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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3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신앙의 부활, 인격의 부활 (고전15:12~26)

633호 · 2012-04-13

부활의 신앙,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초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후에 부활하셨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역사적 사건으로만 치부하고 있습니다. 부활절을 1년에 한 번 기념하는 날로만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를 위한 것이었고, 그 분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그 분의 죽음이 없었다면 우리에게 대속은 없었고, 그 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다 헛것이고, 우리에게 더 이상의 소망은 없습니다.

저는 이 부활절에 죽은 신앙이 부활하기를, 또한 죽은 인격이 부활하기를 소망합니다. 먼저 신앙의 부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부활절에 성전 입구에서 삶은 계란을 나눠주던데요, 계란이 다 병아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계란은 유정란과 무정란 두 종류가 있는데, 무정란은 아무리 암탉이 품고 있어도 병아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품고 있으면 오히려 썩을 뿐입니다.

그러나 유정란은 시간이 지나면 그 안에서 병아리가 부화됩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이에 견주어 보겠습니다. 유정란이나 무정란이나 모양이 똑같듯, 교회에 다니는 모습은 누구나 같습니다. 믿음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다 성도의 모습을 지닙니다.

그러나 어떤 자는 시간이 지나면 그 안에서 새 생명이 부활되나 어떤 이는 썩어질 뿐입니다. 왜요? 그 안에 생명이 있고 없고의 차이입니다. 생명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8장 9절~11절의 말씀입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예수님이 부활 후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의 영이 바로 성령인데, 그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셔야 우리의 심령이 부활하는 것이며, 부활의 심령이 될 때 장차 올 부활, 죽음 다음에 영광스런 부활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죽은 심령, 죽은 믿음, 죽은 신앙으로는 절대 갈 수 없습니다. 그곳은 우리의 심령이 살아나야, 죽은 믿음이 살아나야, 죽은 신앙이 살아나야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여러분은 왜 신앙생활을 하다가 믿음이 식어 죽은 심령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천국에 대한 소망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죽으면 끝이 아닙니다(히9:27). 하나님이 우리를 흙으로 지으시고, 거기에 생기를 불어넣어서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창2:7). 그래서 수한이 차면 육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우리의 영은 천국에서 살든 지옥에서 살든 영원히 살게 됩니다.

여러분, 천국은 가도 되고 안 가도 되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천국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라도 꼭, 반드시 가야 하는 곳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는 오른 눈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오른 눈을 빼고라도 천국에 오라고 했고, 오른 손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오른 손을 자르고라도 천국에는 꼭 오라고 했습니다.

왜냐? 천국을 안 가면 지옥에 가는 양자택일이기 때문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오른 눈 때문에 지옥에 가게 생겼거든 오른 눈을 빼버리고 지옥은 피하라는 말씀이고, 오른 손 때문에 지옥 가게 생겼거든 그것을 잘라내고 지옥행에서 빠져나오라는 말씀입니다. 그만큼 지옥은 무시무시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신앙상태는 당신이 제일 잘 압니다. 내가 죽은 심령인지, 내 안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지 없는지 잘 압니다. 진단 결과 내 심령이 죽었거든, 내 믿음과 내 신앙이 죽었거든 다시 살려야 합니다. 부활해야 합니다. 그래야 죽은 다음에 영원히 죽지 않는 새 생명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15:50~52).

둘째, 인격의 부활이 있어야 합니다. 요즘 인터넷에 기독교를 비하하는 글이 많습니다. 물론 악한 것들의 궤계임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책임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반듯하지 못하고,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사태에 도달한 것입니다.

“지네들도 그러면서 왜 교회 다니는 사람들만 가지고 그러냐?” 라고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세상의 빛이요, 산 위에 있는 동네인지라 모든 자들에게 다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마5:14~15). 어두운 곳에 있는 자들은 빛 가운데 있는 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보이는 법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더욱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욕을 먹지 않게 됩니다. 세상에서도 나쁜 일을 하고, 부도덕적인 일을 하면 “뉘 집 자식이야?” 하고 손가락질 합니다. 우리가 악을 도모하고, 올바르지 못하면 “교회 다니는 것들이….”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부활한 우리는 인격적으로도 부활해야 합니다. 사울이 완전히 다른 바울이 되었듯이, 적당히 개량된 존재가 아니라 전혀 다른 내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신의 성품에 이르러야 한다는 뜻입니다. 혈기 많고, 우유부단했던 베드로가 인격의 부활을 경험한 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4~7).

즉 우리의 행실이 어떠해야 하느냐? 믿지 않는 자들이 우리의 행실을 보고 ‘예수 믿고 싶다.’,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 한 번 가보고 싶다.’라고 할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막말하고, 음란한 말이나 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사기치고, 도적질한다면 누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겠습니까?

베드로전서 3장 1~2절 말씀입니다.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 이는 아내들에게 국한된 말씀이 아닙니다. 아내 대신에 나를 넣어보면 내 행실로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다는 말씀이 됩니다.

은밀히 가난한 자를 돕는 나를 보고, 시부모를 잘 섬기는 나를 보고, 동네 골목을 매일 쓰는 나를 보고, 규모 있게 살림하는 나를 보고 누군가 교회로 발길을 옮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열 마디 말보다 올바른 행동거지가 낫습니다. 그러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며, 오른 뺨을 치거든 왼뺨을 돌려 대주고, 속옷을 갖고자하거든 겉옷까지 주며, 억지로 오 리를 가자는 사람이 있거든 웃으며 십 리를 동행해주십시오.

당신에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꾸고자 하는 자를 거절하지 말며, 주린 원수가 있거든 먹이십시오. 분명히 당신의 행실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가 높임을 받으실 것이며,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신앙의 부활, 인격의 부활이 이루어질 때 주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 될 것이며, 우리를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가 널리 전파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번데기는 결국 나방이 되고

구더기는 결국 파리가 된다

품위라는 그릇 속에

예절을 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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