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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3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구하라 (시37:4)

693호 · 2013-06-07

저는 해외집회에 갔을 때, 그곳 성도들에게 가끔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지금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러면 십중팔구, 아니 백이면 백 거의 모두가 이렇게 답합니다.

“믿음요!”, “성령충만요!”, “하나님께 쓰임 받길 원해요….”

물론 일견 바람직한 대답인 건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런 답을 듣는 순간, 한편으로 의분 같은 것이 끓어오릅니다. 왜냐고요? 이는 정말 솔직한 답변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당장 먹을 것도 부족하고, 일자리도 없어 놀고 있을 만큼 가난 속에 허덕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크리스천은 그런 대답을 해야 한다고 무언의 강요를 받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는 가르치는 자의 잘못이 누적되고, 누적되어 크리스천들을 외식하는, 곧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로 변질시켜 놓은 것입니다.

저는 그때 단호하게 말합니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지금 당신이 구할 것은 돈이며 일자리며 당장 먹을 것 아닙니까?”

그러면 모두가 당황한 표정을 짓지만, 저의 설교를 듣고 나면 모두가 박수를 치며 환한 얼굴로 바뀝니다.

성경에 기록된 사실만 보아도 그들은 하나님께 진정 필요한 것을 구했습니다. 광야에서 원망과 불평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모세가 구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이 애굽에서 먹던 고기를 먹고 싶다고 아우성치니 모세는 고기를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아들이 없어 끌탕을 하던 한나가 무엇을 구했습니까? 오직 아들이었습니다. 입다가 구한 것은 전쟁의 승리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의 재건이었습니다. 소경 바디매오는 오직 보기를 원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개 취급을 당하면서도 딸의 병 낫기만을 갈망했습니다.

저는 지난 춘계산상집회를 위해 기도할 때, 첫날 첫 시간부터 마치는 시간까지 성령으로 역사해달라고 기도했고, 첫 집회에 올라가 반드시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는 집회에 임하는 제가 반드시 구해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도한대로 저는 첫 집회에 단에 오르자마자 통성으로 기도를 시키고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았습니다.

집회 역시 기도한대로 성령께서 역사하사 귀신이 떠나가고 목발을 들고 걷는 역사 속에 많은 병자들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또한 집회에 전국에서 몰려드는 성도들을 위해 이동하는 차량의 안전과 날씨, 그리고 성도들이 자빠지거나 넘어져 다치는 일 없도록 기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2천 명이 넘는 성도들을 매일 무료로 먹여야 하는데, 그에 필요한 쌀과 부식, 곧 쌀,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야채, 양파, 마늘, 고추장, 된장, 들기름, 참기름 등 조목조목 목록을 거명해가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기도원 원장이신 권천국 목사님도 집회를 앞두고 이렇게 기도했다고 하더군요. 주방을 담당하는 집사님을 불러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고는 종이에 적어 하나하나 불러가며 하나님께 구했답니다. 그랬더니 어떤 결과가 나타난 지 아십니까? 양파가 차채로 들어오질 않나, 성도들이 기름병을 너도 나도 들고 오질 않나, 모든 부식이 차고 넘치도록 들어왔다는 겁니다.

예수님도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 가르치시지 않았습니까(마6:11)? 이처럼 하나님께 구하는 자는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구해야 합니다. 중언부언 하는 기도, 곧 분명한 목적이 없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결코 응답하지 않습니다.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생각하느니라”(마6:7).

일본에서 사역 중인 곽 선교사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일전에 김경숙 목사가 암을 고침 받기 위해 한국에 와서 저를 만나 안수 받고 기도원에서 기도하며 고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그녀는, ‘나도 목사님을 만나 바랄 수 없는 것을 이루어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왔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문제는 일본에서 교육 받고 자란 아들이 자기 목회에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데, 군대에 가게 돼서 이만저만한 타격이 아니라는 겁니다. 따라서 그녀는 어떻게 하면 아들이 군대에 안 가고 일본에 남아 자기 목회를 계속 도울 수 있을까, 이 문제를 해결 받기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 제 입에서 툭 튀어나온 답이 이것이었습니다.

“한국법은 준수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너희들이 일본에 살고 있으니 일본법이 어떠한지 살펴봐라. 만일 네 아들이 일본 여인과 결혼을 하면 일본법에 따르게 되지 않느냐? 네 목회의 성공을 위해 아들이 꼭 필요하다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니 나를 통해 이런 길도 알게 해주신 거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너의 간절한 소원에 응답해주실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땅의 것을 구하는 것이 마치 이교도들처럼 기복신앙에 빠진 것이라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단호히 말합니다. 기복신앙이 위험하니 신비주의가 잘못됐느니 하는 바로 그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성경에 복에 대한 언급이 8천 번 이상 나옵니다. 아니 더 나아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의 근원이 되라 하셨고, 복 주고 복 주길 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창12:2).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히6:14).

제가 해외 목회자 세미나에서 ‘복 받기 싫어하는 사람 손들어보라’ 하니 단 한 사람도 손드는 사람이 없더군요. 기복이니 어쩌니 하는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세요. 복 싫어하냐고. 아마 그도 분명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 분명합니다.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아니 그럼 저주를 받아야 하겠습니까? 저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게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외식적인 행위입니다. 속은 개차반이면서 겉으로만 의인인 척, 겉으로만 거룩한 척, 이거 다 소용없습니다.

가난이 지옥인 사람에게 거지 나사로 이야기로 위로하며 천국에 가서 편히 쉬라고 말한다면, 그가 과연 예수를 영접하겠습니까? 병에 찌들어 수십 년을 고생하는 사람에게 예수 믿고 천국 가라면 그게 씨알이 먹히겠냐 이 말입니다. 도대체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 곧 기쁜 소식이란 가난한 자에겐 부자가 되는 길이 있다는 소식, 병든 자에게는 병을 고침 받는 길이 있다는 소식, 문제에 봉착하여 고통 중에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에겐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소식이 아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 모든 인생의 질고를 해결하시기 위해 이 땅에 육체로 오셔서 모든 고통과 죽음을 체휼하신 분입니다. 왜 그랬냐고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그 모든 문제를 해결 받는 길을 열어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제발 깨닫고, 깨닫는 대로 실천하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모두가 기도 노트를 만들어 여러분의 문제를 하나하나 적어가며 기도하기 바랍니다. 기도는 응답 받을 때까지 하는 것입니다. 중도에 포기하면 결코 응답 받을 수 없습니다. 소나무를 자를 때 잘라질 때까지 톱질을 해야지 중간에 힘들다고 멈추면 송진이 나와 더 이상 톱질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기도하다 포기하면 악한 것들이 달라붙어 더 어려워질 뿐입니다.

따라서 기도하는 자는 기필코 응답 받고 말리란 정신으로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선친들처럼, 저처럼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짓말을 못하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어린아이는 부모의 형편과

사정을 살피지 않는다

필요한 것을 조목조목

적어서 기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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