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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사막에도 물만 있으면 꽃이 핀다 (히5:7~10)

629호 · 2012-03-16

마태복음 5장에는 신약의 정수(精髓)라고 할 수 있는 예수님의 산상수훈(山上垂訓)이 쓰여 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팔복(八福)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그 두 번째가 바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4)입니다.

‘애통하다’라는 뜻은 그냥 우는 정도가 아니라 가슴이 찢어지도록 처절하게 우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이는 통곡, 방성대곡과 같은 개념입니다. 또한 ‘위로’란 하나님이 통곡하는 우리를 당신 곁으로 가까이 부르신다는 뜻이어서, 달리 표현하면 하나님이 우리 곁으로 달려오신다는 뜻이 됩니다. 젖먹이 아이가 갑자기 자지러지게 울면 엄마가 하던 일을 다 팽개치고 달려가 살피고 달래는 것이 바로 위로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우리가 애통할 때 위로하실까요? 이는 우리 어머니가 자주 하시는 말씀 안에 답이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내 새끼 눈에서 눈물 나는 꼴은 죽어도 못 본다. 내 새끼가 울면 내 눈에서는 피눈물이 난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저도 부모가 되어보니까 정말 내 새끼 눈물은 못 보겠습디다.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도 동일하십니다. 당신 새끼 눈에서 눈물 나는 꼴은 죽어도 못 보십니다.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 얼굴을 저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부르짖을 때에 들으셨도다”(시22:24). 이는 하나님은 눈물에 한없이 약하신 분이심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통곡하는 자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만을 바라고 사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애통해야 하는 확실한 이유입니다.

애통의 첫째는 회개할 때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유월절 저녁식사를 하셨습니다. 최후의 만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식사를 하시면서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펄쩍 뜁니다.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자기는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그런 베드로를 보시고 예수님이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다시 호언장담합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대로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고, 그 때 새벽을 깨우는 닭이 울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이 나서 심히 통곡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마26:75).

하나님은 베드로의 애통하며 드리는 기도와 눈물을 보셨습니다. 왜냐하면 시편 51편 17절,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는 말씀대로, 하나님은 애통하는 자를 버리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산상수훈의 말씀처럼 위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 베드로를 가까이 찾아가 그에게 큰 직분을 주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요21:15).

다윗도 애통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가 밧세바를 취하기 위해 남편인 우리아를 접전 지역에서 죽인 일을 나단이 책망할 때, 다윗은 죄를 깨닫고 통곡했었습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시6:6). 그런 그에게 하나님의 용서와 위로가 있었고, 하나님은 오히려 다윗이 ‘내 마음에 합한 자’(행13:22)라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는 세리의 기도가 나옵니다. 세리는 자신이 죄인이라고 하늘도 올려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리며 기도합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18:13). 그러자 예수님이 세리의 애통함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둘째, 소원의 기도를 드릴 때 애통합니다. 한나는 브닌나와 더불어 엘가나라는 한 남편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브닌나는 자식을 쑥쑥 잘도 낳는데, 한나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자식 없는 것도 서러운데, 브닌나가 한나를 괴롭게 합니다. 그래서 한나는 하나님 앞에서 애통했습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삼상1:10). 그랬더니 하나님의 위로가 한나에게 있어, 사무엘을 얻게 됩니다.

저도 목회 27년 동안 정말 많이 애통했습니다. 누군가 제 가슴을 헤쳐 보면 상해서 갈기갈기 찢겨 있을 것입니다. 밖으로는 교계의 탄압과 매스컴의 모함 때문에 그랬으며, 안으로는 어머니와의 갈등, 또 두 아들의 방황과 반항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성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저만의 아픔이었기에, 저는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가슴을 찢으며 참 많이 울었습니다.

단에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성도들을 독려하고 가르쳤지만, 집에 돌아가서는 창자가 꼬일 만큼 울었습니다. “하나님, 이제 흘릴 눈물도 없습니다. 어느 때까지입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 힘으로는 못합니다. 도와주십시오.” 그 때마다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저를 위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애통하는 제 곁에 친히 오셔서 문제를 다 해결해주시고, 사랑으로 보듬어주셨습니다. 그래서 물 없는 사막 같은 길을, 눈 덮인 산야 같은 길을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 제 목회 27년을 한 마디로 정의하라고 한다면, 바로 애통하는 기도로 산 세월이었다고 지체 없이 말할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 우리는 애통합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이 허물어지고 성문이 불탔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서 애통하며 기도합니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느1:4). 하나님은 애통하는 느헤미야를 보시고 위로하셨고,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여 예루살렘 성 재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하게 하셨습니다.

히스기야의 이야기도 해보겠습니다. 죽을병이 든 히스기야, 그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곧 죽으리라는 예언을 듣게 됩니다. 그러자 그는 벽을 향하여 앉아 애통하며 기도했습니다(왕하20:3). 그러자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해 즉시 위로하셨습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 만에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에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왕하20:5~6).

예수님도 당신의 사명을 이루시기 위해서 애통하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5:7). 또한 나사로가 죽었을 때 애통하는 두 자매의 눈물을 보시고, 당신도 우셨으며 그의 오라비를 살려주셨습니다(요11).

사막에 왜 생물이 살지 못합니까? 물이 없어서입니다. 사막에도 물만 있으면 온갖 생물이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이 사막처럼 황폐케 된 것은, 우리 삶 속에 생동감이 없음은, 우리 삶이 푸를 수 없음은 우리 삶 속에 눈물이 말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애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덜 급하시지요? 덜 억울하지요? 덜 아프시지요? 덜 가난하지요? 그래서 안 울지요? 당신이 애통하지 않는 것은 아직 벼랑 끝에 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모래바람만 이는 삭막한 삶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님 앞에서 애통하세요. 통곡하세요. 방성대곡하세요. 용서해달라고, 살려달라고, 고쳐달라고요. 그러면 크고 측량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는 하나님, 슬퍼하는 자를 흥기시켜 안전한 곳에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 당신을 분명히 위로하실 것입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34:18). 할렐루야!

눈물은 기적을 낳는다

애통하며 기도하라

우는 아이에게 젖 물리는 법이다

목적을 위하여 자존심을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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