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것은 물어보는 것이 지혜다 (욥8:5~10)
어느 아버지가 죽을 때가 되었습니다.
그는 부자였습니다.
그에게는 늦게 얻어 아직은 어린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어린 것을 놓고 눈을 감자니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들과 평생 같이 했던 종을 불러놓고 유언을 합니다.
“자네는 듣게. 내가 이 어린 것을 놓고 가자니 눈을 제대로 감을 수 없을 것 같네. 자네만 믿네. 내 재산 모두는 자네가 갖게. 다만 저 어린놈에게는 하나만 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게.” 그리고 그는 눈을 감았습니다.
노종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주인의 전 재산이 자기 것이 되었으니 이제 팔자가 폈다 싶었습니다. 반대로 어려도 상황이 파악된 아들은 고민에 휩싸였습니다. 그러나 분명 자기를 그렇게 사랑했던 아버지가 이러실 때에는 뭔가 깊은 뜻이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고민하던 그는 평상시 아버지가 늘 하셨던 말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랍비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하신 아버지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랍비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말하니 랍비가 웃으며 말합니다. “네 아비는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구나. 만일 전 재산을 너에게 줬더라면 아마도 종은 너를 해쳤을 거다. 이제 재판관이 너에게 무엇을 택할 것이냐 물을 때 너는 다른 것 말고 네 아비의 전 재산을 가진 종을 택하거라.”
그렇습니다. 모르는 것은 이렇게 물어봐야 합니다. 그 분야에 잘 아는 분께, 전문가에게 물어보면 답이 금방 나옵니다. 여러분,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하다가 실수하고, 실패하는 것이 진짜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물어보지 않습니다. 모르는 것을 혼자하려고 합니다. 맨땅에 헤딩하겠다는 거지요. 그러나 맨땅에 헤딩하면 죽을 만큼 고생합니다. 모르는 걸 혼자해보겠다고 하면 실수하고 실패하다 시간, 돈 다 낭비하고 진은 진대로 빠지고, 스트레스 쌓여 병 걸립니다. 한 마디로 비효율적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그 분야에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단 번에 끝납니다. 물어보면 그 사람이 안 가르쳐줄 것 같지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누군가 저에게 목회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 물어보면 은근 기분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게 물어본 사람은 적어도 목회에 관한 한 저를 신뢰하고, 저를 인정한다는 뜻이니까요. 그래서 입에 침을 튀겨가며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다 가르쳐줍니다.
시집 온 며느리가 음식 한다고 이것저것 해봐야 솔직히 별 맛 없습니다. 그럴 때 시어머니에게 여쭤보는 겁니다. “어머니, 어머니가 끓인 된장국이 너무 맛있던데, 저는 그 맛이 안 나요. 어떻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시어머니가 “별 것 다 물어본다. 대학까지 나왔는데 그것도 몰라?” 그럴 것 같지만, 아닙니다. “별 것 있니? 쌀뜨물 붓고, 집 된장 풀고 두부 놓고 이렇게 하는 거야.” 하면서 시범을 보이십니다. 이왕 시작한 거 된장국뿐 아니라 나물 무치는 것도 가르쳐주십니다. 시어머니는 대학 나온 며느리가 물어보니 기분이 좋습니다. 내색은 안 하지만 ‘우리 며느리가 내 음식 솜씨를 인정해주는 구나,’ 하고 며느리가 예쁜 겁니다.
몇 주 전에 매주 수요일에 있는 대학청년부들을 위한 JC아카데미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든지, 회사에 들어가든지 윗사람에게 자꾸 물어봐라. 그러면 그 상사가 자기를 인정해주는 것이라 여겨 너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관심을 갖게 된다.” 예, 이게 지혜입니다.
