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친구를 죽이고 살린다(요15:1~15)
친구는 제2의 자신입니다. 친구를 보면 나를 알 수 있고, 친구의 모습이 곧 나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의 가장 좋은 거울은 바로 친구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친구에 대한 고사성어가 많습니다.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친구를 말하는 죽마고우(竹馬故友)요, 자기를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친구인 지기지우(知己之友)요,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친밀한 벗인 막역지우(莫逆之友) 등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요즘 급난지붕(急難之朋)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급난지붕은 급하고 어려울 때 힘이 되어 주는 친구를 일컫는 말입니다. 잘 나갈 때, 수중에 돈 많을 때 붙는 친구는 많습니다. 그들을 일컬어 주식형제(酒食兄弟)라고 합니다. 술이나 먹고 밥이나 먹는 친구지요. 그러나 이런 친구는 어려운 일에 봉착하면 행여나 다칠까, 행여나 해를 당할까 해서 줄행랑을 치고 맙니다. 그래서 명심보감에 주식형제천개유(酒食兄弟千個有) 급난지붕일개무(急難之朋一個無)라고 했습니다. 술 먹고 밥 먹을 때 형이니 아우이니 하는 친구는 천명이나 되지만, 급하고 어려울 때 막상 나를 도와줄 친구는 한 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재물은 많은 친구를 더하게 하나 가난한즉 친구가 끊어지느니라”(잠19:4).
그럼요, 날씨가 추워져야 소나무의 푸름을 알 듯, 어려움에 처해봐야 진정한 친구를 알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 있어 요나단처럼, 다윗을 도왔던 37명의 용사처럼, 또한 바울에게 있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진정한 친구는 어려울 때 알 수 있는 법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 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롬16:3~4).
여러분은 어렵고 힘들 때 찾아갈 친구가 있습니까? 급난지붕이 있습니까? 벌써 20여 년 전의 일이네요. 어느 날 고등학교 동창이 불쑥 저를 찾아왔습니다. 모처럼 해후한 친구와 저는 제3한강교를 거닐며 지난 이야기들을 나눴는데, 그 친구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가 내 아내와 자식을 맡아주게. 내가 병들어 얼마 살지 못한다네.” 밑도 끝도 없는 그의 말에 저는 적잖게 놀랐습니다. 하여 “내가 어떻게 자네 아내와 자식을 맡는단 말인가?” 했더니, 그는 “지난 날, 내 동생 대학입학금을 대준 것도 자네였고, 내가 취업할 때 보증을 서준 것도, 병원비를 대준 것도 자네였네. 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네밖에 내 가족을 맡길 사람이 없어, 이렇게 자넬 찾아왔다네.”라고 했습니다.
그날 저는 친구에게 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친구인 예수님을 소개해주고 집에 돌아왔는데, 밤이 깊도록 심란하여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원을 거닐며 ‘나는 과연 세상을 하직할 때 내 가족을 맡길 사람이 있는가?’ 하고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그럴 사람이 없었습니다. ‘내가 잘못 살았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20년이 흐른 지금, 제게는 저를 위해 생명보다 귀하다는 물질을 아끼지 않을 친구, 위기가 왔을 때 저를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을 친구가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동지로, 동역자로, 그리고 친구로 제 곁에 있습니다. 큰 재산입니다. 이런 친구는 지갑 속의 현금과 같습니다. 당신에게 이런 급난지붕이 있다면 당신은 당당히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친구란 나이가 같아야 친구가 아닙니다. 마음이 맞아야 하고 생각과 뜻이 같으면 나이불문하고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간담상조(肝膽相照)할 수 있는 친구, 서로 간과 쓸개를 꺼내 보인다는 뜻으로 친구 사이의 진정한 우정을 말합니다. 정말 어떨 때는 아내나 남편, 부모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것을 친구에게는 다 털어놓는 경우가 있습니다. 간담상조할 수 있는 친구가 있어야 합니다.
또한 진정한 친구란 아낌없이 쓴 소리도 해줄 줄 아는 자여야 합니다. “친구의 통책은 충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나 원수의 자주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
(잠27:6). 충고는 사랑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나단 선지자와 다윗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그들은 선지자와 왕의 관계이기도 했지만 진정한 친구였기에 쓴 소리에 회개할 수 있었습니다. “의인이 나를 칠찌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찌라도 머리의 기름 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절치 아니할찌라 저희의 재난 중에라도 내가 항상 기도하리로다”(시141:5).
저는 자기보다 나은 사람과 친구로 사귀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탈무드에도 ‘친구를 사귈 때는 한 계단 올라서서 찾아라’는 말이 있습니다. 또 ‘순자’의 ‘권학
(勸學)’ 편에도 “꾸불꾸불한 쑥도 삼밭에서 나면 자연히 꼿꼿하게 자란다.”고 했고, ‘논어’는 “친구를 사귈 때는 모름지기 나보다 나은 자여야 하고, 나와 같은 정도면 없느니만 못하다.”고 했습니다. 잠언에도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잠27:17)고 했습니다. 아무리 큰 나무라도 나무꾼 같은 친구를 만나면 아궁이의 장작이 되고 말지만, 목수 같은 친구를 만나면 궁궐의 대들보가 될 수 있고, 커다란 돌덩이도 미장이 같은 친구를 만나면 온돌방의 구들장이 되고 말지만, 예술가 같은 친구를 만나면 성전의 초석이 될 수 있으며, 고철 덩어리도 장색(匠色)을 만나면 예술품으로 탄생되기 때문입니다. 이번 베네수엘라 세미나 중, 친구의 중요성에 대해 전했을 때, 그들의 반응은 대단했습니다. 전(前) 경제부장관을 비롯한 그 나라의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베네수엘라가 이렇게 가난한 것은 가난한 나라와만 교류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제라도 선진국을 친구삼아야 발전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제 저는 위에 나열한 친구, 즉 급난지붕의 친구, 간담상조할 수 있는 친구, 과감히 쓴 소리 할 줄 아는 친구, 나보다 나은 친구 등 모든 조건을 충족하고도 남는 한 친구를 여러분께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 친구는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기꺼이 도와주시는 급난지붕이며, 더욱이 친구를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내어주는 문경지교(刎頸之交)인 분입니다. 그 분은 바로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아휴, 감히 예수님을 어찌 친구 삼을 수 있느냐?” 하십니까? 아닙니다. 그 분이 먼저 우리에게 친구라고 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15:14).
우리의 친구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요15:15). 숨기는 것이 없이 다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친구를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신 이가 무엇을 숨기겠습니까? 또한 그 분은 우리가 힘들 때 기꺼이 우리를 도우시려고 준비하고 계십니다. 시편 말씀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공동번역에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나를 불러라. 구해 주리라. 너는 나에게 영광을 돌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분이 진정한 급난지붕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 분은 우리가 잘 되기를 누구보다 원하셔서 우리에게 교훈하시고 책망하십니다.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잠3:11~12).
이제 당신을 돌아볼 시간입니다. 나에게 진실한 친구가 있는지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친구가 되어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봅시다.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잠18:24). 할렐루야!
성공은 친구를 만들고
역경은 친구를 시험한다
참된 우정은
앞뒤가 같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