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원하면 자존심을 버려라
지난 2월 23일, 인천교회는 2014년 첫 총동원전도주일을 선포하고, 이를 실행했다. 교역자와 장로, 성도들이 기도하고 전도하여 이날 인천교회는 대성전은 물론 소성전까지 용신할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간 총회장 목사님은 ‘인천교회를 크게 지은 것을 후회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 말씀을 하실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그러나 이번 총동원전도주일을 통해 목사님은 ‘입당예배 후 가장 많은 성도가 참석했다. 하면 된다. 우리가 못하는 것은 안 하기 때문’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셨다.
위성으로 전국에 방송된 총동원예배에서 총회장 목사님은 ‘살기 원하면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 지혜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하셨다.
“자존심이란, 스스로 자(自), 높을 존(尊), 마음 심(心)으로, 스스로 높아지려는 마음이며, 자기를 지키려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든 육적인 세계든 자존심을 다 갖추면서 목적한 바를 이루기란 하늘에 별 따기입니다. 썩지 않는 씨앗은 꽃을 피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존심이란 것을 땅에 묻어 썩혀야 목적의 열매, 성공의 열매가 열리는 것입니다.
엉덩이에 종기가 난 여자 둘이 병원을 찾았습니다. 의사는 진찰을 해야 하니 옷을 벗으라고 했으나 남자의사인 터라 두 여자는 갈등했습니다. 그러나 한 여자는 살고보자 싶어 부끄러움과 자존심을 내려놓고 옷을 벗고 치료해서 완치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여자는 ‘망측해서 도저히 못하겠다’면서 병원 문을 나왔고, 종기가 악성으로 발전해서 심하게 고생을 했습니다.
동일한 사건의 주인공은 시리아의 군대장관 나아만 장군입니다. 그는 큰 용사였으나 갑옷과 투구만 벗으면 진물이 줄줄 흐르는 문둥병 환자였습니다. 그가 이스라엘 땅으로 문둥병을 치료하러 왔을 때, 엘리사는 사환을 보내어 요단강에 일곱 번 들어가 몸을 씻으라고 합니다. 나아만 장군이 자존심이 무척 상해 자국으로 돌아가려하자 동행한 종들이 “장군님, 문둥병이 낫기만 한다면야 그깟 자존심 좀 상하면 어떻습니까?(왕하5:13)” 라고 간언합니다. 그 말을 듣고 나아만 장군이 마음을 돌이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와 귀신 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애걸했을 때 주님이 그녀에게 ‘개 같은 여자’ 라며 자존심을 구겼지만(막7:27), 그 여인은 “개라고 하셔도 좋습니다. 내 딸만 고쳐주십시오.”(막7:28) 라며 계속 간청했습니다. 주님은 그녀의 믿음을 극찬하셨고, 소원을 이뤄주셨습니다(마15:28).
누가복음 15장에 집을 나가 탕자가 된 둘째아들이 자존심을 버리고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다시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존심을 부려봐야 나만 손해입니다.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하고, 아프면 아프다고 하고, 먹을 게 없으면 없다고 하고, 힘들면 힘들다고 하세요. 아버지에게 무슨 자존심입니까?
내가 오늘의 성공을 이룬 것은 성도들에게나 가족들에게, 혹은 하나님께 잘못했을 때, 자존심을 버리고 무릎 꿇어 용서를 빌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나를 살렸습니다. 사울과 다윗의 차이가 뭡니까? 사울은 왕이라는 자존심을 못 버려서 핑계만 댔지만, 다윗은 문무백관들이 있건 없건 ‘아이고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라고 했기 때문 아닙니까?
자존심이 밥 먹여주지 않습니다. 상사에게 자존심 부리면 승진만 어려워지고, 남편이나 아내에게 자존심 부리면 갈라설 수 있습니다. 한(漢)나라의 개국공신인 한신 장군이 자존심을 버렸기에 초왕(楚王)에까지 오를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싱가포르도 리콴유가 자존심을 버리고 열강국가에 원조를 요청했기 때문이며, 지금의 대한민국도 선진국은 물론 압제했던 일본에게까지 가서 배우고 도움을 청했기 때문 아닙니까?
예수님도 당신의 목적을 이루고자 자존심을 버리셨습니다(히12:2). 자존심을 버리고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자존심은 절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성전을 가득 메운 성도들, 어찌 목사님만 기쁘실까? 한 마리 양이 돌아오면 잔치를 베푸신다는 예수님은 오죽하실까?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해보자!
신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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