우리 교단의 목사들이 가끔 일을 다 저질러놓고 수습을 못해서 뒤늦게 저에게 통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답답하지요. 일을 하기 전에 제게 물어보면 좋으련만, 하다하다 안 되니까 그 때서야 물어보니 답답할 수밖에요. 그래서 얻은 게 뭐가 있습니까? 일단 자기 고생하지, 따라가는 성도들 고생하고 시험 들지, 돈은 돈대로 들고 시간 낭비했지, 얻은 게 없단 말입니다. 그 때 제가 꼭 하는 레퍼토리가 있습니다. “내가 죽었냐? 왜 안 물어봤어?”
모르는 것은 아는 자에게 물어보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지혜의 근본이요, 지식의 근본이 되시며, 처음부터 계셨던 분이시고, 우리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여쭤보면 다 답이 나옵니다. 물어보면 고생하지 않아도 되고, 실패하려야 실패할 수 없게 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노예생활에서부터 구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인도한 위대한 종교 지도자입니다. 그가 200만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탁월한 지도력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모세는 모르면 무조건 하나님께 물어봤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자기를 바로에게 보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라고 했을 때 모세는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저들이 나를 보낸 자가 누구냐고 하면 뭐라고 할까요?” 그러자 하나님이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3:14)고 가르쳐주십니다.
또 어미는 이스라엘 여인이요, 아비는 이방 사람인 혼혈인이 이스라엘 사람과 싸우다가 여호와의 이름을 저주하며 모세 앞에 끌려옵니다. 그 때 모세는 잠시 그를 가둬두라고 한 후에 여호와 하나님께 ‘어찌할까요?’ 하고 여쭤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의 머리에 안수하고 돌로 내리쳐죽이라고 하십니다(레24:10~14).
또한 민수기 15장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거할 때에 어느 사람이 안식일에 나무를 해오다 딱 걸려서 모세 앞에 끌려왔습니다. 그때도 모세는 자기 생각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께 여쭸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진 밖에서 돌로 쳐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했습니다.
민수기 27장에도 모세가 하나님께 여쭙는 장면이 또 나옵니다. 길르앗의 손자 헤벨의 아들 슬로브핫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다섯 명의 딸들만 있었습니다. 그 딸들이 모세에게 와서 자기들에게도 기업을 달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이들에게 어찌 해야 할 지 몰라서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은 저들의 주장이 옳다하고 딸만 있는 집에도 기업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모르는 것을 지레짐작으로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하나님께 여쭸습니다. 안타깝게 자기의 의를 드러내어 그토록 바라던 가나안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모세는 하나님께 물어봄으로 가나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갈 수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말세의 징조에 대해 조용히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말세의 징조뿐 아니라 말세를 만난 성도들이 행할 일까지 자세히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를 물었는데 열 가지를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저도 목회 28년 동안 숱하게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물론 단독으로 결정을 내렸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여지없이 고통을 받고, 엄청 고생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사소한 것까지도 여쭙니다. 저와 상담해본 사람들은 ‘기도해봅시다’라는 제 말을 자주 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여쭙겠다는 뜻입니다.
역대상 10장에 보면 사울이 블레셋 사람에게 쫓기어 죽게 되자 스스로 자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13절에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인데, 그 죄가 뭐냐,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라고 14절에 말합니다. 사무엘상 28장 6절에 사울은 하나님께 묻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형식적이었습니다. 성심성의껏 물어보지 않았던 것이 죄였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처음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해지는 복을 받는 비결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그 처음은 기도요, 그 다음은 정직이요, 그 다음은 옛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현세대가 그 경험과 지혜에 있어서 ‘옛 시대’, 또는 ‘열조’와 비교될 수 없다고 9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하우(knowhow)’, 이것을 알면 매사 쉬워지고, 빨리 갈 수 있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목사님께, 상사에게, 선배에게, 전문인에게 물어보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 꼭 물어보고 일을 추진하세요. 하나님은 자비하사 절대 화내지 않으시고 자세히, 알아듣기 쉽게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모르는 것은 아는 자에게 물어보는 것, 그것이 지혜입니다. 할렐루야!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가고
아는 길도 물어보고 가라
창조는 하나님뿐,
모방은 제2의 창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