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즐기는 자는 따라잡을 수 없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따라잡을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한 분야에 일가(一家)를 이룰 만큼 성과를 낸 인물들을 살펴보면, 모두가 자신의 일에 사랑과 열정을 쏟아 부은 자들이다. 곧 자기 일에 대한 애착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 예를 멀리서 찾을 이유가 없다. 목사님이 아주 극명한 샘플이기 때문이다. 그분이 걸어온 길이 눈 덮인 산야요, 물 없는 사막이라 하지만, 지금까지 흔들림 없이 그 길을 갈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좋아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목사님이 지난여름, 기도원 요양센터에 대한 비전과 계획을 밝힐 때, 몇몇 사람들이 ‘왜 또 일을 벌이시냐?’며 난색을 표했다. 그 때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한다.
“좋아서 합니다.”
이에 더 무슨 이론(異論)이 있을 수 있겠는가? 좋아서 한다는데. 목사님의 그 사그라지지 않는 불꽃은 바로 위엣 것을 향한 확신과 소망의 심지로부터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하기사 세계 많은 곳을 다녀보며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나보지만, 목사님처럼 늘 하나님으로 들떠있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충분한 대답이 되리라 믿는다.
‘하나님으로 들떠있는 사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일을 더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할까? 오늘은 하나님께서 어떤 역사를 나타내실까? 흥분과 기대와 들뜸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또한 몸이 좀 불편하여 하루라도 쉬고 있을라치면, 뭔가 하나님 앞에 불성실하고 게으른 것 같아 안절부절못하는 말 그대로 워커홀릭(Workaholic, 일 중독자)이다.
지난 7월, 눈 수술로 ‘3개월간 크게 외치치도 마라, 빛을 막아주기 위해 선글라스를 써야 한다.’는 의사의 명령도 목사님에게는 걸림돌이 될 수 없었다. 선글라스를 쓴 채라도 단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했고, 급기야 산상집회가 시작되자 그마저 벗어던지고 아침, 저녁으로 단에 올라 혼신을 다하셨다.
9월까지 해외집회가 취소되어 충분히 쉴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었지만, 목사님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전국 지교회를 순회하셨다. 목사님을 돕기 위해 몇 번 지교회 집회 일정을 따라온 모 전도사는 목이 쉬고 입술이 다 터졌다며, 신문제작과 촬영을 위해 늘 동행하고 있는 땅끝예수전도단 직원들에게 놀라움을 표했다.
그들 또한 쉽지 않은 길이지만, 목사님의 그 신앙과 열정이 좋아서, 그날의 상에 대한 확신과 기쁨이 있기에 이제 더 이상 젊지만은 않은 연배에도 불구하고 목사님의 그 열정을 따라 일하는 것이다.
이제 목사님은 또 다시 세계를 향해 장도에 오른다. 부르신 분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믿어주고 일을 맡기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화답하고자 결코 이제는 그 여정이 간단치 않은 몸이지만,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고 고백했던 사도 바울의 정신으로 이 길을 간다.
“돈을 준다면 결코 가지 않을 것이다.”
목사님이 해외선교 여정에 지친 몸으로 자주 하시는 말씀이다. 시차와 벅찬 스케줄로 지친 몸에 한탄조처럼 하시는 말씀이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무겁게 스스로를 다지는 말씀이기도 하다. 단순히 개인적인 야망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 해도 몸 버려가며 이 먼 길을 다닐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 길은 영혼을 구원하는 길, 하나님이 부르신 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유언으로 부탁하신 일이기에 가는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 영혼을 살리는 일에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 하나님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희열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집회는 미국 애틀랜타(Atlanta)를 거쳐 멕시코(Mexico) 탐피코(Tampico)와 알타미라(Altamira), 두 도시를 도는 2주간의 여정이다. 특별히 목사님의 건강을 위해 성도 여러분들이 합심으로 기도해주시기를 간곡히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