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만 있다면 부르짖어 기도하라 (시107:1~43)
세상에서는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됩니다. 그래서 다들 돈을 벌려고 난리들입니다. 그러나 영적 세계에서는 돈이 아니라 기도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됩니다. 기도하면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돈을 벌려고 아등바등 하듯 힘써 기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은 위기 때마다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루는 가까이 있는 참모가 링컨에게 “왜 위기 때마다 기도하시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링컨은 “나는 기도 이외에 최선의 방책을 모릅니다. 내가 가진 지혜와 주변 사람들의 재능도 어려움을 극복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오직 전능하신 그분만이 최선의 방책을 알고 계심으로 나는 그저 주님을 믿고 의지할 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늘 말하지만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는 힘이요, 하늘 문을 여는 키(key)입니다.
그런데 오늘 저는 ‘부르짖는 기도’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물론 성경에는 은밀히 골방에서 하는 기도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마6:6). 그러나 이는 2절의 말씀,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에 대하여 기도의 올바른 자세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보이려고 하지 말고, 조용히 하나님 앞에 간구하라는 뜻입니다. 대신 성경에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말씀은 256번이나 나옵니다.
“하나님이 귀가 먹었나? 왜 이렇게 소리를 질러대는 거야?” 우리 교회에 처음 나오신 분들이 많이 하는 말씀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귀가 먹어 못 들으실까봐 소리를 지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 왜 하느냐?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셨기에 하는 것입니다. 정말 그러셨는지 보겠습니다.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 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그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사58:1),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29:12~1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여러분, 부르짖는다는 것은 곧 간절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응답과 소망의 열도는 정비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간절함’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입니다. 그러나 저는 정말 간이 끊어질 정도의 절실함이라고 풀이하고 싶습니다. 훨씬 가슴에 와 닿지 않습니까?
마태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다가 풍랑을 만난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주무시고 계셨는데, 풍랑이 거세지자 제자들이 두렵고 놀라서 황급히 예수님을 향해 소리를 칩니다.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마8:25). 장면이 그려지십니까? 죽겠다고 소리 지르는 모습 말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절박한 심정으로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4장에 예수님이 물 위로 걷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물 위로 걷겠다고 하자 예수님이 오라하십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걷다가 바람이 일자 두려워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물속으로 푹 빠져 들어갑니다. 그 때 베드로가 소리를 마구 질러댑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마14:30).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가 바로 이런 기도입니다.
실제 성경에는 부르짖어 기도하여 응답을 받은 사례가 많이 보고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을 나왔는데, 변심한 바로가 군사를 보내어 바로 추격해왔습니다. 설상가상, 앞에는 홍해로 가로막혀있었습니다. 이제 다 죽을 일만 남았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불평하면서 울부짖었습니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이 너희를 구원하실 테니 걱정 말라’ 하고는 하나님 앞에 부르짖습니다. 얼마나 부르짖었겠습니까? 목이 터져라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출14:15)라고 하시고는 홍해를 가르셨고, 애굽 군대는 수몰시키셨습니다.
르호보암의 손자로 유대의 6대왕인 아사왕의 이야기입니다. 아사왕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여 평안한 가운데 있을 때에 백만의 구스 군대가 쳐들어왔습니다. 아사의 군대는 겨우 삼심 만 정도인데 말입니다. 그 때 아사 왕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합니다. “그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 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대하14:11). 그러자 하나님께서 구스 군대를 멸하셨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산헤립이 쳐들어왔을 때 히스기야가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하나님이 그들을 치셨고(대하32:20), 그가 병들었을 때도 간절히 기도하여 생명을 연장 받았습니다(사38:3).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은 땅에 비를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야고보서 5장 17~18절에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던지 얼굴이 무릎 사이로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그 땅에 비가 내렸음은 너무 당연합니다. 딸을 고치려는 수로보니게 여인도 예수를 향하여 소리를 질러 간구했고(마15:22), 소경 바디매오도 소리를 질러 예수님으로 하여금 돌아보게 했습니다(마20:30). 다윗도 시편 86편 7절에서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라고 고백했고, 예수님도 땀방울이 핏방울로 변할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셨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5:7).
주님은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간 과부를 예를 들면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눅18:6~7).
제 목소리에서 쇳소리가 나는 것은 성대가 파열된 채로 굳었기 때문입니다. 성대가 파열되도록 저는 부르짖고 부르짖으며 기도했습니다. 왜 안 그랬겠습니까? 모함과 핍박이 몰아치는데, 마음에 한이 가득한데 어떻게 부르짖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 결과 지금의 예루살렘 교단과 제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감히 경고하건대, 밥 먹을 때나 기도하고, 교회 와서나 기도해서는 응답받기 어렵고, 되레 그날 하나님께 야단들을 수 있습니다. 왜 제가 곳곳마다 기도처를 만들어 드렸겠습니까? 모여서 수다 떨고, 밥이나 해먹으라고 만든 게 아닙니다. 기도하라고,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만들어 드린 겁니다. 집에서는 부르짖어 기도할 수 없지 않습니까? 다른 가족도 있고, 옆집도 있고 해서 말입니다. 그러니 할 수만 있으면 기도처에 가서 부르짖고, 산에 가서 부르짖고, 차를 몰고 나가 차 속에서 부르짖어 기도하세요.
지금 자녀문제로, 가정의 문제로, 직장의 문제로, 교회 문제로, 국가적인 문제로 힘들어하고 아파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사면초가인 분이 계십니까? 대책이 없습니까? 지금이야말로 부르짖어 기도해야할 때입니다. 그러면 시편 107편 말씀처럼 하나님이 고통 중에서, 흑암과 사망에서, 위경에서 건지시고 광풍을 평정케 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기도하지 않는 죄가
죄 중에 가장 큰 죄다
기도는 축복의 통로요
인생의 마스터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