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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매사 최선을 다했는가? (눅16:10)

641호 · 2012-06-08

사자박토(獅子搏兎)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자도 토끼를 잡을 때는 최선을 다한다는 뜻입니다. 밀림의 왕인 사자도 팔딱팔딱 뛰는 토끼를 잡을 때, 최고의 스피드를 내서 잡는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자가 최고가 되고, 그에 따른 영화를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

이 시대 최고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대학원 1학년 때 ‘근육위수축성 경화증’이란 불치병에 걸려서 3년 밖에 못살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진단을 받고 처음엔 너무 상심했지만, 얼마 후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이렇게 결심했다고 합니다. “좋다. 내 인생이 짧은 인생이라면 더 값지게 열심히 시간을 활용해야지. 나에게 부여된 삶의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하는 거다. 어쩌면 생각보다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을지도 몰라.”

결국 그는 의사들의 진단과는 달리 3년이라는 시한을 뛰어 넘어 지금까지 살아있고, 세계 물리학계에 엄청난 업적을 남겨 아인슈타인에 버금가는 학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의 건강은 악화되어 가고 있지만 스티븐 호킹 박사는 여전히 연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는 청년들을 위한 자리에서 딱 한 마디 했습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젖은 수건에서 물기를 짜내는 것이 아니라 마른 수건을 짜고 한 번 더 짜서 물방울을 만드는 것과 같이, 온 정성과 힘을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목회자와 장로들과 함께 한 이번 체육대회에서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응원을 해도, 경기를 해도 젖 먹던 힘까지 다 쏟는 자들을 보고 참 흐뭇했습니다.

반면, 대충대충, 대강대강 하는 자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분명 그런 자들은 다른 일도 그럴 겁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 상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뭐든 대충하는 사람이고, 대강대강 하는 사람입니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는 사람 말입니다. 여러분, 명작은 열정의 산물입니다. 열정이 무엇입니까? 어떤 일에 열중하는 마음입니다. 곧 ‘열정=최선’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죠.

믿음의 선친들은 학벌이 좋아서, 인물이 잘 나서, 가문이 좋아서 믿음의 전당에 오른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큰일도 맡기시고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는 최선을 다하지 않고 성공만 꿈꿉니다. 그러나 절대 그럴 수 없느니, 이는 가시나무를 심고 백합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일반입니다. 꼭 알아야 할 것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삼촌 라반의 고향인 하란으로 도망갑니다. 그가 삼촌 집 가까이에 도달했을 때, 들판에서 삼촌 라반의 양치기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야곱이 보니까 아직 짐승들이 모일 때가 아닌데도 목동들은 양을 모아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해가 아직 높은즉 짐승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뜯기라”(창29: 7)고 합니다.

‘왜 일을 대충하냐?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목자들은 야곱의 말에 꼼짝도 안합니다. 이제 얼굴을 상면한 처지이니 야곱이 그들을 어찌할 수 없었지만, 야곱의 이 성실한 성격은 라반의 집에서 잘 나타났습니다.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창31:40). 그래서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거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최선을 다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주인이 일이 있어 해외출장을 가야했기에 잠시 집을 비우게 되었습니다. 가기 전, 주인은 종들을 불러놓고 각각 재능대로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기고 떠났는데,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에게 돈을 받은 즉시 나가서 장사를 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수산시장에 나가 생선을 받아다가 열심히 팔아 갑절을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가락시장에 나가 야채를 받아다 장사를 해 동일하게 갑절로 남겼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돈을 땅에 묻어두고 빈둥빈둥 놀았습니다.

마침내 주인이 귀국을 해서 종들을 다 불러 모아놓고 회계했는데, 주인은 갑절로 남긴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를 칭찬합니다(마25:21). 그러나 받은 한 달란트를 그대로 내놓은 자에게는 그 가진 것을 빼앗아 갑절로 남긴 자에게 주고,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25:30)고 질타했습니다.

우리는 대개 큰일에는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작은 일은 우습게 여겨 대충하는 경향이 있지요. 그러나 그러다 큰 코 다칠 수 있습니다. 바로 여호수아가 아이성 전투에 패배한 경우가 그렇습니다. 여호수아가 큰 성인 여리고성을 함락하고는 작은 아이성을 공격했는데 그만 참패를 당했습니다. 아이성이 작은 성이라고 우습게 여기고 대충 준비하고 나갔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그들이 얼마나 대강했는지 나와 있습니다. “백성을 다 올라가게 말고 이삼천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마소서”(수7:3). 그러다 크게 참패를 한 겁니다. 그래서 두 번째 공격에는 여호수아가 최선을 다하기로 작정을 하고는 군사 3만 명을 뽑아 아이성 뒤쪽에 매복케 하고, 여호수아가 직접 다른 군사를 데리고 직접 아이성에 들어가 대승하게 됩니다(수8).

여러분, 나는 매사 삶 속에서 최선을 다했는가 뒤돌아봅시다. 저는 그랬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극히 적은 인원이 모인 세미나가 되었든지, 수만 명이 모인 대집회가 되었든지 동일한 자세와 각오로 하루 7, 8시간을 기도하고 나가 정말 최선을 다합니다. ‘이 집회가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영적 전쟁을 치릅니다. 찬양을 해도 하나님이 보신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기에 철산리에서 한 명을 놓고 시작한 교회가 오늘날 예루살렘교단을 만든 것입니다.

우리 기획실 직원들에게 물어보세요. 일을 하다가 중간에 밥 먹으로 가는 일이 있는지. 일이 끝나야 밥을 먹는 것은 이제 우리 사무실에서는 상례가 되었습니다. 용장 밑에 약졸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 배운 제자들이 어땠습니까? 모세에게 배운 여호수아며, 엘리야에게 배운 엘리사며 다 스승에 버금가는 일을 해냈습니다.

제게 배울 것이 뭐 있겠습니까?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입니다. 우리 교단의 제자들과 성도들이 이것을 배웠으면 합니다. 그러면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사회에서든 인정을 받게 되고, 더 큰일도 하게 될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52일 만에 예루살렘성곽을 준공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최선을 다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기도의 응답이 없습니까? 갈멜산의 엘리야처럼 최선을 다해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고, 예수님처럼 땀방울이 핏방울이 될 정도로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까? 누가복음 18장의 과부처럼 최선을 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될 때까지 두드리지 않기 때문이고, 보일 때까지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이 인자(人子)의 삶을 마치시고 최후에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다 이루었다”(요19:30). 최선을 다한 자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우리도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후회란 최선을 다하지 못한 자들의 넋두리이니까요.

요한계시록의 말씀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3:15~16). 사도바울이 그의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한 말도 있습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딤전4:15).

최선을 다하는 당신, 가장 아름다운 자이며, 하나님의 칭송을 듣기에 마땅한 자입니다. 그런 당신에게 하나님의 축복과 사랑이 넘칠 것이며, 이 땅에서는 꼭짓점 인생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내일 죽을 것처럼 일하고

천년 살 것처럼 준비하라

최선을 다하는 자가

최고의 영광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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