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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3호 목차 › 객원컬럼

폭력과 신앙양심

713호 · 2013-10-25

최근 나에게 엄청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나의 조카들 중 첫 번째로 태어났던 아이가 죽은 채로 발견된 일이다. 장소는 다름 아닌 한강,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자살로 단정 지었었다. 그러나 너무나 착하고 소심했던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할 것 같지가 않았기에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의사와 경찰이 반드시 부검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이의 아버지는 교회의 부목사인데, 이 사실이 알려지자 부검결과도 나오지 않은 시점에서 교회 측에서는 성도들이 알기 전에 사택을 비우고 빨리 나가달라고 했다. 그래서 급하게 장례식을 치르게 되었다.

장례식장은 너무나 조용했다. 이렇게 조문객이 하나도 없는 장례식장은 정말 처음이었다. 우두커니 서있는 친척언니와 형부가 애처로웠다. 부검결과가 나오기도 전이었지만, 교인들에게 광고도 하지 않은 교회도 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어서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장례식 다음날에야 부검결과가 나왔다. 자살이 아니었다. 온 몸에 멍과 상처가 있었고, 뼈가 다 조각나 있었다. 자살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17세의 훈남이었던 조카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었고, 조카가 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던 시기는 그가 12살 때였다. 그때부터 아이는 여전히 학교에서 폭력을 당해왔으나 부모님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이 결국 비참한 결과를 맞이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를 강하게 양육한다는 이유로 아이를 자주 때려서 아이의 기를 눌리게 만들었다. 그런 그는 그렇게 폭력을 당하며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형부는 눈물어린 고백과 함께 깊이 회개하고 있었다. 자신이 자랄 때 아버지에게 늘 맞았고, 어머니도 아버지에게 맞으며 사는 그런 모습을 보며 자랐기에 자신 또한 아이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다는 것이다.

나는 가끔 중학생이 된 조카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아이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서 놀랬었다. 아이 같은 모습이 아닌, 세상을 다 산 아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힘겨웠을까 생각해보니 안타까워서 눈물이 절로 난다.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에 정말 허심탄회한 대화가 있었다면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조카를 통하여 느낀 것은 일명 ‘왕따’는 한 사람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회가 왕따를 만들고, 상처 되는 말과 폭력으로 사람을 죽이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금 생각해봐야 한다. 또 하나는 교회에서 성도를 섬기며 목회하던 부목사님을 자녀가 죽었다고 헌신짝처럼 버리는 행위는 어떤 이유라도 용서받지 못할 행위라고 생각한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가정에 큰일을 당하면 위로해주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을 텐데, 하물며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의 행위가 이래서야 본보기가 되겠는가? 조카를 통해서 새삼 많은 것을 깨닫는다.

김영숙

jesus_soo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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