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세자를 무시하지 말라 (롬13:1~7)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원하든 원치 않던 단체 속에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가족, 학교, 직장, 교회, 국가 등, 단체를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단체 안에는 어떤 형태로든 조직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상하(上下)관계, 주종(主從)관계가 어디에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관계 속에서 최고의 지혜는 윗사람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롬13:1).
‘권세자’들이란 누구냐? 자식에게는 부모요, 학생에게는 스승이요, 젊은이에게는 연장자이며, 회사에서는 상사이고, 교회에서는 주의 종들이고,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대통령이나 위정자를 말합니다. 그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이기 때문입니다(롬13:1). 크든 작든 권세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허용하고 허락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권세자 앞에 복종하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롬13:2).
성경은 더불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권세자에게는 칼이 있으며, 그 칼이 폼이 아니라고요(롬13:4). 복종하지 않을 시에 그 칼을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곧 그들이 받은 권세요, 가진 힘을 휘두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운전을 하다가 교통위반을 했을 때, 경찰이 다가와서 면허증을 제시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뭘 잘못했냐고 따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간혹은 단속하는 경찰을 차에 실은 채로 달리는 간 큰 운전자들도 있습니다. 그런 자들에게는 경찰이 엄히 처벌한다는 것입니다. 도로의 권세자는 경찰입니다. 도로법을 위반하여 걸렸거든 “아이고, 미안합니다.” 라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에스더서의 내용을 다 아시지요? 하만의 계략이 유대인들에게 위협이 되지만, 결국 에스더의 용기와 그녀의 사촌 모르드개의 조언으로 그 위협에서 벗어나 큰 구원을 얻었고, 부림절, 곧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향해 신실하시다는 사실을 기념하는 날을 맞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다른 각도에서 에스더서를 보겠습니다. ‘왜 하만이 유대인들을 멸절하려 했을까? 이 사건의 발단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생각봅시다.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모르드개입니다. “그 후에 아하수에로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모든 함께 있는 대신 위에 두니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복이 다 왕의 명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 대궐 문에 있는 왕의 신복이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왕의 명령을 거역하느냐 하고 날마다 권하되 모르드개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는 유다인임을 고하였더니 저희가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 되나 보고자 하여 하만에게 고하였더라”(에3:1~4). 발단은 모르드개가 권세자인 하만에게 절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부정한 이방인에게 굴복할 수 없다는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고, 또한 이는 하나님의 예정, 곧 섭리 중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모르드개가 권세자에게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온 유대인이 멸절될 위기까지 간 것입니다.
마태복음 14장에 보면 세례요한이 헤롯에 의해 목이 베어 죽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원인을 보면 세례요한이 헤롯에게 “동생의 아내를 취하는 것이 옳지 않다.” 라고 책망했기 때문입니다. 왕인 헤롯입장에서 보면 왕을 비판한 것이 되는 것이기에 그를 죽인 것입니다. 물론 세례요한의 말이 옳기에 두려워하기도 했지만(막6:20), 결국 그는 칼을 휘두른 것입니다.
여기서 중국 한나라 개국 공신인 주아부(周亞夫)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는 병법을 통달하고 군대의 통솔에 능한 명장이었습니다. 그는 문제(文帝)와 경제(景帝)를 모셨는데, 문제의 뒤를 이어 경제가 왕이 되었을 때 주아부는 승상으로 발탁될 만큼 왕인 경제의 신임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주아부가 사사건건 왕인 경제와 부딪쳤습니다. 처음 몇 번은 경제가 승상인 주아부의 간언을 받아들였지만 마침내는 주아부의 건의를 묵살하고 그를 죽이고 맙니다. 이를 두고 후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주아부가 몰랐던 사실은 나라와 임금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나라와 군주, 회사와 사장, 교회와 목사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나라를 위해 진언한다고 한 것이 결국 군주 개인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회사를 위한 말이지만 사장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고, 아무리 목사라도 감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있어 요압이 그랬습니다. 요압은 다윗의 가장 용맹스런 용사였지만, 압살롬과 아브넬을 죽여 다윗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다윗은 아들인 솔로몬에게 그를 죽이라고 유언합니다. 당 태종의 책사였던 위증(魏徵)의 말처럼, 충신(忠信)이 아닌 양신(良臣)이 되어야 합니다. 양신은 후세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고 군주가 거룩한 천자가 될 수 있도록 도우며 자손만대까지 복록을 누리지만, 충신은 자신은 물론 일가족 모두가 몰살당하고, 군주는 폭군이 되며 국가도 가문도 모두 멸망하고 자신만 충신의 이름을 후세에 남긴다고 위증은 말합니다. 한 마디로 권세자에게 하는 충언도 때에 맞을 뿐 아니라 권세자의 사적 감정을 건드리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17장 24절 이하를 보면 성전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전세를 받으러 다니는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너희 선생이 성전세를 납부하라고 하느냐?” 라고 물었습니다. 만일 세금 납부를 거부하면 예수님을 고소할 저의가 있는 물음이었지요. 실제 그들은 권세자들이라 그럴 권세가 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이 나오니 그것을 그들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성전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성전세를 내셨을까요? 이는 세상법도 준수해야 함을 알려주신 것이고, 권력자의 말에 순종함을 손수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순종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지 않는 것은 순종하면 안 됩니다. 왜냐? 그 권력자보다 더, 아니 가장 높은 권세자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관원들이 베드로를 잡아 가두고는 예수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하자 베드로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5:29). 다니엘은 다리오 왕에게 철저하게 순종했습니다.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단6:4). 다만 하나님께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법령이기에 그가 어긴 것입니다. 또한 양심에 비추어 아니다 싶은 것은 따르면 안 됩니다(롬13:5). 상전이 돼지머리에 절하라 하는 것, 나쁜 일을 도모하자는 것 등에 복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권세자에게 순종하는 것은 어려운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도 아닙니다. 부모에게는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6:1), 일터에서는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하여”(엡6:5), 어른들께는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벧전5:5), 국가를 위해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딤전2:2), 이렇게 하면 됩니다.
여러분, 권세자에게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할렐루야!
악법(惡法)도 법이다
법 위에 잠자지 말라
통치자를 위해
항상 기도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