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718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자녀의 깊은 속을 헤아리자

718호 · 2013-11-29

얼마 전, 건강하고 씩씩하기만 했던 딸아이에게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그동안 딸아이가 수년 동안 의도적으로 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왔고, 그리 살다보니 우울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작은 사각의 방에서 힘들고 버겁게 하루하루를 지냈다고 고백한 것이다.

세상 누구보다 딸과 친구처럼 잘 지낸다고 생각했고, 끊임없는 대화로 의사소통이 잘 이뤄지는 사이좋은 모녀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딸의 고백은 정말이지 충격, 그 자체였다.

엄마인 내가 딸아이에게 해준 것이 무엇인지, 그토록 커다란 짐을 홀로 지고 고군분투의 삶을 살면서, 왜 수년 동안 단 한 번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고 살았는지, 엄마라는 권위를 내세워 정신적으로 혹사를 시킨 것은 아니었는지, 생활의 무거운 굴레로 인해 학업에 지장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등, 더 늦기 전에 딸아이가 세상을 향한 마음의 문을 다시 활짝 열 수 있도록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쩌면 우리는 가장 가까운 가족과 자녀들의 존재에 대해서 너무 당연시 여기면서 살고 있는 것 같다. 서로에게 고마웠던 것들은 당연한 것이 되었다. 잘못해도 잘못했다는 소리를 묻어둔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다보니 어느 순간 이해와 사랑의 한계를 넘어섰고 대화의 문이 닫히고 만 것이다.

부모의 권위에 짓눌린 유약한 자녀는 말할 수 없는 상처를 가슴에 앉고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동안 엄마는 소중한 딸아이의 고통의 시간을 모르고 살아왔었다. 긴 대화의 시간 끝에 딸을 가슴에 앉고 전심으로 “딸아, 엄마를 용서해 다오!”라며 진심어린 고백을 했다.

가슴을 여는 진지한 대화 없이 오래 살다보면, 서로의 아픔 따위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여기기 마련인가보다. 부모가 아프고 바쁘다는 이유로, 삭막한 세상을 이겨내야 한다는 이유로, 가끔씩 들리던 자녀의 신음소리를 모른 척 하기도 했었고, 그 정도의 어려움쯤은 신앙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이 자녀를 고통의 시간에서 서성이게 했다.

부모라는 권위 의식을 이유로 자녀를 구속하고 아프게 할 권리는 없다. 한해가 저물어가기 전에 자녀와의 깊이 있는 대화의 시간을 가져서 더 늦기 전에 우리 자녀들이 평안 가운데에 거할 수 있도록 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찌니 낙심할까 함이라”(골3:21).

오자유

oh free@hanmail.net

718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Text 주일설교
지혜의 말씀
귀를 기울이세요
Cartoon
붕우칼럼
선교기행
객원컬럼
성경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