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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3호 목차 › 객원컬럼

삶을 관통하는 지혜

693호 · 2013-06-07

동양철학의 효시로 지금까지도 동서양의 정신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공자(孔子)의 삶을 보면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점이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유년시절에 여러 학동들과 더불어 피리 연주를 배우게 되었다. 선생님이 제시한 곡을 모든 학동들이 열심히 연습했다. 어느 정도 시일이 흐르자 공자뿐 아니라 대부분의 학동들이 그 곡을 능숙하게 연주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학동들에게 다른 곡을 연습해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공자는 다른 곡은 연습할 생각 없이 계속해서 처음 곡만을 연습하는 것이 아닌가? 이를 의아하게 여긴 선생님은 어느 날 공자를 불러 연주해볼 것을 주문한 후, 그의 피리연주가 끝나자 조용히 물었다.

“네 연주를 들어보니 그 정도면 충분한 듯하구나. 이제 다른 학동들처럼 다른 곡을 좀 연습해봄이 어떻겠느냐?”

그러자 공자는 손을 내저으며 아주 겸손한 자세로 말했다.

“아닙니다, 스승님. 저는 아직도 많이 부족합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제자의 고집도 고집이지만 그의 겸손한 태도에 선생님은 더 강요할 수 없었다. 그리고 또 오랜 시간이 지났다. 공자는 어느 날 선생님을 찾아왔다. 그리고 그동안 자기가 연습해온 곡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이 곡을 만든 사람의 고향은 어딘 것 같고, 자라온 환경은 이러하고, 취향은 저러하며, 그가 추구하는 바는 이러하고…’, 선생님은 공자의 말을 들으며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전혀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에 대해 어찌 저리도 소상히 알고 있는 것일까?’

결론은 자명했다. 하나의 곡을 집중적으로 파헤치며 연습하고, 깊이 연구 분석하다보니 작곡자에 대한 깊은 이해가 가능해진 것이었다.

그 후로 공자는 새로운 곡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미 피리연주에 대한 깊은 이해와 노하우가 터득된 터였는지, 공자의 연주는 다른 학동들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진보해갔다. 비록 처음에는 다른 학동들에 비해 매우 뒤처진 것 같았지만, 나중에는 훨씬 더 빨리, 그리고 더욱 폭넓게 발전해갔다.

대학(大學) 정심장(正心章) 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심부재언 시이불견 청이불문 식이부지기미(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곧 ‘마음에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맛을 봐도 그 맛을 모른다’는 말이다.

시청(視聽)과 견문(見聞)은 같이 보고 듣는 행위를 말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많이 다르다. ‘시청’은 TV를 시청하듯 그냥 흘려보고 흘려듣는 것이다. TV를 볼 때는 웃고, 울고, 즐거워 떠들지만, 볼 때뿐이다. 지나고 나면 다 잊어먹고 만다. 따라서 시청하는 것은 삶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얄팍하고 자극적인 것만 좇는 행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견문’은 단순히 보고 듣는 것을 넘어 그 속에 흐르고 있는 역사와 지식을 망라하여 깊이 연구함을 뜻한다.

목사님과 해외집회에 동행하다 보면 아주 가끔 집회 도시를 돌아볼 기회가 있다. 우리는 대충 지나쳐보는 때가 많은데, 목사님은 건축 사업을 하셨던 전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보는 안목이 우리와는 많이 다름을 발견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burg)의 이삭(Isaac) 성전에 갔을 때, 성전 내부 전면에 세워진 돌기둥이 어마어마했는데, 우리는 단지 그 규모와 색채에 놀라 있었지만, 목사님은 통역을 통해 그 돌기둥의 높이가 얼마며 그 돌이 어디서 온 것인지 세세히 묻고 계셨다.

우랄(Ural)산맥에서 체취해온 돌이라는 설명을 들으니 그 성전을 건축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많은 사람들의 피땀 어린 수고가 스며있는지 알 것 같았다. 이처럼 단지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들리는 것만 듣는 시청과 달리 그 이면의 역사와 지식을 얻는 일을 곧 견문이라 하겠다.

아마도 다른 학동들은 선생님의 과제를 기계적으로 연습하였을 것이다. 시청의 자세다. 그러나 공자는 견문의 자세로 곡을 들여다보았다. 듣고, 듣고, 또 들으며 곡을 만든 이의 마음속까지 깊이 들어갔으리라.

목사님이 자주 말씀하시듯, 차는 오래 끓여야 제 맛이 나는 법이다. 거목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 우물을 깊게 파야 마르지 않는 샘을 얻는다. 작금의 세태가 너무 빠르고 조급하여 깊고 높은 성취에 이르지 못하는 세대들을 본다.

절대 조급하지 말 일이다. 멀리 보고 오래 참는 자가 단 열매를 따는 법이다. 어느 한 분야에 달인을 넘어 장인의 경지에 이를 때까지 부단히 정진하는 자세가 명작을 낳는 것이다. 이것이 인류의 삶을 관통하는 참 지혜가 아닐까 한다.

한은택 전도사

henry88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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