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심은 인생의 암적 존재다 (딤전6:7~10)
모든 인간 속에는 욕망(慾望)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욕망이 무엇입니까? 욕망의 사전적 의미는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려고 탐하는 마음으로, 한 마디로 욕심이요, 탐심을 말합니다.
이처럼 인간 마음 속에 욕망이 꽈리를 틀고 있는 까닭은 욕망, 곧 탐심이 마귀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탐심으로 인해 하늘에서 내쫓김을 당한 자입니다. 그는 본시 루시엘이라는 천사장이었는데,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처럼 높아져서 더 영화를 받아보겠다고 하나님의 자리를 탐하다가 그것이 발각되어 흑암, 곧 음부에 갇히게 된 자입니다(사14:12~14).
음부, 곧 이 땅으로 쫓겨난 그들은 자기의 속성대로 처음 사람인 아담과 하와에게 탐심을 불어넣었습니다. 에덴에 지천으로 널린 과일나무를 두고, 딱 하나 먹지 말라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탐하게 구슬린 것입니다.
하여 그들로 죄를 짓게 했고,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담이 생기게 했으며, 결국 그들을 에덴에서 쫓겨나는 신세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탐심은 곧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3:5).
탐심은 암(癌)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암(癌)의 한자를 보면 입 구(口)자가 세 개나 있지요. 암은 어떤 조직이나 어떤 세포든 마구 먹어치웁니다. 그렇게 모든 조직을 마구 먹어치워 사람도 죽이고 암 자신도 죽고 맙니다. 탐심이 생기면 암처럼 마구 먹어치웁니다.
더 갖겠다고 먹고, 더 누리겠다고 먹습니다. 그것을 먹으면 자기만 죽는 것이 아니라 자기 때문에 가족도, 단체도 다치고 죽는 줄 알면서 자제하지 못하고 마구 먹어치우니, 탐심이야 말로 인생의 암적 존재임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탐심의 끝은 사망으로(약1:15),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얻지 못하게 됩니다(고전6:10).
곧 과테말라 집회가 있습니다. 과테말라에 가면 꼭 만나봐야 할 사람이 있는데, 바로 후안입니다. 후안은 여러 번 간증했던 사람이라 여러분들도 낯익은 이름일 겁니다. 그는 과테말라 제2의 재벌로 우리의 집회를 많이 도왔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지금 체포되어 과테말라시티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미국 FBI에서 그를 미국으로 압송해가려고 과테말라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왜 그런 사태에 이르게 되었느냐 하면, 후안이 무기밀매에 손을 댄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무기들이 멕시코의 마약 마피아 손에 들어갔답니다. 무기 암거래와 국제마약밀매조직과 연계된 증거가 포착되었으니 미국 정부까지 나선 상황이고요.
미국으로 압송되면 종신형으로 죽을 때까지 감옥에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무엇이 그의 인생을 그렇게 망가뜨렸을까요? 바로 탐심입니다. 과테말라 제2의 부호니 얼마나 돈이 많겠고, 권력도 크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탐했던 것이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입니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지요.
여러분, 탐심은 타락한 욕망이요, 탈선한 욕구입니다. 그래서 탐심을 자제하지 못하면 후안처럼 탈선하고 추락하게 됩니다. 인간의 본성이란 ‘더, 더’ 하며, 속도를 높이고 달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악한 것들이 그렇게 부추깁니다. 그럴 때 브레이크를 밟아줘야 합니다. 그래야 사고 나지 않습니다. 제가 만일 후안 곁에 있었더라면 분명히 브레이크를 밟아줬을 거고, 사고를 미연에 막았을 겁니다.
성경에도 이 브레이크를 밟지 못해 인생을 망가뜨린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윗이 많은 처첩을 두고도 남의 아내를 탐하다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까(삼하12)? 가룟 유다가 돈 몇 푼을 탐내어 예수님을 팔아먹고 결국은 어찌 되었습니까(마26)? 그리고 권력을 탐하던 이세벨은 자기를 시중들던 내시에 의해 산 채로 성 밖으로 던져진 후 예후에 의해 밟히고 개들이 찢어먹는 그야말로 비참하기 이를 데 없지 않았습니까(왕상21)?
