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분수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가랑이가 찢어진다.”, “소나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분수껏 살라는 말이다. 또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마라.”는 말도 동일하게 분수에 넘치는 일, 애당초 불가능할 것 같은 것은 넘보지 말라는 말이다.
그러나 꿈은 분수와 무관하다. 꿈은 분수라는 잣대를 대는 순간 무너진다. ‘분수’란 자기 신분에 맞는 한계를 말한다. “네 분수에 무슨 의사가 된다고?”, “장애인인 주제에 무슨 과학자가 된다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꿈에 분수라는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그러나 꿈이 한계가 있다면 그게 어디 꿈이겠는가?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이 꿈일진대, 꿈은 무한대여야 한다. 꿈은 한계가 없다. 성공한 사람들을 봐라. 그들이 분수라는 말을 썼던가? 장애인인 루즈벨트가, 헬렌 켈러가, 배우지 못한 정주영 회장과 마쯔시다 고노스께도 분수를 뛰어넘는 꿈을 이뤄냈다. 버락 오바마도, 오프라 윈프리도 그랬다. 요셉, 막달라 마리아, 입다. 베드로, 에스더….
성경의 인물들도 바랄 수 없는 꿈을 바라보고 뛰어 그 꿈을 일궈냈다. 나 역시 그랬다. 광명시 철산동에서 교회를 개척할 당시, 세계를 교구화하겠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놀고 있네.’ 그랬었다. 주제를 모른다고, 분수를 모른다고. 그러나 20여 년이 흐른 지금, 그 꿈은 현실이 되었다.
가난하니까, 건강하지 못하니까, 못 배웠으니까 분수껏 살 것인가? 그걸 팔자라고 생각하고 그냥 살 것인가? 그러면 평생, 아니 자자손손 그 모양 그 꼴, 그 밥에 그 반찬으로 살아야 한다.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성공하려면 꿈을 가져라. 내 형편 처지 생각지 말고 큰 꿈을 가져라. 남이 비웃든 말든. 그리고 그 꿈을 키우면 언젠가 반드시 그 꿈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