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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6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하나님의 생각을 착각하지 말라 (사55:6~11)

696호 · 2013-06-28

언젠가 서울교회를 담임하는 이시대 목사가 타교단 신문과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저도 그 기사를 읽었는데, 읽은 후에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그 기사의 제목은 ‘나는 꿈이 없다’였습니다. 이시대 목사의 말인즉, ‘나는 꿈이 없다. 우리 총회장 목사님의 꿈이 내 꿈이고, 총회장 목사님의 비전이 내 비전이다. 나는 총회장 목사님이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시대 목사의 말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나는 오로지 순종한다’는 것이지요. 육의 동생이지만 그 말에 저는 감동했고, 정말 고마웠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도 이시대 목사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우리 교회의 박사들에게 “이 도자기를 깨뜨려놓으시오.” 하고 외국 집회에 나갔다가 돌아왔는데 도자기가 아직도 멀쩡한 상태로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불러서 “내가 이 도자기를 깨뜨리라고 했는데, 왜 아직 이 모양이오?” 그랬더니 그들의 말이 이랬습니다. “목사님께서 이 귀한 도자기를 왜 깨뜨리라고 하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저는 즉시 경비 아저씨를 불러서 “아저씨, 이 도자기 좀 깨뜨리세요.” 그랬더니 경비 아저씨는 나가서 망치를 가져와 한 방에 도자기를 깨뜨렸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깨뜨리라고 하면 그냥 깨뜨리면 되지 왜 분석합니까? 당신들의 이론과 논리가 병폐의 원인이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이론과 논리를 들이대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 분석하는 자들을 향하여 제가 던지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하지 않는 것이다. 가라면 가고, 가지 말라면 서는 것이다.”

가끔 살다보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아는 바로는 그게 아닌데, 내가 배운 바로는 그게 아닌데, 내 경험상 지금까지 그런 적이 없었는데 왜 이러시나 할 때가 있습니다. 저라고 안 그랬겠습니까? 그러나 그럴 때도 무조건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고,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기 때문입니다.

사사기 7장에 보면 미디안과 아말렉, 동방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침입했을 때, 기드온이 하나님의 명을 받아 전쟁에 나갈 사람을 모았는데, 그 때 모인 사람이 3만 2천명이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숫자가 너무 많다고 하시며, 두려워 떠는 자들은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2만 2천명이 돌아가고, 만 명이 남았습니다(삿7:1~8).

하나님은 그들도 많다 하셨고, 물을 손으로 핥아먹는 3백 명만을 차출, 그들을 전쟁에 투입시켜 대승을 거두게 됩니다. 기드온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의 방법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3만 2천명은 메뚜기 떼처럼 많은 적을 상대하기에 절대 많은 숫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삿7:2). 만일 3만 2천명의 장정으로 전쟁에 이겼다면 기드온은 자기 실력을 과대평가하고 승리에 취하여 하나님을 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은 온데간데없고, 하나님 대신 영광을 취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까지 아껴보지 말고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그 중 좋은 것들을 남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습니다. 사울은 좋은 것은 가지고 와서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삼상15:15).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땅끝예수전도단 회원 중에 미국 간호장교로 중령까지 올라간 집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군에서 그 집사에게 아프가니스탄으로 발령을 냈습니다. 사실 그 집사는 그곳에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갔습니다. 왜냐하면 군에서는 ‘아니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집사는 군의 명령에 불복종하면 가차 없이 징계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 집사가 복종해서 아프가니스탄에 갔더니 하나님께서 그 집사와 함께 하사 무사하게 지키셨고, 근무기간도 단축시키셨으며, 진급하여 더 좋은 곳으로 발령이 나게 하셨습니다.

이렇듯 군에서도 불복종하면 징계가 있는데 하물며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 과연 어찌 되겠습니까? 요나를 봅시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다시스로 갔습니다. 요나가 다시스로 간 데에는 요나 나름대로의 합당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앗수르인들의 잔악무도한 행동을 하나님이 용서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고, 니느웨로 가서 회개하라고 외치는 것은 곧 원수를 이롭게 하는 것으로 민족감정상 도무지 내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거역한 요나를 용서치 않으시고 물고기 뱃속에 가둬 회개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생각을 버렸을 때 그를 다시 살리사 니느웨 사람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의 복이 안 오는 지 압니까?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순종은 말씀에 토를 달지 않는 것입니다.

지지리 궁상을 떠는 친구를 만난 어느 사람이 복 받는 비결을 가르쳐준다고 자기 집으로 친구를 데리고 갔습니다. 가자마자 그는 “외양간에 가서 소를 끌어와 지붕에 올리거라.” 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그의 아내와 아들들이 외양간의 소를 지붕에 올리느라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친구가 “이봐, 왜 말도 안 되는 일로 식구들을 고생시키는가? 어떻게 소를 지붕에 올릴 수 있어?”라고 했지만 친구는 뒷짐만 지고 있을 뿐입니다.

친구는 하는 수 없이 그걸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식구들이 한참동안 난리법석을 떠는데 그가 다시 말했습니다. “이제 됐다. 다시 소를 외양간에 매놓아라.” 그러자 식구들은 그제야 땀을 닦으며 소를 끌고 갔습니다. 그런데 누구하나 왜 이런 일을 시켰는지, 그리고 왜 중단하는지 묻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는 친구에게 “이젠 자네 집에 가서 내가 한 대로 똑같이 해보게.”라고 말했습니다.

둘은 친구의 집으로 갔습니다. 친구가 식구들을 향해 “외양간에 가서 소를 끌어다 지붕에 올리거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아니, 소를 어떻게 지붕에 올려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네.” 했고, 아들은 아들대로 “아버지, 어디 편찮으세요?” 하며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러자 남자는 친구의 손을 잡고 대문 밖으로 나와 말했습니다. “자네 가정에 복이 안 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네. 먼저 순종을 가르치면 복은 절로 온다네.”

그럼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큰 뜻이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셨더니 하늘과 땅의 권세를 받는 하나님의 큰 뜻이 이루어진 것처럼 말입니다(마28:18).

하나님 앞에서 내 생각이 앞서고, 내 지식을 드러내고, 내 경험을 논하는 것은 성령 충만하지 못한 증거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롬8:9). 더불어 말씀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8:7)고.

그러므로 내 생각과 지식을 버리고 우리의 주군 되시는 하나님의 뜻에 오직 ‘예’ 합시다(고후1:20). 그런 자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릇을 비워야 채울 수 있고

씨앗이 죽어야 열매를 맺는다

종에게는 의지가 없다

오직 순종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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