 끝에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이 생존해 있음을 알고는 데려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윗이 가로되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
(삼하9:7). 즉 기브아에 있던 사울의 소유지를 다 회복하게 하고 왕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특권을 준 것입니다.
다음은 바실래라는 노인에게 은혜를 갚은 일입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으로 마하나임에서 피난을 하고 있을 때 다윗군에게 식량과 생활필수품을 제공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로글림의 부
(富)한 노인인 바실래입니다. 다윗은 그의 공궤에 감사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바실래에게 동행할 것을 권유합니다. 이는 그동안의 은혜를 갚고자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실래는 나이가 많음을 이유로 거절하고 대신 바실래의 아들이 다윗과 동행하게 됩니다. 물론 다윗은 바실래의 아들에게 그동안 받은 것보다 더 많은 것으로 은혜를 갚았습니다. 다윗의 마음은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임종할 때에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바실래의 후예를 잘 대우하라고 유언합니다.
“마땅히 길르앗 바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저희로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예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저희가 내게 나아왔었느니라”(왕상2:7).
또한 다윗은 평생 자기를 죽이려고 쫓아다닌 사울이 죽었을 때 그 시체를 장사 지내준 길르앗야베스 사람들을 치하하며 은혜를 갚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같으면 사울을 죽인 자에게 훈장을 줄 텐데 그 자는 죽이고, 죽은 그를 거둔 자에게 은혜를 갚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은혜와 진리로 너희에게 베푸시기를 원하고 나도 이 선한 일을 너희에게 갚으리니”(삼하2:6).
다윗은 사람에게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를 백분의 일이라도 갚기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가 성에 들어올 때 나가 춤을 추며 기뻐했습니다. 이것을 보고 그의 아내 미갈이 비웃자 그는 말합니다.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삼하6:21~22). 다윗은 목동에 불과했던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고, 그 은혜에 감사했기에 왕으로서의 체통 따위는 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한 다윗은 육신의 정욕으로 인해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전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용서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 늙어 아리따운 동녀가 시중을 들어도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갚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왕상1:4).
여러분, 은혜를 알고 그 은혜를 갚으려고 노력하는 자의 얼굴은 다릅니다. 눈빛도 다릅니다. 행복해보이고, 설렘이 느껴집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바실래에게 은혜를 갚을 때 제일 기뻤던 것은 므비보셋이나 바실래가 아니었습니다. 다윗 당사자였습니다. 다윗이 제일 기쁘고 행복했을 것입니다. 어쩌다 부모님께 선물이라도 해드리면 선물을 준비할 때부터 기쁘지 않습니까? 어서 드리고 싶고, 드리면 어떤 표정일까 궁금하지 않습니까? 흥부의 은혜에 감사해서 박 씨를 물고 흥부의 집까지 날아온 제비의 가슴도 두근두근 거렸을 겁니다. 어서 흥부에게 박 씨를 주고 싶어서 말입니다.
여러분, 제가 70가까운 나이에도 지구 한 바퀴를 돌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감사하며 기뻐하는 것은 이것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갚는 일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은혜 위에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저를 택하사 당신의 자녀 삼으신 것도 너무 감사한데, 부족한 저에게 이처럼 귀한 직분을 주셨으니 어찌 그 은혜를 갚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마냥 기쁜 겁니다. 3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도, 핍박을 당해도 감사할 뿐입니다. 이것이 은혜를 갚는 일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 스스로 주님의 행복한 노예라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윗 같은 사랑을 받고 싶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나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나를 사랑하시어 노래를 부르게 하고 싶지 않습니까? 그러려면 은혜를 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알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애쓰고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고로 은혜를 모르면 짐승이나 진배없습니다. 은혜를 알아야 사람이고, 받은바 은혜에 보답해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수직적인 감사는 물론이고 수평적인 감사가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가 습관이 되면 절대 불평하지 않고, 나쁜 길로 가지 않으며, 남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넘치고, 남을 배려하고, 남을 이해하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자가 되고, 얼굴에 광채가 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물론이고 부모님의 은혜, 스승의 은혜, 그리고 목사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자가 됩시다. 그리고 남편과 아내에게도 감사하고, 상사에게도 감사하고, 자녀에게도 감사하고, 친구에게도, 아랫사람에게도 감사하는 자가 됩시다. 그러면 당신도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게 될 것입니다. 다윗의 하나님이 당신의 하나님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은혜를 아는 자가 됩시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시116:12). 할렐루야!
흐르는 물 한 컵을 떠줘도
그 은혜를 잊지 말라
상처는 모래에 쓰되
은혜는 대리석에 써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