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보다 명예를 택하라 (잠22:1~6)
지난 5월부터 약 두 달간 기도원 개보수 작업을 했습니다. 그 작업에 많은 목회자들과 장로님들, 그리고 직원들이 참여해서 일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작업에 ‘실명제’를 도입했습니다. 타일을 붙이든, 고구마를 심고 벽돌을 쌓든 ‘실명제’를 거듭 강조했습니다. 무슨 뜻이었을까요? ‘실명제(實名制)’란 실제 이름을 밝히는 제도입니다. 내 이름을 걸고 최고의 품질, 최고의 서비스, 최고 사양의 것으로 생산하고 판매하고 사용하겠다는 겁니다. 즉 ‘네 이름을 걸고 양심껏, 최선을 다해 일하라’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도 실명제를 시행하셨습니다. 성경 가장 첫 장 첫 절인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Made in God’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이름을 걸었기에 이 세상을 아름답고 풍성하게 지으셨고, 당신이 보기에도 좋게 만드셨습니다. 사람 역시 당신의 이름을 걸고 지으셔서 심히 좋게 만드셨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귀히 여기셨습니다. 이사야서 48장 9절에“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할 것이며 내 영예를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이스라엘은 패역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은 백성이므로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이스라엘을 멸절시키지 않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왜 이렇게 이름이 중요한가 하면, 이름은 곧 명예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명예(名譽)란, 이름 명(名)과 칭찬할 예, 기릴 예(譽)자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세상에서 훌륭하다고 인정되는 이름이나 자랑, 또는 그런 존엄이나 품위를 일컫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아끼시는 이유도 당신의 명예가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당신의 이름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사42:8).
이것이 잘 나타난 것이 에스겔서 36장입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민족들은 그간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야 했건만 오히려 우상을 섬기고, 죄악을 일삼아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파멸시키시고, 그들을 흩어 버리셔서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을 바라보는 열국의 시선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들이라고 지금껏 여겼었는데, 결국 이 꼴이 난 것은 그들이 이미 하나님과 관계없는 철저하게 버려진 자들이고, 또한 그들의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보호하지도, 구원할 능력도 없는 무능한 신이라고 단정하고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마구 비웃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 궁극적 주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지만, 결국 이방인들에게 욕을 먹은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애들이 못된 짓하고, 나쁜 짓하면 다른 사람들이 “저거 뉘 집 자식이야? 저 부모는 애들이 저 모양인데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이 더 이상 이방인들 사이에서 입방아 찧어지는 것도, 욕먹는 것도 참으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모으시고 고토로 들어가게 하시며,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게 하기 위하여 새 마음과 새 영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모든 것을 풍족하게 하여 당신이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오직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위해서였습니다.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찌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36:23).
우리가 거의 외우다시피 하는 시편 23편의 말씀도 봅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23:1~3).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인 다윗을 평탄과 형통의 길로 인도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곧 하나님 자신의 명예를 위한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오래 전의 일입니다. 해외에 거주하는 땅끝예수전도단 회원이 제 설교 비디오테이프를 하와이에 있는 방송국을 통해 미국전역에 방송하도록 계약을 했는데, 그 회원이 계약한 대로 돈을 지불하지 않고 종적을 감춘 모양입니다. 어느 날, 하와이 방송국 측에서 연락이 와서 저도 그 때야 이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방송국 측 말인즉 “목사님이야 법적으로 책임은 없습니다만, 목사님의 얼굴이 이미 방송을 통해 나갔으니 목사님의 명예를 위해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고 배상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계약한 것도, 사전에 계약된 것도 몰랐으니 배상할 수 없노라 했는데, 그들의 말을 들어보니 제 이름이 실추될 수 있고, 제 명예가 훼손될 것 같아서 합의를 통해 손해배상금을 지불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이유가 타당해서가 아니라 제 이름을 위해서 합의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명예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하면 적어도 자기 이름에 먹칠은 안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떻게요?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말입니다.
대개 죄를 짓는 것이나 악을 꾀하는 일들은 컴컴하고 은밀한 어둔 밤에 이뤄집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하는 겁니다. 그러나 누군가 24시간, 평생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죄악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안, 오직 보디발의 아내와 자기만 있는데, 까짓 잠자리 한 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노예의 신분이지만 편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누군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39:9). 그래서 그 이름이 지금까지 길이 남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CCTV도 피할 수 있고, 사람의 눈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를 감찰하시는 이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139:1~4).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지 못했던 다윗이 범한 죄를 기억하십니까?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저지른 범죄입니다.
“신기독(愼其獨)”, 퇴계 이황이 한 말로, ‘홀로 있을 때 삼가라’는 뜻입니다. 우스운 이야기로 어느 남자가 소변이 급해서 사방을 둘러본 후에 전봇대에 실례를 하고는 한숨을 돌리는데, 전봇대 위에서 ‘이놈아 다 봤다.’라고 했다지 않습니까? 후한(後漢) 때 왕밀이라는 사람이 양진을 찾아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니 받아 달라.”며 뇌물을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양진이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내가 알고 자네가 아는데 어찌 아는 이가 없단 말인가?” 라며 화를 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습니다. 전도서에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공중의 새가 그 소리를 전하고 날짐승이 그 일을 전파할 것임이니라”(전10:20).
오늘 본문에 재물보다 명예를 택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리 귀하게 여기는 재물보다 명예가 더욱 귀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 어둠의 일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빛의 자녀로서 옳게 행합시다. 할렐루야!
핍박은 기쁨으로 받더라도
인격적인 모욕은 받지 말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