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는 이율이 가장 높은 은행입니다
멕시코(Mexico) 초아파스(Choapas) 집회를 위해 아카유칸(Acayucan)으로 우리를 데리러 온 사람들은 지오바니(Geovany)와 훌리오(Julio) 집사였다.
첫인상이 매우 우락부락한 게 꼭 산채에서 내려온 도적같이 보였다. 그런데 역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가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오바니는 아주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예의바른 타입은 아니었다. 그는 초아파스로 가는 동안 차 안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종은 조건을 따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저런 조건을 요구하는 것은 종의 자세가 아니지요. 종은 주는 대로 불평 없이 먹고 자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미국의 큰 부흥사라는 분은 이런 저런 조건을 요구해서 맞지 않으면 오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하나님의 종입니까?”
지당한 말이긴 하나 초청한 강사를 옆에 두고 다짜고짜 할 말은 아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시험 들기 딱 좋은 말 아닌가? 그러나 목사님은 그의 말에 흔쾌히 동의하며 “자네, 참 하나님의 사람이구먼!” 하고 등을 두드려주셨다.
“그래, 종은 의지가 없다.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게 종이지.”
그런데 초아파스에 도착하여 그가 인도한 숙소에 들어가려니 숨이 탁 막혔다. 입구는 철문인데다가 방들은 창문 하나 없이 어두컴컴했다. 말이 숙소지 딱 감옥이었다. 게다가 그들이 즐겨 쓰는 소독약 때문인지 냄새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1층은 도저히 쓸 수 없었다. 찌는 듯한 더위에 통풍도 전혀 안 되는 방에 들어갔다가는 무슨 일이 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보니 그나마 복도가 밖으로 이어져 통풍이 좀 될 것 같았다.
2층을 쓰기로 하고 방에 들어가니 조명은 또 왜 그렇게 어둡게 해놓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건물을 지은 마인드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오바니와 훌리오의 설명을 들으니 치안에 문제가 있어 안전을 고려한 설계란다. 오는 동안 ‘종은 조건을 따지지 말아야 한다’고 미리 쐐기를 박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목사님은 지오바니가 참 지혜로운 사람이라며 혀를 차셨다.
그런데 사람의 적응력은 스스로도 놀랄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이런데서 어찌 버티나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또 살만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 아닌가.
숙소에 식당이 없는 관계로 지오바니는 시내의 한 음식점을 전세 내어 우리를 대접했다. 그들은 시간에 관계없이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지극정성으로 대접해주었다. 손수 음식을 나르고 필요한 것이 없는지 수시로 물으며 우리를 챙겨주었다. 시간이 갈수록 지오바니의 신실함이 묻어나왔다. 기회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종을 모시게 되어 영광이라고 말하는 그는 놀라운 간증을 들려주었다.
“저는 젊은 날, 술과 마약에 빠져있던 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고 그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의 일이라면 먼저 달려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을 섬기고, 교회 일에 헌신했더니 하나님께서는 제 사업을 번성케 해주셨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만나고 깨달은 것이 있다면, 하늘나라는 세상 어떤 은행보다 이율이 높은 은행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물질을, 제 육체를, 제 온 마음을 하늘나라에 심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제 것이 어디 있습니까?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요, 저는 그것을 맡아 일하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목사님은 그의 간증을 듣고 크게 기뻐하셨다.
“정말 기가 막힌 말이다. 그렇지, 세상 은행이 주는 이자는 많이 쳐줘야 3, 4%지만, 천국은행은 적어도 30%, 보통은 60%, 많게는 100%까지 쳐주니 세상에 이런 이율이 어디 있단 말인가? 한국에 돌아가면 꼭 우리 성도들에게 이 간증을 들려줘야겠다!”
또 하나의 정겨운 장면. 세미나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중, 목사님은 갑자기 차를 멈추라 하더니 길가에 떨어져있는 선인장 가지를 주우시는 게 아닌가. 선인장을 다듬어 익혀 먹으면 소화에 좋다며, 가지고 가서 요리해 먹자고 하셨다. 그러자 지오바니는 그 집 주인의 양해를 구해 싱싱한 선인장을 따왔다. 목사님이 주운 것은 시든데다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던 게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이처럼 지오바니와 훌리오는 성심성의껏 목사님을 모시는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우리가 초아파스 집회를 마치고 미나티틀란(Minatitlan)까지 돌아오는 날에도 그들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우리를 차로 배웅해주었다.
초아파스를 떠나던 날, 지오바니는 가족을 데려와 목사님께 기도를 요청했다. 목사님의 기도를 받으며 그 큰 덩치의 지오바니는 온몸을 떨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정말 감동스런 장면이었다.
가는 곳마다 하나님이 준비하시는 사람을 만나며 우리는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더욱 절실히 경험한다. 그들의 말과 행동은 거울이 되어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나는 과연 선한 청지기로서 그 소임을 잘 하고 있는 것인가? 좀과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뚫지 못할 하늘나라에 나의 모든 물질과 나의 육체와 나의 온 마음을 심고 있는가? 진정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