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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천재 브람스

660호 · 2012-10-19

나는 브람스(J. Brahms)를 사랑한다. 그의 음악 뿐 아니라 그의 신앙과 생(生)에 대한 성실한 자세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성큼 다가온 가을만큼이나 하늘은 저만큼 멀어진 10월의 아침, 출근길 FM라디오에서는 브람스 교향곡 4번 1악장이 묵직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의 말년에 작곡된 것인 만큼, 인생의 깊이나 연륜의 무게가 충분히 다가오는 명곡이다. 베토벤(L. V. Beethoven)의 음악을 많이 닮아있다고 평자들은 말하지만, 거칠 것이 없었던 당당한 성격의 베토벤과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았던 브람스와는 비슷한 형식의 협주곡이나 교향곡 등에서도 분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귀가 멀어가는 운명의 거센 파도 앞에 치열하게 맞서던 베토벤의 음악에서는 고통조차도 밝고 힘차다. 맞서 싸워 이기고 극복할 수 있는 자신감으로 차 있다. 그러나 브람스의 음악에 파고드는 고통은 인생을 깊이 관조하는 영혼을 느끼게 한다. 브람스의 음악이 더 풍부한 인생의 깊이로 다가오는 이유일 것이다.

브람스는 늘 성경을 옆에 놓고 읽던 신실한 개신교도였다. 일생을 총각으로 살며 클라라 슈만(C. Schumann)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간직한 채, 순수의 시대를 살아간 음악가였다. 그는 바흐(J. C. Bach)와 베토벤의 고전주의 계보를 잇는 독일의 작곡가로도 유명하지만, 내가 그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의 인생과 음악적 성취를 낳은 진지한 삶의 자세이다.

젊은 청년 음악가 브람스는 친구 바이올리니스트 요하임(J. Joachim)의 소개로 당대 최고의 작곡가요 피아니스트인 슈만(R. Schumann)의 가정을 방문하게 된다. 거장 슈만으로부터 천재라는 감탄을 자아낼 만큼 그의 음악적 재능은 타고났다고 볼 수 있지만, 그의 작곡 패턴은 여느 천재 작곡가들과 달랐다.

마치 악보를 받아쓰듯 순식간에 써내려가는 작곡스타일로 세인을 놀라게 했던 모차르트(V. A. Mozart)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작곡가들이 한 곡을 완성해내는 기간에 비해, 브람스는 오래 걸려도 한참 오래 걸리곤 했다.

그의 4개 교향곡은 43세에 시작되어 52세에 완성되었다고 하니 무려 10년이 걸린 셈이다. 그가 게을러서 일을 미뤄두었다가 하느라 오래 걸린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수정하고 또 수정하며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곡을 다듬느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이 그의 기질과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그는 타고난 성실성으로 곡을 다듬고 또 다듬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가슴에 품고 일생을 총각으로 살며, 그 사랑의 기쁨과 아픔을 자신의 음악으로 승화시킨 그의 삶은 참 흥미로우면서도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아마 당대 라이벌로 명성이 드높았던 바그너(R. Wagner)나 낭만주의가 풍미하던 당시의 여타 예술가들이었다면, 결코 그들의 감정을 이성으로 다스리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아예 그런 도덕적 양심조차 고민하지 않고 사랑을 쟁취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브람스는 남편 슈만이 죽고 홀로 남은 클라라를 취하지 않았다. 모든 윤리적, 도덕적 장벽마저 제거된 마당에도 그는 일관되게 미망인 클라라와 그의 자녀들을 성심성의껏 돌보아주었다.

이는 그를 열렬히 지지해주었던 슈만에 대한 의리나 사랑하는 클라라에 대한 존중을 넘어 그의 일생을 관통하는 경건한 신앙자세가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는 일에도, 사람에도 이렇듯 성실하고 진지한 자세를 견지했다. 그의 높은 음악적 성취 못지않게 그의 삶이 후세에 존경 받는 이유일 것이다.

한 인간에게 있어 존중 받아야할 가치가 있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그의 성실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자기 앞에 놓인 생을 거부하지 않고, 성실한 자세로 맡은 일을 수행해가는 삶을 보는 것처럼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은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탁월한 재능이나 높은 지식, 아름다운 외모조차도 인간과 삶에 대한 성실하고 진지한 자세가 결여되어있다면, 그것들은 그에게 불필요한 장식일 뿐이다. 브람스는 자신의 재능보다는 성실한 자세로 자신의 삶을 음악에 녹이며 한 시대에 위대한 음악적 성취를 이룬 인물이다.

오직 예술지상주의에 입각하여 삶의 원칙에 시대에 앞서는 파격을 가하며 나름의 세계를 개척해간 천재들도 분명 평가받아 마땅하지만, 자신의 예술적 경지를 이루어가면서도 삶의 소중한 원칙들을 지켜간 인물에게 더욱 경외감을 갖게 되는 이유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수행할 때도 가져야할 자세가 있다면, 바로 성실성이라 믿는다. 하나님의 기름부음은 바로 그런 사람에게 있기 때문이다.

한은택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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