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미 엘살바도르(El Salvador) 선교여행
중앙아메리카는 물론 아메리카 대륙 전체에서 가장 작은 나라 엘살바도르(El Salvador). 우리나라 경상북도보다 좀 크고 인구는 약 600만이며 중미 국가 중 유일하게 태평양연안에 위치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엘살바도르는 잦은 쿠데타와 오랜 내전으로 몸살을 앓다가 이제 겨우 안정을 찾았다고 하지만, 여전히 치안은 불안정한 상태이다. 집회 중에도 정부가 파견한 무장경찰대가 늘 목사님을 보호하며 다녔다. 공항부터 가는 곳마다 무장 군인들이 보이고, 호텔을 비롯한 공공장소는 무장한 경비들이 지키며 출입하는 차량들을 폭탄탐지장비로 검색하곤 했다. 경제상황은 매우 열악해보였다.
목사님은 공항에 영접하러 나온 목회자협의회장을 비롯한 현지 목회자들, 그리고 시장을 대리하여 나온 종교담당관에게 “이 나라가 사는 길은 먼저 법을 강화하여 치안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치안이 허술한데 누가 들어와 투자할 생각을 하겠는가? 또한 위정자들이 자존심을 버리고 외국인투자를 많이 유치하고, 교육에 적극 투자하여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 국가 지도자들이 이런 쪽에 눈을 뜨지 못하면 백성들이 고통당할 뿐이다.”며 법질서 강화와 자유로운 경제 환경조성, 그리고 교육을 통한 인재양성을 강조하셨다.
이번 집회에는 파라과이(Paraguay) 교회의 낀따나(Quintana) 장로가 동행하고 있었다. 이현숙 선교사를 통해 그가 오게 된 사정과 그의 간증을 들으며 우리는 모두 감동에 젖었다. 요즘 다이돌핀(Didorphin)이란 감동호르몬이 주목받고 있는데, 우리 모두 낀따나 장로로 말미암아 다이돌핀에 흠뻑 젖을 수 있었다.(관련기사 선교기행)
기온은 섭씨 30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였다. 이튿날 우리는 집회를 위해 수도 산살바도르(San Salvador)에서 북서쪽으로 약 1시간을 넘게 차로 달려 산타루시아(Santa Lucia) 주(州) 아르세(Arce) 시에 도착했다. 현지 목회자들이 오찬을 베푼다 해서 갔더니 길가에 있는 작은 음식점이었다. 차들이 오가는 소음에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동양에서 온 손님이라고 스시김밥을 내놨는데 파리들이 달려들어 연신 쫓기에 바빴다. 그래도 아프리카 가나(Ghana)에서 보았던 파리 떼보다는 적으니 다행인 셈이었다. 그리고 접시 하나에 고기와 야채를 담아 내왔다. 고기는 질기고, 야채는 물기도 없이 다 말라 있었다. 그들 말로는 이곳의 부자들이 먹는 음식으로 준비했단다. 대로변에 앉아 이런 음식을 대하니 몇 년 전 멕시코(Mexico) 인디언 마을에서 묵었던 헛간 같은 숙소가 떠올려지며 곧 이어 묵게 될 숙소에 대한 이미지가 그려졌다.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 같았다. 목사님은 숙소에 도착하여 일행이 군소리하면 혼내줄 심산이었다고 하셨다. 선교하는 사람은 어떤 환경이든 감사로 받고 오직 영혼구원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들로서도 차마 그럴 수는 없었는지 우리를 약 30분 정도 떨어진 산타아나(Santa Ana)라는 큰 도시의 숙소로 안내하는 것이었다. 작게 안도하며 감사가 절로 나왔다.
그런데 집회 첫날부터 뭔가 느낌이 여느 집회와 달랐다. 통상 목사님이 단에 오르시고 찬송과 기도가 이어지면, 처처에서 귀신들이 소리를 지르며 요동하는 역사가 나타나야 하는데 도무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럴 경우 가장 속이 타는 사람은 다름 아닌 목사님이다. 겉으로 내색은 못하시고 회중 속으로 내려가 직접 안수하시며 이 얼음을 깨는 상황을 타개해 나가셨지만, 그 타는 속마음은 아무도 모를 거라고 후에 고백하셨다. 그런데 모든 집회일정을 마치고 아르세 시의 시장부터 현지 목회자들에게서 그 분명한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시계바늘처럼, 온도계처럼 정확하신 하나님을 다시 한 번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다음 주에 계속)
한은택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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