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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호 목차 › 객원컬럼

약하면 죽는다

708호 · 2013-09-20

‘약한 것은 왜 악한 것보다 못하다’고 말할까? 그 대답은 늘 우리주변에 널려 있다. 나는 어느 날, 약한 것이 악한 것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나는 그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약한 것도 서러운데 악한 것보다 못하다니’, 이 무슨 터무니없는 말인가!

그런데 그 뜻을 풀어보면 이런 것이다. 우주의 원동력은 강함이다. 사회의 원동력 또한 강함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란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력이 약하면 자신을 망치고 가정도 망치게 된다는 뜻으로 이야기한 것이다.

강함이란 나의 불행한 삶을 물리치는 면역력이다. 내게는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전신성 류마티스에 걸려, 누운 자리에서 대소변 받아가며 조금도 움직일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 나는 늘 ‘아이고 힘들어 죽겠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왜 안 그랬겠는가? 전신에 퍼지는 통증으로 인하여 사는 것보다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러나 다시금 내가 살겠노라는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하나님께 ‘저 좀 기억해주시고 살려달라’고 애원하여 기도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의 그 ‘스스로 돕는 자’ 역시 강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강하지 않고는 스스로 도울 수가 없다. 스스로 그곳에서 나오려고 발버둥치지 않는다. 살려고 몸부림치지 않는다. 내가 류마티스에 걸렸을 때 내 자신이 일어나려고 몸부림쳤던 것, 그것이 곧 스스로 돕는 행위였고, 내가 강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내가 살고 싶어서 이사야서 53장 5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는 말씀을 부여잡고 일어섰을 때, 주님께서 “네가 무엇을 하여주길 원하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저는 살고 싶습니다. 걷고 싶습니다.”라고 분명히 나의 소망과 목표를 이야기하여 응답을 받았다. 내가 좌절하여 징징대고 운다고 해결될 일은 전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믿음, 곧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나님은 나의 강한 모습을 보시고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소경 바디매오가 다윗의 자손 예수를 부를 때, 예수님은 바디매오가 소경이라고 그에게 다가가신 것이 아니라 그를 부르셨다. 앞이 보이지 않는 바디매오의 강함을 보시기 위해서다. 그러자 바디매오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무조건 소리 나는 쪽으로 달려 나갔다. 조심스레 더듬거린 것이 아니라 뛴 것이다. 이런 강함이 그를 고쳤다.

주님은 오늘날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1:1).

우리 모두 이 말씀을 영혼에 새기고 영적으로 무장한 강한 자가 되어 세상을 넉넉히 이기기를 바란다.

김영숙

jesus_soo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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