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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7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예절이 살아있는 가정 (엡5:22~6:4)

637호 · 2012-05-11

이 세상에서 가장 허물없는 상대는 가족일 겁니다. 또 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상대 역시 가족일 겁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가족에게 너무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너무 허물없고 너무 편해서 그렇습니다. 가족이니까 다 이해하고, 다 받아줄 거라는 생각에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가족의 구성원, 곧 부모님이나 형제, 아내, 남편, 자녀들도 다 인격체입니다. 그들도 기분 나쁠 수 있고, 화나고 슬플 수 있습니다. 다만 가족이기에 그 감정이 빨리 사그라지고 반감될 뿐, 그들도 감정은 있다는 것입니다.

가족은 허물없고 가장 편한 상대가 분명하지만, 더불어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함부로 대하고 신경 안 써도 그만인 존재가 아니라 불면 날아갈 세라, 덜커덕 거리면 깨질 세라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 귀하디귀한 존재입니다. 그래야 가정이 안 깨지고, 그래야 가정이 안 날아갑니다.

요즘 세상 말로 콩가루 집안이 참 많습니다. 위계질서 없는 집안이 정말이지 너무 많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마치 현대식이요, 선진형인 것으로 착각을 하는 사람들마저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개벽을 해도, 가정 안에서 질서는 있어야 하고, 예절도 있어야 합니다.

요새 이런 이야기하면 고루하다고, 케케묵었다고 할지 몰라도, 예부터 내려오는 기본예절로 삼강오륜(三綱五倫)이 있습니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그 내용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삼강(三綱)이 무엇인가하면,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입니다. 군위신강(君爲臣綱)이란 신하는 임금을 섬기는 것이 근본이라는 뜻이요, 부위자강(父爲子綱)이란 아들은 아버지를 섬기는 것이 근본이라는 뜻이며, 부위부강(夫爲婦綱)이란 아내는 남편을 섬기는 것이 근본이라는 뜻입니다.

오륜(五倫)은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것이 근본이라는 뜻의 군신유의(君臣有義), 아들은 아버지를 섬기는 것이 근본이라는 뜻의 부자유친(父子有親), 남편과 아내는 분별이 있어야 한다는 부부유별(夫婦有別), 어른과 어린이는 차례가 있어야 한다는 장유유서(長幼有序), 그리고 벗과 벗은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뜻의 붕우유신(朋友有信)이 그것입니다.

저는 세월이 변했어도 이 도리는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건 유교에서 말하기 전, 성경에서 이미 다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엡6: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엡5:22),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엡5:28).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절, 예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관계를 오래 유지 시킬 수 있는 비결입니다. 먼저 부모, 자식 간에도 예절이 있어야 합니다. 엄마 아빠니까 믿노라 하고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 됩니다. 요즘은 친구 같은 부모가 가장 좋은 부모라고 합디다. 그러나 그렇다고 맞먹어서는 안 됩니다. 부모가 나갔다 들어오시면 나와서 인사해야 합니다. 주무시기 전에 “안녕히 주무세요.” 하고 인사해야 합니다. 부모가 수저 들기 전에 먼저 식사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부모님께 존댓말을 써야 합니다.

특히 부모에게 훈계하지 마세요. 좀 배웠다고, 좀 안다고 부모님께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 나이 들면 판단력도 이해력도 떨어지는 게 당연한 겁니다. 당신이라고 영원히 젊지 않습니다. 어느 집 자식 보니까 부모님께 쌍소리를 막 합디다. 하긴 부모 패는 놈도 있고, 내쫓는 놈도 있는데요. 장담컨대, 그런 놈들은 나중에 제 자식에게 쌍소리 들을 것이고, 몽둥이로 맞고 내쫓길 겁니다. 뿌린 대로 거두니까요.

