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심기도의 위력을 알자 (행12:1~7)
말 한 마리는 통상 2톤의 무게를 끌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말 두 마리가 끌 수 있는 무게는 무려 24톤이 된다고 합니다. 합심의 위력입니다.
저는 합심기도도 이와 같은 위력을 발휘한다고 생각합니다. 합심으로 기도하면 분명히 기도의 시너지 효과가 발생합니다.
시너지(synergy)는 syn(함께)와 energy(에너지)의 합성어입니다. 즉 함께 만들어내는 상승효과를 말합니다.
그래서 혼자 기도하는 것이 촛불 하나 켠 것이라면, 합심기도는 촛불을 여러 개 켜는 것과 같고, 혼자서 기도하는 것은 큰 항아리에 혼자 물을 채우느라 힘들고 오래 걸리는 것이라면, 합심기도는 여러 명이 단번에 물을 채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합심기도의 능력이 무엇인지 이렇게 말씀합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19~20).
실제로 성경에는 합심기도를 통해 무엇이든 구하여 얻은 증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헤롯에게 잡혀 감옥에 있을 때 교회는 베드로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했습니다(행12:5). 그랬더니 베드로 앞에 주의 사자가 나타나 그를 감옥에서 나오게 했습니다. 베드로가 옥에서 나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도착하니 거기서도 여러 사람이 베드로를 위하여 합심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행12:12).
또한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제자들이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령을 받기 위하여 합심기도 한 것이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행1:13~14).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후에 모든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이게 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사무엘과 더불어 금식하고 회개기도를 합심으로 드렸습니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에 금식하고”(삼상7:6). 이때 불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많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미스바로 왔으나 하나님은 사무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뢰를 발하사 불레셋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매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폐하여 도망했다고 했습니다.
합심기도의 능력은 에스더서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만이 이스라엘 민족을 멸절시키려고 할 때, 에스더의 사촌 오라비인 모르드개는 왕비가 된 에스더에게 왕 앞에 나가 조국을 구하라고 합니다. 그러자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기도에 들어가면서 모르드개에게 부탁합니다.
온 이스라엘 민족이 자기를 위해 합심기도 해줄 것을요.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에4:16).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역사하사 대역전의 드라마를 연출하셔서 하만이 죽고 이스라엘 민족이 사는 부림절을 맞게 됩니다.
또 있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니느웨로 가서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진다’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니느웨 왕을 비롯해 모든 백성들이 조복을 입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욘3:5~6). 이 합심기도에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이사야서 37장에 보면 유다 왕 히스기야가 앗수르 왕인 산헤립으로부터 국가적인 수치와 모욕을 당하자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 기도하기 시작할 때, 궁내대신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어른들도 굵은 베를 입고 기도의 자리에 동참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결과 국가를 위기로부터 건졌으며, 히스기야를 모욕하던 산헤립은 비참한 종말을 고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합심기도란 마음을 합하여 같은 방향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고로 기도의 동역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철산리에서 목회하던 시절, 어느 가정에 문제가 있으면 우리 성도들은 다 함께 모여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저 교회에 가서 기도하면 다 해결된대’라는 소문이 나며 사람들이 교회로 꾸역꾸역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단 위에 합심기도를 요청하는 편지들이 올라오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성도들이 다 합심기도의 능력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번 과테말라 집회에 가기 전, 제가 납치당하는 꿈을 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합심기도를 요청했습니다. 저는 과테말라에서 우리 성도들이 금식하며 매일 기도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놀랍도록 역사하셨습니다. 과테말라 대통령의 아들을 통해 250여 명의 경찰과 군인들이 저를 경호하며 호위했고, 그 도시의 시장과 국회의원들이 저를 도와서 집회를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다 여러분의 합심기도 덕분임을 압니다.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 기도의 동역자들에게 합심기도를 부탁한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 나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롬15:30~32).
여러분, 제가 가정예배를 꼭 드리라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부부가 함께 예배드리면 마태복음 18장 19절 말씀인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이 됩니다. 거기에 자녀들까지 합심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함께 하심은 물론이고, 무엇이든지 이루어주시기 때문입니다. ‘1+1=2’는 수학적인 계산입니다. 하나님은 ‘1+1=5’도 되게 하시고, ‘1+1=10’도 되게 하십니다. 아니 그 이상으로 되게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합심으로 기도해야 할 이유입니다.
나라가 시끄러울 때 촛불집회 할 것이 아닙니다. 믿는 국민 모두가 합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잠실실내체육관에서 ‘국가와 민족의 앞날을 위한 성회’를 연 이유가 그것 아닙니까? 가정에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 서로 네 탓이다 하지 말고, 가족 모두 무릎 꿇고 기도하면 살 길이 생깁니다. 교회가 힘들 때 목사와 성도가 하나 되어 기도하면 교회의 부흥이 일어납니다.
신명기 32장 30절에는 ‘한 사람이 천을 쫓으며 두 사람이 만을 도망케 한다’고 했고, ‘외줄보다 삼겹 줄이 강하다’(전4:12)고도 했습니다. 혼자 은밀히 하는 기도도 좋지만, 기도의 동역자와 함께 한 마음, 한 뜻으로 기도하면 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힘드십니까? 어려운 일이 있습니까? 병들었습니까? 가족과 함께 기도하십시오. 교구 식구와 함께 기도하십시오. 나아가 교회에 알려 함께 기도하십시오. 분명히 당신 삶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할렐루야!
지금 당신에게
기도의 동역자가 있는가?
외줄보다
삼겹줄이 강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