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易地思之)
아들아,
네가 일전에 우리 집으로 진입하는 골목이 넓어져서 차 돌리기가 수월해졌다고 했었지? 그게 그렇게 된 데에는 다 사연이 있단다. 지금 우리 골목 입구에 일본 대사관저를 짓고 있잖니? 얼마 전 아비가 관저를 짓고 있는 일본인 담당자를 집으로 초대했었단다.
그리고 그에게 융숭한 대접을 하고 난 뒤, 네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주며 관저담장을 1m만 안으로 들여서 세워달라고 부탁했지. 그래야 소방도로가 넓어진다고. 그랬는데 이 일본인이 흔쾌히 승낙을 해준 거란다.
그 일본인을 감동시킨 네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이거란다. 아비가 30대 초반이었을 게다. 당시 아비가 살던 방배동이 한창 개발되던 시절이었지. 그 때 아비도 네 할아버지 땅에 큰 양옥집을 지으려고 계획했단다. 그런데 당시 아비는 번듯하게 집을 지을 생각에 길목까지 터를 넓혀집을 지으려고 했지.
물론 그 길목도 할아버지 땅이었기에 당연한 일이라 여긴 게지. 마을 사람들의 반대와 불평이 흘러나올 수밖에. 그러나 아비는 젊은 혈기에 그걸 묵살하고 그냥 일을 진행하려고 했단다.
그 때 호인이셨던 네 할아버지가 아비를 호되게 야단치셨단다. “담장을 1m 들여라! 그런다고 그 땅이 남의 땅된다니? 사람들 다닐 길목은 터줘야 할 거 아니니?” 그래서 순종해서 땅을 들여 집을 지었었지. 그런데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후에 그 일본인을 만나고 나니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생각나더구나.
아들아,
역지사지가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보고 이해하라는 뜻인 것은 알지? 우리가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은 무조건 내 입장과 처지에서 생각하고, 내 시각으로 상대를 저울질 하고, 상대를 보기 때문이란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 무슨 까닭이 있겠지’라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해 못할 것이 없고, 정죄할 것도 없을 텐데 말이다.
얼마 전에 인터넷 상에 떠들썩했던 국물녀 사건이 생각나는구나. 공공장소에서 아이가 뛰다가 뜨거운 국물을 들고 있던 어느 아주머니와 부딪치게 되는데, 이 사건으로 아이는 화상을 입었고, 이에 화가 난 아이의 엄마는 아이에게 화상을 입히고도 사라진 아주머니를 인터넷을 통해 고발했지.
이것은 네티즌 사이에서 일파만파로 퍼져 그 아주머니에게 인신공격성 발언이 쏟아지고, 그 아주머니는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지.
그래서 결국 그 아주머니는 CCTV를 통해 사실을 밝히는데, 확인해보니 아이와 아주머니가 부딪혀 뜨거운 국물이 쏟아지면서 아주머니도 화상을 입고 화들짝 놀라 당황하는 순간, 아이도 놀라 CCTV 화면상에서 사라지고 없었단다.
이 상황을 보면서 아이의 엄마가 조금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했더라면 화상으로 인한 상처는 입었을지언정 서로 마음의 상처는 주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구나.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배도 고파보고, 아픔도 겪으시고, 고통도 당하셨단다. 왜? 인간들이 겪는 모든 것들을 몸소 체험하시므로 우리들을 이해하시기 위해서였단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4:15).
남을 비판하지 않고, 정죄하지 않는 법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임을 너는 부디 잊지 않았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