자식에게도 예절은 있습니다. 내 자식이니까 내 맘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자식은 내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하나님으로부터 자식을 위임, 위탁받은 청지기입니다. 그러니 예절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애들 방이라고 무작정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꼭 노크하세요. 그리고 욕하지 말고 막말도 하지 마세요. 훈계는 가하나 구타는 안 됩니다. 그건 학대입니다. 또 자식의 감정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부모 마음대로 모든 것을 결정해서도 안 됩니다. 자식이라고 함부로 대하면 나중에 늙어 자식이 함부로 대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부부간의 예절도 있습니다. 예전 우리 어르신들은 서로 간에 존칭을 사용했습니다. 말도 높였지요. 남존여비(男尊女卑)가 확실했던 시대였음에도 서로를 존대한 것은 의미 있게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즘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서로에게 예의는 지켜야 할 것 같습니다. 가끔 정말 못난 남자들이 보입니다. 밖에서는 큰소리 한 번 못 치다가 집에 와서 마누라 잡는 남자 말입니다.

마치 집에서 왕이나 된 듯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아내에게 시키는 남자, 걸핏하면 아내에게 손 올라가는 남자, 있는 욕 없는 욕 해대는 남자, 이거 다 못나서 그런 겁니다. 소리를 치려면 밖에서 쳐야지요. 복어와 마누라는 사흘에 한 번씩 패야 한다고요? 천하에 못난 놈들입니다. 성경에 그랬습니다. 아내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벧전3:7)라고요. 힘든 일, 어려운 일을 도와주고, 함께 해줘야 합니다. 아내에게 막말하지 마십시오. 더욱이 친정 욕은 하지 마십시오. 또 아내를 하인 부리듯 하지 마십시오.

어느 남편이 아내에게 욕과 폭언을 일삼았습니다. 그 때마다 아내는 속이 너무 상해서 나무판자에 대못을 하나씩 박았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못이 잔뜩 박힌 나무판자를 발견하고는 아내에게 이것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아내는 “당신이 나에게 폭언을 퍼부을 때마다 그것이 내 마음에 못이 되어 찌르기에 나무판자에 못을 하나씩 박았어요.” 남편은 충격이었습니다. 자신이 그렇게까지 아내에게 폭언을 퍼부었는지 인식조차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이제부터는 좋은 말만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사랑한다, 고맙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무판자의 못을 하나씩 뺏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보니 나무판자에 못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나무판자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남편 곁에서 아내가 말했습니다. “못이 다 빠졌어요.” 그러자 남편은 고개를 떨구며 말했습니다. “못은 다 빠졌지만, 못이 박혔던 자국은 남았어.” 그렇습니다. 막말하면 아내의 가슴에 대못이 박히고, 그것은 큰 상처로 영원히 자국이 됩니다. 그러니 아내에게 막말하지 마십시오. 손찌검은 더더욱 안 되고, 아내를 부려서는 안 됩니다.

또한 아내들도 예절을 지켜야 합니다. 아내들은 남편에게 평생 여자로 살기를 원하면서도 여자라는 신분을 잊고 삽니다. 머리는 늘 헝클어지고, 옷은 트레이닝 복 같은 옷만 늘상 입습니다. 말은 상스럽고, 소리는 벅벅 지르고, 동네 험담만 하고, 남편을 쥐 잡듯 합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매일 새 옷을 입으라는 것이 아니라 단정하게 차릴 수는 있다는 말입니다. 평생 바가지를 안 긁을 수는 없지만 남편이 수긍할 수 있게끔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회원 중에 미국에 사는 어느 권사는 평생 남편에게 화장 안 한 얼굴을 보여준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 권사는 남편이 일어나기 전에 항상 깨끗하게 화장하고 단정한 옷을 입는다고 합니다. 나이가 60이 넘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렇게까지야 권할 수는 없지만, 분명 예의는 지켜야 할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 가장 믿는 가족, 가장 흉허물 없는 가족이라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처를 주기 쉽습니다. 그래놓고서는 ‘가족이니까 그랬지.’ 라던가,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하면 어폐가 있는 것 아닐까요? 가까울수록 예절을 지킬 때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가정은 사회의 기본조직으로 가정에서 예절을 배워야 사회에 나가서도 예절 바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옛말에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가정예절이 꼭 필요한 이유입니다.

오늘의 말씀에 나를 비추어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바랍니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시128:3). 할렐루야!

훌륭한 예절과 부드러운 언행은

많은 난제의 해결사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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