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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그 날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꼭 해야 할 일 (마25:1~46)

662호 · 2012-11-02

우리의 신앙은 재림을 준비하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살아서 예수님이 오시면 공중으로 들림을 받고,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죽으면 낙원에서 쉬다가 그 날에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최대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여기저기서 예수 재림에 관한 여러 속설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내가 예수라고 말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자기 교단에 들어와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는 자도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항간에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144,000의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내용을 들어보니 어느 종말론 교파에서 144,000명 안에 들어가야 구원을 받는다며, 자기 교리를 믿으라고 부추기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건 철저한 미혹입니다. 잘 자라던 벼도 새에게 쪼이면 순간 쭉정이가 되고 마는 겁니다. 신앙생활 잘 하다가 이런 것에 미혹되면, 쭉정이가 되어 버림을 받게 됩니다. 마지막 때는 악한 것들이 믿는 자들을 어떻게든 넘어트리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것으로 넘어트리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들이대면서, 성경을 근거삼아서 미혹합니다. 그럴 듯하게 해석해서 말입니다(벧전5:8).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144,000은 요한계시록에 딱 두 번 나옵니다. 7장과 14장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12지파에서 각각 12,000명씩 뽑은 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천사로부터 이마에 인을 맞은 자이고,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한 자들입니다. 또한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깨끗한 자들입니다.

정리하자면 그들은 유대인이어야 하며, 총각이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아예 자격이 안 됩니다. 결혼한 사람도 안 되고, 여자는 더더욱 안 되고요. 물론 144,000을 하나님이 구원할 인간 전부를 상징한다는 속설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 옳은지 누구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요한계시록에 대한 견해가 5,000가지가 넘게 나와 있습니다. 다 각각 해석했다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맞는지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종교개혁자이며 평생을 성경주석에 힘쓴 칼빈도 요한계시록에 주석을 달지 않았습니다. 왜요? 잘 모르니까요, 잘못 해석하면 큰일이니까요.

여러분, 대학입학시험제도가 매번 바뀌지요? 그러나 그것 때문에 걱정하는 사람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냥 열심히 공부하는 자는 입시제도가 어떻게 바뀌든 내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동일합니다. 요한계시록에 144,000이 유대인이든, 구원 얻을 백성의 상징적 숫자든 관계할 것 없습니다. 주님이 언제 오시든 관계없습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재림을 준비하는 자들에게 몇 가지 지침을 제시하셨습니다. 오늘 저는 마태복음 25장의 말씀을 통해 그 날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드리려고 합니다. 이렇게만 하면 주님이 언제 오시든 관계없이 구원받고 들림 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첫째는 깨어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의 첫 번째 비유는 열 처녀의 비유입니다. 여기에는 기름을 넉넉히 준비한 다섯 처녀와 기름을 조금밖에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열 처녀가 신랑을 기다리는데, 신랑이 더디 와 잠이 듭니다. 그런데 갑자기 신랑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마중을 나가려는데, 다섯 처녀는 기름이 다 떨어져 기름을 구하러 나갔다가 늦는 바람에 결국 신랑과 함께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비유 끝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마25:13).

기름은 성령을 의미하고, 그릇은 사람의 마음을, 그리고 등은 풍성한 신앙을 나타냅니다. 그릇만 있고 기름이 없는 자는 형식상으로는 믿는 자이나 성령을 모시지 못한 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런 자는 재림의 날에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실로 형식적인 교회출석, 봉사, 선교 등의 외면적인 신앙생활이 아니라 성령에 사로잡힌바 되는 것이 바른 성도의 모습이라 할 것입니다.

오직 그분의 재림을 늘 염두에 두면서 날마다 준비성 있는 신앙생활을 하는 자만이 기쁨으로 그분을 맞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5:18). 제가 여러분들을 들들 볶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늘 기도하라, 모이기에 힘쓰라, 전도하라 하는 것은 늘 그릇에 기름을 꽉 채워놓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야 주님이 오시는 날, 한 사람도 남김없이 다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주신 은사, 주신 달란트대로 충성하면 됩니다.

열 처녀의 비유 바로 뒤에 달란트의 비유가 나옵니다. 주인이 타국으로 가면서 그 종들에게 각각 그 재능대로 금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대로 줍니다. ‘각각 그 재능대로’라는 말은 ‘자기 자신의 힘이나 능력에 따라’라는 뜻으로, 주인이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 적절하게 능력을 배분했다는 말입니다. 곧 주인이신 예수님이 우리 각자에게 맞는 은사와 달란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자는 나가서 즉시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돌아와 회계할 때 충성된 일꾼이라며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라고 했습니다. ‘주인의 즐거움’이란 열 처녀의 비유에서 ‘혼인잔치’와 같은 말로, 곧 천국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게을러서 그것을 땅에 묻어두었다고 그대로 내놓았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그를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하며,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았습니다. ‘바깥 어두운 데’는 주인의 즐거움과 상반된 말로, 지옥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각각 주신 달란트가 있습니다. 그것이 다섯 달란트이든 두 달란트이든 그것은 관계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를 남겼느냐를 회계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충성했느냐를 보십니다. 여러분, 그 날에 주님은 분명히 회계하십니다. 그러니 지금 충성해야 합니다. 남들보다 재주가 없어서, 돈이 없어서, 건강이 없어서, 배움이 짧아서 못한다고 하지 말고, 가진 한 달란트로 충성하고 있으면 주인이 오실 때 칭찬을 받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여러분,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린도전서 13장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25장에 양과 염소로 비유하셨는데, 이것은 옳고 그름에 관한 심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 곧 소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벗었을 때에 입히고, 주릴 때에 먹이고, 그들이 갇혔을 때 돌아보는 것이 곧 예수님께 하는 것이라 하셨고, 그런 자들은 주님의 오른편에 있게 하시며 창세로부터 예비된 나라를 상속 받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대로 소자에게 무관심한 자들에게는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라 하시며, 그들을 영벌에 처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예수께서는 하늘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친히 성육신하심으로써 이미 인간의 고통과 슬픔에 동참하셨고(빌2:6~8), 정녕 그분은 고난당하는 자의 아픔을 깊이 이해하시는 그들의 친구였으며(히4:15), 위로자이셨고, 보호자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필연적으로 고난 받는 자의 이웃이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 재림을 준비하는 자, 그 날을 기다리는 자는 늘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깨어 있어야 하며, 자기 달란트대로 충성되게 일해야 하고, 주님이 주신 새 계명, 곧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괜히 요한계시록을 파고들어 이상한 이론에 심취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행하라 하신 말씀대로 열심히 살고 있으면, 그 날이 어느 시가 되었든지 간에 혼인잔치에, 주인의 즐거움에, 예비된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준비하지 않는 자는

망하기로 준비된 자다

영생의 길을 갈 것인가

영멸의 길을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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