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울 때일수록 주님 품으로 (룻2:1~12)
오늘 본문은 나오미의 며느리인 룻의 이야기입니다.
사사시대에 유대 나라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엘리멜렉은 그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 말론과 기론을 데리고 이방 땅 모압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두 아들을 이방여인과 결혼시키고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엘리멜렉과 두 아들이 죽습니다. 졸지에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는 처참한 심정에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는데, 문제는 과부가 된 젊은 두 며느리였습니다.
어차피 그들은 이방여인들인지라 나오미는 그들에게 친정에 돌아가 새 삶을 살라고 권합니다. 그러자 오르바는 눈물을 흘리며 친정으로 돌아갔는데, 룻은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곧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룻1:16~17)라며 나오미를 붙좇아서 나오미는 하는 수없이 룻을 동반하고 베들레헴에 이르게 됩니다.
나오미와 룻이 도착했을 때는 추수기였습니다. 마침 룻은 이스라엘의 관례대로 보리이삭을 줍기 위해 밭에 나갔다가 보아스의 밭에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보아스를 만나게 됩니다. 그 자리에서 보아스는 룻에게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모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들렸느니라”(룻2:11)라며,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충정을 다한 것을 칭찬하면서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주시기를 원하노라”(룻2:12)고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절대 당신의 날개 아래로 들어오는 자를 내치지 않는다고 보아스가 말한 것입니다.
추측건대, 보아스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의 어머니의 사건을 들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의 어머니는 라합입니다. 그녀는 여호수아가 파견한 정탐군을 숨겨주어 화를 면하게 해주었고(수2), 그로 인해 그녀의 일가는 여리고가 함락될 때 모두 구조되었습니다. 라합은 비록 가나안의 기생이었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온전한 신이라 믿었고, 그 아래 거하고자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라합을 내치지 않으시고 그 아래 거하게 하셨으며, 그로 인해 온전한 상으로 그녀의 아들인 보아스를 베들레헴의 유력자로 키워주셨습니다. 이것을 안 보아스였기에 룻에게 이렇듯 축복을 빌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보아스의 축복대로 룻은 보아스의 날개 아래서 영원한 보호를 받으며 보아스의 기업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다윗의 증조모가 되고, 예수의 족보에 올라가는 여인이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당신의 날개 아래 거하고자 하는 자를 내치지 않습니다. 당신 품으로 들어온 자를 안전하게 다 품으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6:37~39).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은 당신에게 오는 자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에게 오는 자를 하나도 내어 쫓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증표가 바로 도피성입니다. 하나님은 고의로 사람을 죽인 자 외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나 우발적으로 죄를 지은 자들이 하룻길이면 도달할 수 있는 곳에 6개의 도피성을 두게 하셔서 도피한 사람이 공정한 재판을 받기까지 이 도피성에서 보호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비록 죄를 지었을지언정 하나님의 보호를 받기 원하는 자는 결코 내치지 않는 하나님의 큰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당신의 아들의 피 값을 주고 산 우리를 죄 지었다고 내치시겠느냐 이 말입니다. 문제는 죄로 인해 자꾸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우리에게 있는 거지요. 죄를 지었더라도 하나님의 날개 아래,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은 다 품어주십니다.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 부모 품으로 들어오면 다 용서해주는 것과 같지요. 잘못했을 때 집을 나가는 아이들이 문제지요. 그들에게 왜 집을 나왔는지 물어보세요. 그들은 부모님이 용서하지 않을 것 같아서, 야단맞을 거 같아서 나왔다고 합니다.
잘못된 겁니다. 야단을 맞아도 부모님 품으로 들어가야 하는 겁니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했을 때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갓 선지자를 통해 어떤 심판을 받을지 고르라고 하십니다. ‘어떤 것으로 맞을래?’ 하고 물으신 겁니다. 하나는 7년 기근이요, 하나는 석 달 동안 원수에게 쫓기는 것이요, 하나는 전염병이었습니다.
그 때 다윗은 말합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삼하24:14). 다윗의 선택은 피폐된 세상에 붙여지기 보다는 하나님께 직접 매 맞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취해진 것입니다. 비록 잘못을 해서 매를 맞지만 하나님의 품속에 있겠다는 말입니다. 그런 그를 어찌 하나님이 사랑치 않겠습니까?
여러분,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짓습니다. 육체가 있는 한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선친들이 죄가 없어 믿음의 전당에 올라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위대한 것은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도망가는 게 아니라 회개하며 하나님 품으로 더욱 파고들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죄가 어찌 사울보다 작겠습니까만 다윗이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로 여김을 받은 것은 죄를 지은 후에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려 회개했고, 더욱 그의 품에 파고 들어가 안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신접한 여인을 찾은 사울과는 달랐습니다.
살다보면 죄를 짓습니다. 잘못도 합니다. 실수도 합니다. 물론 그러지 않으면 더욱 좋겠지만, 물론 죄와 피 뿌리기까지 싸워야 하겠지만,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었을 때 밖으로 나가지 말고 하나님 품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아버지 재산을 가지고 나간 둘째 아들이 방황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 아비가 맨발로 뛰어나가 아들을 맞고 잔치를 배설한 것처럼, 우리 주님이 당신을 맞으시고 온전한 상을 베푸실 것입니다.
창세기 16장에 하갈이 그의 주인인 사라를 업신여기다가 아들과 함께 광야로 쫓겨났을 때, 여호와의 사자가 하갈에게 나타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창16:9~10)고 말합니다. 주인의 날개 아래서 복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주군, 우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품 안에서 우리는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노아가 날려 보낸 비둘기가 털에 더러운 흙을 묻히고 돌아왔을 때, 노아가 손을 내밀어 맞아준 것처럼, 우리 하나님은 죄 지은 우리를 당신 품에 안아주실 것입니다.
죄를 지었습니까? 힘듭니까? 고난 중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오세요. 그 안에 응답이 있고, 그 안에 행복과 축복과 평강이 있습니다. 당신 그 모습 그대로를 하나님이 품어주실 것입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시91:1~2). 할렐루야!
아무리 큰 물고기라도
물 떠나면 죽는 법이다
주는 나의 피난처요
방패와 요새가 되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