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사랑은 영원하다
1977년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의 여왕 5월, 우리 학교는 버들 길이 유명했다. 교문에 들어서면 양옆으로 축축 늘어진 버드나무가 있어 해마다 5월이 되면 교정에서 ‘버들 길 시화전(詩畵展)’이 열렸다.
나는 시를 좋아하는 문학소녀였다. 내 시를 화폭에 담아줄 사람을 구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미대 다니는 실력 좋은 사람을 소개해주었다. 콜롬보 제과점이었던가. 한 사람이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하얀 얼굴, 선하면서도 집중적인 눈, 가지런한 이, 단정한 손톱, 나는 첫 눈에 반했다.
머릿속에 그리던 이상형이었다. 여름방학을 맞아 우리는 해남 땅 끝으로 여행을 떠났다. 끝없이 펼쳐진 넓은 들판에는 온통 초록색의 버들이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고, 우리는 긴 신작로를 따라 손을 잡고 걸었다. 기쁨과 환희와 설렘 속에서 윤동주와 헤르만 헤세와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노래했다.
방학이 끝나고 나는 매일 편지와 엽서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엽서 한 장이 날아왔다. 나라의 부름을 받아 군대에 간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풋사랑의 아련한 그리움은 한 여름 밤의 꿈처럼 그렇게 사라졌다.
1991년 방배동 단골로 다니는 미용실 집사님의 전도로 난생처음 교회에 갔다. 체육관 맨 꼭대기에 앉아 있다가 하루는 아래층으로 내려와 목사님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환한 불빛에 비친 목사님의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하얀 얼굴에 아이보리 양복이 잘 어울렸다. 마른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워 있는 훌륭한 메시지, 강렬하면서도 번뜩이는 정신적인 눈, 학처럼 고고한 경건의 모습, 나는 첫눈에 반했다.
나는 그때까지 그러한 목사님을 본 적이 없었다. 몇날 며칠이고 목사님의 비디오테이프를 보며 날을 새웠다. 금요철야예배와 주일예배를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야곱이 라헬을 연애하는 까닭에 칠년을 수일 같이 여겼다고 했다. 사랑하면 칠년이 수일 같이 여겨지고 싫어하면 수일이 칠년 같이 여겨진다.
예수를 믿고 가장 궁금한 것이 성경이었다. 도대체 두꺼운 성경책 속에는 무엇이 기록되어 있을까?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성경책이라는데 한 번도 가까이 해 본적이 없었다. 구약을 읽고 신약으로 와서 요한복음 20장을 볼 때였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가에 찾아가 예수님의 시체를 찾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당신이 옮겨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신다.
마리아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눈물이 가득 찬 얼굴로 “랍오니여~” 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마리아야~”라고 부르시는데, 빨간색 네 글자가 파도처럼 출렁거리면서 “미자야~” 하고 부르시는 것이다. 나는 너무 놀라 다시 보는데 또 다시 “미자야~” 하는 것이다. 순간 말할 수 없는 기쁨과 놀라움과 두려움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성경책이 눈물에 젖어 떡이 되도록 하염없이 울었다. 죄인을 찾아오신 주님의 사랑은 놀라왔다. 뿌연 안개 속을 헤매던 내 생의 한가운데로 주님은 찾아오셨다. 세상 것은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고, 마셔도 마셔도 목마르고, 보아도 보아도 만족이 없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나에게는 그 분 이상이 없었다. 아~ 이 첫사랑이 영원했으면….
목사님을 따라 온지 22년이 되었다. 지금까지 나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뒤돌아보면 나에게도 굴곡이 있었다. 쓴 잔을 마시고 비틀거릴 때도 있었고, 머뭇머뭇 허송세월을 보낼 때도 있었다. 언젠가 이시대 목사님께서 교역자 모임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첫사랑은 뜨겁고 열정적이고 앞뒤 가리지 않는다. 만나면 가슴 설레고, 헤어지면 보고 싶고, 또 보고 싶고…. 그러나 우리의 인생에서 첫 사랑은 한 번이다. 그런 감정은 다시는 오지 않는다고.
그렇다. 첫사랑은 아니지만 살아가면서 더 성숙한 사랑으로, 더 깊이 있는 사랑으로 나아간다. 나는 첫사랑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나는 더 성숙한 인격으로 더 깊이 있는 신앙으로 여전히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한다.
‘나는 해바라기 꽃이 되겠소’라는 목사님의 시가 있다. 해바라기가 오직 해만 바라보듯 주님만 바라보는 주 바라기 인생을 사시는 목사님처럼, 나의 여생도 해바라기 인생, 주 바라기 인생이 되길 소원한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며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2:4~5).
전미자 전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