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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씨앗은 골라 쓰는 것이다(마13:1~13)

767호 · 2014-11-07

성공한 농사꾼은 씨앗부터 고릅니다. 성공한 사람들도 사람부터 고릅니다.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할 때 제일 먼저 그의 제자들을 고르셨습니다. 그냥 고르신 것이 아니라 기도하신 후 심사숙고하셔서 12제자를 고르셨습니다(눅6:12). 하나님도 마음이 맞는 다윗을 택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셨고, 그의 계보를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행13:22~23).

“사람을 차별하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말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차별과 구분은 다른 겁니다.

사사기 7장의 말씀입니다. 미디안과 아말렉, 동방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침입했을 때 기드온이 하나님의 명을 받아 사람을 모았는데, 그 때 모인 사람이 3만 2천명이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숫자가 너무 많다고 하시며, 두려워 떠는 자들은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2만 2천명이 돌아가고, 만 명이 남았습니다(삿7:1~8). 하나님은 그들도 많다 하셨고, 물을 손으로 핥아먹는 3백 명만을 차출, 그들을 전쟁에 투입시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이 차별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싸울 군사를 고르신 것뿐입니다.

모세도 그랬습니다. 출애굽한 모세가 대소사의 일들을 다 처리하느라 골머리를 썩일 때, 그의 장인 이드로가 사람을 택해 역할분담을 시키라고 지적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능력과 지력을 갖춘 자를 골라 역할을 나누니 모세는 물론이고, 백성들까지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었습니다(출18:14~27).

제가 상담을 해보면 인정이요 사정이요 학연이요 지연 때문에 사람을 잘못 썼다가 고생하고 손해 보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봅니다. 아니 하나님도 사람을 골라 쓰셨는데, 왜 아무나 감정대로 사람을 쓰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답답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택해야 할까요? 먼저는 내면을 봐야 합니다. 정직함이 있는지, 진실한지를 봐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외모를 보고 사람을 택합니다. 학벌이 좋으면, 배경이 좋으면, 인물이 잘 났으면 혹해버립니다. 그래서 자기 도끼에 자기 발을 찍습니다. 저도 그랬으니 할 말이 없습니다. 목회 초기에 우리나라 최고의 S대학에서 성악을 공부하는 자들로 성가대를 만들고, 좀 난다하는 사람들로 교회를 구성했습니다. 잘 나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9개월 만에 교회가 깨지고 말았습니다. 사람을 잘못 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후로는 사람을 택할 때 신중합니다. 빛 좋은 개살구는 아무짝에도 필요 없습니다. 사과가 작아도 맛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사람 속이 제대로 익은 자를 택해야 합니다.

사울을 왕위에서 폐하신 하나님은 선지자 사무엘을 이새의 집으로 보냅니다. 이새에게는 여덟 아들이 있었는데, 그의 장자 엘리압을 보고 사무엘의 마음이 동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도 용모와 신장이 뛰어났는데 그에 버금가게 잘 생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결국 하나님은 이새의 아들 중 가장 어린 막내 다윗을 택하사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 외면적으로 내세울만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기생이 있는가 하면, 과부에, 시아버지와 관계를 맺은 자까지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심은 그들의 외모, 즉 외적인 것을 보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내면을 보셨기에 그리하신 것입니다.

둘째는 생각과 뜻이 같아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코드가 맞는 사람을 골라야 합니다. 동업자든 배우자든 동지든 한 뜻을 가지고 한 목적을 향해 가야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동질성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우리가 최우선으로 주의해야 할 것이 바로 신앙적인 면입니다. 신앙이 같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6장 14절에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고, 신명기 22장 10절에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라고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겪어본 사람은 고개를 끄덕일 겁니다. 불신자와의 동업이나 결혼은 생각보다 쉽지 않고, 넘을 산이 높다는 것을요. 다행히 불신자를 전도하거나 자기 신앙을 지키면 다행이지만, 불신자 쪽으로 기울어 나중에는 믿음마저 팔아버리는 경우도 있으니 더욱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을 보십시오. 그렇게 잘 나가던 그가 왜 마지막에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까? 믿지 않은 자와 멍에를 같이 메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취한 천여 명의 이방 여인들이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들여왔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종교개혁까지 단행하던 유다 4대 왕인 여호사밧은 나라가 견고해지자 지속적으로 나라가 강성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그의 아들을 아합의 딸과 정략결혼을 시켰습니다. 또한 정략결혼을 고리로 아합과 동맹을 맺기도 합니다. 그는 선지자 미가야의 예언을 무시하고는 길르앗 라못을 공격하다 아합은 전사하고, 자신은 겨우 목숨만 건지는 사태에 이르지요.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여호사밧에게 선견자 예후가 이렇게 말합니다.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가하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서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대하19:2).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메어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다는 것입니다. 그 후 그는 이스라엘 왕 아하시아와 공동으로 배를 만들어 다시스에서 오빌의 금을 수입하려고 했지만 그 배가 파선되고 맙니다. 왜요? 그 답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레사 사람 도다와후의 아들 엘리에셀이 여호사밧을 향하여 예언하여 가로되 왕이 아하시아와 교제하는 고로 여호와께서 왕의 지은 것을 파하시리라”(대하20:37).

셋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골라야 합니다. 아무리 지식과 재주가 뛰어난다 해도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라면 버려야 합니다. 바로가 애굽을 최대강국이요 최대부국으로 만든 것은 요셉을 잘 골랐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대단해서 그랬습니까? 아닙니다. 요셉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다니엘을 선택한 느브갓네살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지금 어떤 사람과 동업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어떤 사람을 골라 쓰고 있습니까? 잘못 뽑았다 생각하거든 과감히 잘라내십시오. 마가복음 9장 43절 이하의 말씀을 여기에 응용하십시오. 눈이 실족했으면 눈을 빼고, 발이 실족하면 발을 자르고라도 천국에 들어가라는 말씀처럼, 눈 같은 자, 발 같은 자라도 도저히 맞지 않는 사람이걸랑 잘라내십시오. 그래야 삽니다. 그래야 천국 같은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47~48절의 말씀입니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이도 오늘의 말씀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사람도 쓸 만한 사람을 골라 쓰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어떤 사람이 씨를 뿌리는데 더러는 돌밭에, 더러는 가시덤불에, 더러는 옥토에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같은 씨지만 환경이나 기후에 따라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많은 열매를 맺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사람도 환경입니다. 아무리 좋은 씨라도 환경이 맞아야 열매가 맺듯 사람도 서로 맞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나바와 마가가 맞고, 바울과 실라가 맞은 것처럼 말입니다(행15:37~41).

사람이 경쟁력입니다. 망하게 하는 것도 사람이요, 흥하게 하는 것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잘 골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분별하는 지혜가, 분별하는 능력이 임하기를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과일이 큰 것보다

맛있는 것을 택하라

뚝배기보다

장맛이 좋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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