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능력이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7).
간음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서리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데려와 어찌 처결하실 건지 묻는다. 모세의 율법에 간음한 자는 돌로 쳐 죽이라 했는데, 과연 예수님은 어찌 할지 고소할 조건을 찾기 위해 시험한 것이다.
이에 예수님은 돌을 들고 서있는 무리 앞에서 조용히 땅에 글을 쓰시다가 이렇게 말하신 것이다. 땅에 쓰신 글이 무엇이었든 간에 이 말을 듣고 모였던 무리는 양심의 가책을 받아 하나둘 모두 사라졌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리고 예수님은 홀로 남은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8:11).
이전 일을 기억치 말고 다시 시작하라는 예수님의 격려는 비단 간음한 여인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오늘도 숱하게 넘어지고 고꾸라지며 좌절해있는 영혼들에게 새로운 출발을 격려하시는 동일한 말씀이다.
율법 앞에 자유로울 자는 아무도 없다.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은 율법에 흠이 없다고 자랑했지만, 율법의 문자 자체보다 그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뜻을 진정 다 지켜 행할 자는 없다. 더구나 예수께서 강화한 도덕법,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8)에 걸리지 않을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
이는 꼭 음욕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품은 생각조차 행동에 옮기지 않았다 해도 이미 죄라는 뜻이요, 미워만 해도 살인이라는데 어찌 나는 흠이 없다고 당당할 수 있느냔 말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잣대로 볼 때, 빠져나갈 수 없는 죄인일 뿐이다.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인간의 힘으로는 죄로부터 벗어나거나 스스로 구원할 능력이 없다. 따라서 우리에게 예수가 필요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없이는 그 누구도 죄로부터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뱀에 물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세웠던 놋뱀(민21:9)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이는 지존자 스스로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죽임까지 당하는 처절한 고통을 체휼하시며 이루어낸 법이다. 바로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했다는 연서(戀書)를 피로 쓰신 것이다.
그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너의 죄를 묻지 않으니 가서 다시 죄를 범하지 마라.” 그러나 우리는 마음이 원이여도 육신이 약하여 번번이 또 죄를 지으며 넘어지고 자빠지기 일쑤다. 하나님 앞에, 예수님께 민망할 정도로 나의 약함을 책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다.
내가 아무리 씻을 수 없는 죄를 범하였다 해도 여전히 나를 믿어주시고, 참아주시고, 기다려주시는 하나님이 바로 내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자식이 속을 썩이다 썩이다 한계에 달하면 호적에서 파낸다고 큰소리쳐도 아비의 가슴에 그 자식은 결코 지워질 수 없다.
오히려 더욱 그 자식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눈물을 삼키는 것이 부모다. 하물며 인간의 혈육지정도 이러할진대,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49:15)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알기는 하는가?
사도 바울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고 자신 있게 외친 이유다.
죄가 문제가 아니다. 그 죄를 일흔 번에 일곱 번도, 아니 그 이상의 무한한 사랑으로 용서하시는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나아가는 것이 참 용기요 능력이다. 가룟 유다는 그 용기가 없어 죄 가운데 죽었다. 달려가 용서를 구하며 품에 안겨 울면 어느 아비 어미가 그 자식을 용서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 용기가 없어 오히려 더욱 부모 마음을 아프게 한다. 면목이 없다며 뒤로 물러가는 것 또한 양심의 표현일 수 있겠지만, 이런 자세가 원수 악한 마귀에게는 호재가 될 뿐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죽고자 하면 산다. 하늘의 불을 끌어내리는 게 능력이 아니다. 비록 연약한 육신이지만,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에 가슴을 치며 돌이키는 자세가 참 능력인 것이다. 한마디로 회개가 능력이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여 행동하는 믿음. 하나님은 그 믿음에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Henry H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