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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6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부지런함과 게으름은 빛과 어두움의 차이다 (롬12:11)

716호 · 2013-11-15

어느 사람이 예수를 믿은 후에 처음 접한 성경구절이 바로 마태복음 6장 26절,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이 구절을 읽고 나서 ‘새도 먹이시는데 나를 굶기시랴’ 하는 믿음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매일 놀았습니다. 당연히 그는 끼니가 없을 만큼 가난해졌습니다.

배를 곯던 그는 화가 나서 담임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은 거짓말쟁이입니다. 저는 성경말씀대로 살았는데 왜 이렇게 가난합니까?”

그러자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거짓말쟁이일 리가 있나요? 성경을 잘 보세요. 성경에 어떤 새를 보라고 하셨습니까? 공중의 새를 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뭇가지에 쉬고 있는 새가 아니라 먹을 것을 얻으려고 부지런히 날아다니는 새를 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부지런한 자를 도와주십니다.” 그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돌아가 부지런히 일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누군가 “부지런한 사람은 만물을 황금으로 만들고, 무형의 시간까지도 황금으로 변화시킨다.”라고 말했습니다. 부지런한 자가 부귀를 얻는다는 말입니다.

성경에는 부지런함과 게으름에 대해 참 많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잠10:4),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잠12:24),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잠12:27),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잠13:4),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잠22:29)…. 한 마디로 부지런함과 게으름은 마치 빛과 어두움처럼 극과 극의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부지런한 자가 잘 살고, 잘 되고, 건강한 것은 만고의 진리요, 불변의 법칙입니다. 그래서 우리 옛말에 “사람은 엉덩이가 가벼워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겁니다.

성경의 위대한 자들은 하나님만 의지하고 가만히 있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다 부지런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갈등하는 가운데서도 새벽에 일어나 모리아 산을 찾았고, 야곱 역시 외삼촌 집에 가서 일할 때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일해서 거부가 되었습니다.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창31:40).” 엘리야도 하나님의 일에 부지런했음을 시인했고,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히 특심하오니”(왕상19:10), 엘리사도 부름을 받을 때에 부지런히 일하던 중이었습니다. “저가 열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왕상19:19).

다윗 역시 주의 말씀을 묵상하기 위해 이른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시119:148). 사도 바울의 사역도 기도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부지런함이 함께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살전2:9).

‘하나님이 다 해주시겠지’ 하고 침상에 구르는 자들이여, 하나님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하고자 하는 자를 도우시는 부지런한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각각 돈을 맡기고 떠났습니다. 그러자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마25:16)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마25:17)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둘 다 즉시 장사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을 파고 그것을 묻어뒀습니다. 안 움직인 겁니다. 게으름 피운 거지요. 그리고는 주인이 와서 회계하자 핑계를 댑니다. 자고로 게으른 자들의 특성 중의 하나는 바로 핑계의 달인이라는 겁니다. 오죽하면 잠언 22장 13절에도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매일 지각하는 애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매일 ‘배가 아파서, 버스가 늦게 와서, 시간을 잘못 봐서’ 라며 핑계를 댔습니다.

여러분, 게으름의 원래 뜻은 ‘돌보지 않는다’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게으름은 무책임입니다. 무책임하기 때문에 게으른 겁니다. 처녀시절에 손 하나 까딱하지 않던 여자들도 결혼하면 새벽 같이 일어나 남편 밥해 주고, 애들 학교 보내고 하지 않습니까? 남자들도 가장이 되면 새벽부터 뛰지 않습니까? 다 책임감 때문입니다.

제가 부지런할 수밖에 없는 이유 역시 다 책임감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교단의 책임자로서 해야 할 일, 살펴야 할 일, 결정해야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나태할 수 없고, 게으를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잘 보십시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1).

귀신들이 모여서 어떻게 하면 기독교인들을 실족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를 했습니다. 먼저 한 젊은 귀신이 안건을 냈습니다. “간단합니다. 그들을 전부 죽이면 됩니다.” 그러자 나이가 지긋한 귀신은 “옛날에 기독교인들을 많이 죽였다네. 그런데 한 사람을 죽이면 순교의 피가 씨가 되어 기독교인들이 수천수만으로 늘어났다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젊은 귀신은 “그렇다면 죽이지 말고 감옥에 가두면 전도하러 돌아다니지 못할 것 아닙니까?”라고 말했습니다.

나이든 귀신이 다시 말했습니다. “그들은 감옥에서도 모두 기도하기 때문에 그것도 역시 쓸데없는 방법이라네.” 그때 다른 귀신이 꾀를 하나 냈습니다.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예수를 잘 믿게 하고, 기도를 하게 하고, 성경을 읽게 하고, 전도를 하게 하고, 사랑하게 하는 겁니다. 그러나 오늘 말고 내일부터 하자는 게으른 마음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귀신들은 모두 박수를 치며 만장일치로 이를 가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게으름은 마귀의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래서 ‘게으름=더러움=악’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이 전도를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 하는 겁니다. 지금 당장 안 하니까 못하는 것입니다. ‘내일 하지’ 하면 내일은 영원히 내일이기 때문에 못하는 것입니다.

주의 일에도 열심을 내고, 부지런을 떨어야 합니다. 저도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매달 해외집회를 갖는 것은 스스로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핑계대고 안 나갈 수도 있지만, 안 나간다고 누가 뭐라고 하지 않지만 나를 채찍질하여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2)는 말씀을 이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주의 종들에게 엄히 경고합니다. 지금 양떼를 부지런히 살피지 않으면 잃은 양떼로 인하여 나중에 예수님께 야단맞을 것입니다.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잠27:23).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얻고, 지금 걷지 않으면 내일 숨이 턱에 닿게 뛰어야 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러므로 게으름을 떨치고 부지런하게 살아야 영·혼·육에 성공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게으름은 악이요

인생을 부식시키는 독소다

꾀부리며 게으른 천재보다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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