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필코 정신’이 오늘의 나를 있게 했다 (행20:24)
저에게는 장점이라면 장점이고, 단점이라고 하면 단점인 성격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목표를 정하거나 어떤 것을 결단하면 절대 뒤돌아서지 않는 것입니다. 목표점에 도달할 때까지, 그것을 이룰 때까지 귀는 막고 오직 목표물만 바라보고 달려가는 그런 성격 말입니다.
이름 하여 ‘기필코 정신’입니다. 이 기필코 정신이 있었기에 숱한 핍박과 모함 속에서 오늘의 예루살렘교단을 세웠고, 세계 70여 개국에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기필코 정신’을 단적으로 표현한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이 정신으로 그는 험한 파도를 넘어 유럽에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이 ‘기필코 정신’이 있습니다. ‘기필코’의 사전적 의미는 ‘반드시’입니다. 반드시 뜻한 바를 이루고야 말겠다, 반드시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그들을 성공자로, 승리자로 이끈 것입니다.
성경의 인물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누가복음 5장에는 나중에 베드로가 된 시몬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고기가 잡힐 때까지 밤새 그물질을 한 사람입니다. 반드시 고기를 잡고야 말겠다는 근성을 가진 사람이지요. 예수님은 그 정신을 높이사 그로 하여금 ‘사람을 낚는 어부(막1:17)’가 되게 하셨습니다.
얍복 강가에서 밤이 새도록 하나님의 사자와 더불어 씨름을 하다 환도뼈가 위골되는 지경에 처한 야곱, 날이 밝아오자 하나님의 사자가 떠나기를 청했으나 야곱은 축복을 받기 전에는 보낼 수 없다고 하나님의 사자를 놓지 않습니다. 기필코 축복을 받고야 말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정신 앞에 하나님의 사자도 졌습니다. 그래서 야곱을 축복하고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었습니다(창32:22~32).
엘리야는 3년 6개월 동안 닫혔던 하늘 문을 열기 위해 갈멜산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비가 내릴 때까지 기도했고(왕상18:19~46), 엘리사는 기필코 엘리야의 갑절의 영감을 받겠다며 엘리야를 좇더니 그의 계승자가 되어 엘리야의 갑절의 능력으로 죽은 물을 살리고(왕하2:19~22), 유대와 에돔이 동맹하여 모압 왕과 싸울 때 물이 없어 고생하는 것을 보고 물을 내어 그 지경에 가득하게 하였고(왕하3:20), 선지자 생도의 아내에게 기름을 만들어 주어 빚을 갚게 하였으며(왕하4:7), 수넴지방 여인에게 아들을 낳게 하고 그 아들이 죽은 것을 다시 살렸습니다(왕하4:35). 또한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주었고(왕하5:10), 물에 빠진 도끼를 떠오르게도 하였습니다(왕하6:6).
여기서 떠오르는 성경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10:38~39). 이런 임전무퇴의 정신, 일사각오의 정신이 영·혼·육의 필수 성공요소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 이야기도 할까요? 그녀는 귀신 들린 딸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와 간구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막7:27)고 하셨습니다. 개 취급 하신 겁니다. 그런데도 그 여인은 기필코 딸을 고치고야 말겠다는 생각뿐이어서,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막7:28)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그의 믿음을 보시고 주님은 그 딸을 고쳐주셨습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소경 바디매오도 반드시 눈을 뜨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지 예수를 목청껏 불러 소원을 이뤘고(막10:46~52), 누가복음 11장에 나오는 친구에게 떡을 구하는 자나 누가복음 18장에 재판관을 찾아간 과부의 결말도 기필코 정신이 이룬 쾌거입니다.
마태복음 9장에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 지붕을 뚫어서라도 예수님께 다가가 고침을 받은 마가복음 2장의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네 명의 친구, 그리고 반드시 전쟁에 이겨 이스라엘의 우두머리가 되겠다던 입다, 꼭 아들을 얻고야 말겠다고 기도한 한나 모두 기필코 정신이 있었기에 목적한 바를 이룬 자들입니다. 자기 민족을 구하기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금식한 후에 왕 앞에 나간 에스더 역시 기필코 정신의 대명사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18:7~8). 무슨 말씀입니까? ‘나는 너희를 위해 다 준비하고 있다. 너희를 위해 응답할 준비가 다 끝났다. 그런데 너희가 끝까지 구하지 않기 때문에 얻지 못한단다. 기필코 정신이 없어서 못 얻는단다’는 말입니다.
우리 성도가 산에서 기도하는데 성령께서 그러더랍니다. 성도들이 응답이 늦어지는 이유는 소망의 열도가 낮아서라고요, 응답을 받고야 말겠다는 마음, 부자가 되고야 말겠다는 소망, 성공하고야 말리라는 의지가 없어서 응답을 못 받는다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성경에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7:7~8).
한 마디로 ‘기필코 정신’이 있는 자가 응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주시면 다행이고, 안 주셔도 괜찮고’ 이렇게 생각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안 주십니다. ‘찾으면 다행이고, 못 찾아도 어쩔 수 없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못 찾습니다. ‘열리면 다행이고, 안 열리면 다른 문을 찾지’ 하는 자요? 그 문 절대 안 열립니다. ‘얻고야 말겠다, 찾고야 말겠다, 열고야 말겠다’ 하는 기필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도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1:6~8). 요한계시록에도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계3:15)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목표를 세웠으면, 결단했으면 끝까지 변질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룰 때까지 그 정신을 가지고 가야 뭔가 이룰 수 있습니다. ‘기필코 응답받고야 말겠다’, ‘기필코 병에서 고침을 받고야 말겠다’, ‘기필코 복을 받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소망을 이루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필코’라는 말 속에는 ‘고난과 역경을 뚫고’라는 말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기필코’는 각오, 인내, 노력이 따릅니다. ‘기필코 박사학위를 따겠다’는 사람이 힘들지만 공부하는 것이고, ‘기필코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사람이 맹훈련도 이겨내는 것입니다. ‘기필코 온 가족을 구원하고야 말겠다’고 마음먹고 눈물로 기도하면 반드시 이루게 될 것입니다. 저처럼요. ‘기필코 암에서 낫고야 말겠다’고 기도하면 낫게 됩니다. 응답은 소망의 열도에 비례하니까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했습니다. ‘기필코 나무를 넘어뜨리겠다’ 하면 결국 넘어가게 된다는 말입니다. 옳은 말입니다. 기필코 정신만 있다면 세상에 안 될 일 없습니다. 이 정신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시도했다 실패하는 것보다
시도하지 않는 것이 더 큰 실패다
가다가 곧 중지하면
아니 간만 못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