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후회하지 않게 하라 (삼상15:1~11)
지난 12일, 충현교회 설립자인 김창인 원로 목사님이 경기도 이천의 한 교회에서 ‘충현교회 회복을 위한 긴급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내용인즉 이렇습니다.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한 것은 내 일생일대에 최대의 실수로, 후회한다. 아들은 교회를 부흥시키기는커녕 거룩한 성전 강단을 거짓과 욕설로 채웠고, 자기만이 복음을 소유한 자라고 외치며 모든 목회자와 교계를 모욕했다.
그는 목사로서의 기본 자질이 돼 있지 않은 사람이다.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잘못을 인정하고, 아들을 강단에서 내려오게 하는 것이 마지막 사명으로 생각했다.’ 90세를 훌쩍 넘긴 고령에다 휠체어를 탄 김 목사님은 성명서를 읽어 내려가면서 감정이 북받친 듯 눈시울을 적시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그 기사를 접하고 정말 생각이 깊었습니다. 그런 성명서까지 발표하실 때야 그 마음이 오죽했겠습니까? 자신의 가슴을 얼마나 쳤겠고, 얼마나 하나님 앞에 회개했겠습니까? 저는 그 마음을 다는 헤아리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는 알 것 같습니다. 저도 그런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도 제가 세운 목사들과 장로들로 인해 후회한 적이 있었습니다. ‘왜 내가 그 사람을 목사로, 장로로 세웠을까?’, ‘이초석! 너는 사람 볼 줄을 그렇게 모르냐? 하며 가슴을 때리며 후회했었습니다. 그 때 정말 후회보다 아픈 것이 없다는 말을 실감, 절감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위로를 받은 것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성경에서였습니다.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삼상15:11). 바로 이 말씀이 저를 위로했습니다. ‘아! 하나님도 후회하신 적이 있구나.’ 인자가 아니신 고로 후회함이 없으신 그 하나님도 후회하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말씀 바로 뒤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으로 하여금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게 만든 것은, 하나님의 탓이 아니라 사울이 변질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잘못 봐서 사울을 왕위에 앉힌 것이 아니라, 왕위에 오른 사울이 처음과 다르게 변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울이 처음부터 그렇게 오만방자한 자는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겸손한 자였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에게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될 것이라고 말하자 사울이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삼상9:21). 그런 그가 왕이 되더니 눈에 뵈는 것이 없게 된 것입니다.
저는 충현교회 김 목사님이 아들에게 세습할 때는 아들이 분명히 그만한 능력이 있고, 인품이 되었기에 그렇게 결정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욕심 때문에 그리하신 것이 아니리라 믿고 싶습니다. 그 아들이 담임 목사가 되고 변했겠죠.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에 어긋났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사울이 왕이 되고 나서 하나님의 뜻을 거슬렀듯이 말입니다.
충현교회의 이번 사건은 그냥 교계의 일로 치부하고 일단락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아볼 계기를 허락하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하나님이 나를 목사로 세운 것을 후회하고 계신 것은 아닌가?’, ‘나를 전도사로, 장로로, 권사로, 집사로, 구역장으로, 단체의 장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고 계신 것은 아닌가?’, ‘내가 변질되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으로 하여금 후회하게 했다면 그 인생은 종친 겁니다. 왜요? 하나님으로 하여금 후회하게 했던 자는 누구든 다 버림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아담과 하와가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처음 인간을 만드시고 너무 좋아하셨습니다. 얼마나 좋으셨는지 성경은 ‘심히 좋았더라’(창1:31)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부인하고, 하나님에게서 벗어나 죄악을 물마시듯 하니 하나님이 인간을 만든 것을 후회하시고, 물로 다 쓸어버리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창6:5~ 7).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를 향한 예수님의 심정도 그랬습니다.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 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 하였느니라”(마26:24). 예수님이 가룟 유다를 제자로 잘못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분명 12제자 중 전대를 맡길 정도로 확실하고 분명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돈 때문에 변질되어 예수님을 팔았고, 예수님은 팔린 것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까지 된 가룟 유다 때문에 상심하셨던 것입니다.
루시엘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완전했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를 천사장으로 세울 때에 하나님께 후회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변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노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를 세우심을 후회하시고, 그를 음부로 내쫓으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후회하는 자가 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열심히 뜁니다. 혹시 저를 목사로, 전도자로 세우신 것을 하나님이 후회하실까봐 복음을 들고 불철주야,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그 분의 자랑이 되지는 못할망정, 그 분이 후회하는 자가 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늘 초심을 간직하려고 노력합니다. 변질되지 않으려고 매일 나를 닦고, 나를 채찍질합니다.
또 하나 부탁드릴 것은, 주의 종이 후회하지 않는 직분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직분은 주의 종의 이름으로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의 종으로 하여금 후회하게 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후회하게 하는 것이 됩니다.
주의 종이 당신을 직분자로 세울 때는 분명 기대하는 것이 있습니다. 될 만하니까, 할 만하니까 직분을 준 것입니다. 그러니 변질되지만 않으면, 언제나 처음처럼 최선을 다한다면, 절대 당신을 직분자로 세운 주의 종이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바울을 섬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루디아처럼 말입니다.
이는 교회에 국한된 일이 아닙니다. 정치하는 사람들도 이를 새겨야 할 것입니다. 국민들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을 때는 정말 기대하는 바가 큽니다. 그들의 공약을 듣고 국민은 선택을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선거 당시와는 다르게 변질되어 당리당략만을 내세우고, 일신의 안일만을 꾀하여 국민들이 실망하고 후회하는 일이 빈번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을 뽑은 우리가 잘못일까요? 아닙니다. 공약을 이행하지 않는 그들 잘못이며, 변질된 그들의 잘못입니다. 국민을 계속 실망시키면 국민으로부터 내침을 받고 말 것입니다.
또한 남편과 아내가 서로 실망하지 않는 배우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배우자로 선택했을 때는 분명 사랑하고, 분명 기대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 아닙니까? 그런데 왜 많은 가정이 깨져나가고 있을까요? 왜 결혼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한탄하고 후회하는 자들이 늘어갈까요?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기대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이고, 연애할 때와 너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어서 첫사랑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다윗을 향하여 ‘나와 마음이 합한 자’라고 하신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신 하나님, 욥을 자랑하신 하나님. 우리도 그들처럼 하나님으로 하여금 후회함이 없도록 그 분의 뜻을 따르는데 최선을 다합시다.
주의 종을 기쁘게 하고, 주의 종의 자랑거리가 됩시다. 아울러 가족이 후회하지 않는 자가 됩시다. 그럴 때 우리 삶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습3:17). 할렐루야!
변질되면 버림받고
변화되면 사랑받는다
가장 빠른 후회라도 언제나 늦고
후회보다 아픈 것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