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712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뿌리가 썩은 나무에 물을 주지 말라 (렘29:11~13)

712호 · 2013-10-18

부모 마음 1/10만 알아도 효자라고 합니다.

그만큼 모른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자식을 향한 부모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마7:9~11).

자식을 위해서라면 아까울 것이 없고, 못할 것이 없는 부모의 마음을 단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이어 말씀합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11).

이는 하나님의 마음을 말씀하신 것으로, 육신의 부모도 자식에게 그러할 진대, 하물며 하나님이 너희에게 무엇을 안 주시겠냐는 말씀입니다. 더불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렘29:11).

그렇습니다.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잘 되고, 건강하고, 평안하게 사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래서 당신의 독생자를 아낌없이 우리에게 주셨고(요3:16),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예비하셨으며, 한없는 복을 빌어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처럼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원대로 살고 있습니까? 선뜻 ‘예’라고 대답하지 못한다면 그 까닭을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생각이 썩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안 돼’, ‘내 주제에’, ‘내 팔자에’, 이런 생각들이 나를 무능한 자로 만들고, 나를 운명론자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이 내 꿈과 이상을 죽이고, 도둑질해가는 것입니다.

벼룩은 자기 몸의 100배 이상을 뛰는 놈입니다. 그런데 이 벼룩을 그릇에 넣고 위에다 종이를 덮어놓으면 처음에는 이것들이 뛰려고 난리를 치다가 나중에는 종이를 거두고 열어놓아도 뛰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릇 안에서 사는 것이 팔자려니 하는 겁니다.

이 벼룩의 모습이 ‘그냥 이대로 살지 뭐’ 하고 주저앉아 있는 당신의 모습입니다. 예전에는 우리 삶에 뚜껑이 덮여있었습니다. 그릇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삶의 한계가 분명 있었습니다. 마귀란 놈이 우리의 삶을 차단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마귀를 진멸하고 승리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피 값으로 우리를 속량하셨기 때문에, 그리고 그 예수님을 믿는 순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뚜껑이 열렸습니다.

한계가 없어졌습니다. 이제 ‘나는 뛰어오를 수 있어’ 라고 생각하면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찌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네가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신다’는 신명기 28장 12~13절의 말씀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어느 노인이 산속에서 독수리 알을 가져다가 집 닭장 속에 함께 넣었습니다. 때가 되자 병아리가 부화되고, 그 속에서 독수리도 태어났습니다. 이 독수리는 닭이 엄마인 줄 알고 자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독수리 한 마리가 닭을 채가지고 가는 것을 어린 독수리는 보게 됩니다. ‘나랑 똑같이 생긴 저것은 닭을 잡아먹고 하늘을 차고 오르는데, 나는 왜 이 닭들과 놀고 있는 거지? 나는 누구일까? 나도 하늘을 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자 어린 독수리는 날개를 피고 날아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날 수 없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닭들은 ‘너 미쳤니?’ 하고 야유했습니다. 어린 독수리는 ‘그래, 내 주제에 어떻게 하늘을 날아’ 하면서 날개를 접었습니다. 그런데 독수리가 또 나타나 하늘을 맴돌았습니다. 그 독수리는 어린 독수리를 향해 “넌 독수리야. 왜 거기서 그렇게 있는 거야? 넌 날 수 있어.” 하고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래서 어린 독수리는 날개를 계속 퍼떡였고, 결국 땅을 차고 창공으로 올랐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닭장 속의 닭이 아니라 하늘을 훨훨 날 수 있는 독수리입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시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마귀는 당신을 계속 닭장 속의 닭으로 살게 하려고 태클을 걸지만, 태생은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그래서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생각이 결과를 낳습니다(렘6:19). 긍정적인 생각은 긍정적인 결과를 낳고,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그것은 마치 자동차의 핸들과 같아서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으면 자동차가 오른쪽으로 가고, 왼쪽으로 꺾으면 자동차가 왼쪽으로 가는 것과 동일합니다. 당신의 생각에 따라 당신의 육체가, 당신의 미래가 방향을 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생각을 바꾸십시오.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패배의식을 성공의식으로, 회의적인 생각을 적극적인 생각으로 바꾸세요.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이렇게 사는 것이 내 팔자야’ 하지 않고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낫는다’는 적극적인 생각으로 예수님께 다가갔기에 고침을 받았고, ‘이것이 내 한계야’ 하지 않고 ‘가나안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했던 여호수아와 갈렙의 긍정적인 사고가 그들을 가나안에 들어가게 했습니다.

또한 중풍병자를 들 것에 들고 온 네 명의 친구들이 사람이 많아 예수님 근처로 갈 수 없을 때, ‘이건 불가능해’ 라고 하지 않고, 지붕을 뚫는 창조적인 생각을 했기에 친구가 나음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당신이 생각을 바꿔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집안에 화장실이 있는 집이 거의 없었습니다. 대부분이 집에서 멀리 떨어진데다가 요즘처럼 물을 내리는 수세식이 아니라 푸세식으로, 변소 밑에는 쥐들이 왔다 갔다 했습니다. 변소에 사는 쥐는 사람들이 들어가면 놀라서 후다닥 도망가기 바쁩니다. 어쩌다 밑을 내려다보면 온 몸에 오물을 뒤집어쓴 쥐들이 잔뜩 겁에 질려서 조심스레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요, 쥐들은 다 그렇게 살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광에 들어가 보니 거기에도 쥐들이 있는데, 이놈들은 변소에 있는 쥐랑은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털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게 마치 밍크 같고, 토실토실한 것이 사람이 들어가도 그리 놀라는 기색도 없이 되레 당당하게 사람을 쳐다봤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았느냐에 따른 것입니다. 변소에서 사는 쥐들은 부모들이 ‘우리 팔자는 똥이나 받아먹고 사는 거야’ 라고 가르쳤기 때문이고, 광에 사는 쥐의 부모는 ‘비록 우리가 쥐로 태어났지만, 얼마든지 잘 사는 길이 있단다. 적극적으로 살 길을 찾자’고 가르친 까닭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각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살면 매순간 불가능이란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생각으로 살면 모든 것이 가능하게 됩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인간의 생각으로는 ‘술이 떨어졌으니 잔칫집 분위기도 엉망이 되겠구나’ 하겠지만, 하나님의 생각으로 전환하니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났고(요2), 예수님의 제자들은 광야에서 많은 무리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다 먹일 수 있다는 생각하셨고, 먹이셨습니다(마14). 왜냐?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입니다(사55:8~9).

여러분,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장독 뚜껑을 덮어놓으면 장독에 물이 들어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복을 주시기 원해도 부정적인 생각과 팔자타령만 하고 있다면, 비가 흘러 하수구로 내려가는 격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생각을 바꾸세요. 생각이 바뀌면 미래가 바뀝니다. 할렐루야!

썩은 뿌리에 물을 주면

점점 더 썩을 뿐이다

큰 생각은 큰 결과를 낳고

작은 생각은 작은 결과를 낳는다

712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성도들의 간증
Q & A
지혜의 말씀
귀를 기울이세요
Cartoon
붕우칼럼
교단소식
객원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