또 아간은 여리고성을 함락할 때 전리품을 탐하다가 자손과 함께 돌에 맞아 죽었고(수7), 게하시는 재물을 탐하다가 문둥병이 걸린 것(왕하5)을 성경을 통해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요즘도 좀 더 가지려다가 패가망신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있는 것도 넘치는데 좀 더 가지려다가, 있는 자리도 높은데 더 높아지려다가 있는 것까지 빼앗기고 추락하는 자들이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호리병 속에 손을 넣은 원숭이 이야기 다 아시죠? 사냥꾼들이 호리병속에 망고를 넣어두면 원숭이가 손을 넣어 망고를 꽉 잡습니다. 그 때 사냥꾼들이 원숭이를 잡으러 오지요. 그런데 원숭이는 그 망고를 쥔 채로 호리병에서 손을 빼려고 합니다. 빠질 리가 없지요. 그래서 사냥꾼 손에 잡히고 맙니다. 손만 펴면 호리병에서 손을 빼고 충분히 도망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원숭이의 망고가 곧 인간의 탐심입니다. 그 잡았던 것을 놓아야 죄의 덫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시베리아에서 늑대를 잡는 방법은 이렇답니다. 얼음 위에 피가 줄줄 흐르는 고기를 놓는답니다. 고기 속에는 날카로운 칼을 숨겨 놓고요. 그러면 피 냄새를 맡은 늑대들이 와서 혀로 피를 빨고, 고기를 먹는답니다. 고기 속에 칼이 숨겨져 있는데도 하나라도 더 먹으려고 혀가 잘려나가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먹는답니다. 그러다 결국 피를 흘리고 죽고 만답니다.
여러분, 탐심은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족한 줄 알고 감사하면 절대 욕심, 탐심은 발동하지 않습니다. 무조건 먹어대는 돼지도 자기 배의 70%만 차면 더는 안 먹는다는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만족은 왜 끝이 없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을 만큼만 챙기라고 했는데도, 욕심으로 많이 챙기니 아침에 다 그것에 벌레가 생긴 일이 출애굽기 16장에 나와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도상(途上)의 주자입니다. 인생의 마라토너란 말입니다. 그런데 마라토너가 1등 하겠다는 욕심 때문에 100m 단거리 선수처럼 뛴다면 얼마가지 않아 호흡곤란으로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마라토너는 자고로 자기 페이스대로 호흡조절해가면서 가야합니다. 욕심 부리지 말고 말입니다.
또 마라토너를 잘 보십시오. 그들이 몸에 뭐 많이 걸쳤습디까? 잔뜩 먹고 뜁디까? 다른 거 이것저것 기웃거립디까? 아닙니다. 그들은 정말 최소한의 것만 입었고, 배고프지 않을 만큼 먹고 뜁니다. 앞만 보고 달립니다. 인생의 마라토너도 동일합니다.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다른 사람과 나누며 살아야 골인할 수 있습니다.
탐심을 버려야 합니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눅12:15). 저는 해외집회에 갈 때, 가방 하나 달랑 들고 갑니다. 그러나 비행기 떨어지면 그것마저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욕심 부리지 않고, 소유욕을 버리고 성취욕으로 사는 것입니다. 인생은 길어야 8, 90입니다.
수의에는 주머니도 없는데 왜 그리 욕심을 부립니까? 왜 그리 돈, 명예, 쾌락에 목을 맵니까?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모르십니까?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6:7~8).
이제 욕망을 버리고 희망을 꿈꾸십시다. 욕망은 자기 혼자만의 욕구 때문에 많은 사람을 망하게 하지만, 희망은 여러 사람이 함께 누리는 소망이기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또한 욕망은 죄와 사망에 이르게 하나, 희망은 찬란한 미래로 나를 이끌기 때문입니다. 제가 육십여 성상을 지내고 얻은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물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은 절대 그릇 이상을 욕심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흐르는 물은 패인 곳을 채우고 다시 욕심 없이, 미련 없이 흘러갑니다. 우리 그렇게 살아봅시다.
여러분, 성공자의 주머니에는 희망이 있지만, 실패자의 주머니에는 욕망, 탐심이 있습니다. 영·혼·육의 성공을 원한다면 탐심을 버리십시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할렐루야!
많이 먹으면 탈난다
정도껏 분수껏 살자
욕망보다는 희망을 가지고
소유욕보다는 성취욕을 가져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