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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불에 그슬리다만 나무토막을 쓰시는 하나님 (슥3:1~5)

627호 · 2012-03-02

오늘 본문은 사단이 당시 대제사장이던 여호수아를 여호와 하나님께 참소하는 장면입니다.

사단이 여호와 하나님께 말합니다. “하나님, 당신이 세운 대제사장의 모습을 보십시오. 저 사람은 대제사장을 할 만한 인물이 못됩니다. 죄도 많고, 허물도 많습니다. 안 보이십니까?”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이 사단을 크게 책망하십니다. “시끄럽다. 어디 감히 내가 세운 대제사장을 참소하려 하는가.

여호수아를 봐라. 네 말대로 여호수아는 불에서 꺼낸 그슬리다만 나무와 같은 자다. 내가 그의 본질을 왜 모르겠느냐? 다 알고도 내가 사용했느니라. 그러나 내가 저의 죄과를 다 제하였으니 더는 네가 간섭할 바가 아니다.” 하시고, 여호수아가 입고 있던 더러운 옷을 벗기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시고, 머리에 관을 씌우십니다.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 같은 자’,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자요, 볼품없는 자요, 형편없는 자요, 죄로 인해 더럽기가 한량없는 자를 말합니다. 그게 누구겠습니까? 바로 우리입니다. 마귀는 오늘날도 하나님께 참소합니다. “하나님, 보십시오. 당신이 목사라고 세운 저 사람, 장로라고 세운 저 사람, 권사요, 집사라고 세운 저 사람의 본질을 보십시오. 뭐 하나 변변한 게 없을뿐더러 죄로 가득하지 않습니까?

자리가 아깝습니다. 하나님 체면이 있지, 어떻게 저런 사람들을 세우셨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마귀의 참소에 대노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래, 저들은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와 같은 자들이다. 하지만 내가 저들의 죄과를 제하였으니 네가 어쩔 테냐?”

이것이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이유입니다. 이것이 그 분의 은혜에 할 말을 잊는 이유입니다.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 같이 쓸모없고, 볼품없고, 형편없는 우리를, 죄 덩어리인 우리를 구원하시고, 또 사용하여 주시니 하늘을 두루마기 삼고 바다를 먹물 삼은들, 만입을 가지곤들 그 은혜와 사랑을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어디 그렇습니까? 감사 대신 불평을 털어놓습니다. 왜요? 그것은 자기의 본질을 잊기 때문입니다. 세상 말로,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잊어서 그런 겁니다. 우리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2장의 말씀에 쓰인 우리의 본질은 이렇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자요, 진노의 자녀요, 그리스도 밖에 있던 자들로 외인, 곧 이방인이요, 소망도 없던 자요, 하나님과 무관했던 자’, 이것이 우리의 본질입니다. 그런 자를 하나님이 당신의 독생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시고,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과거의 우리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사야서 51장에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사51:1)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과거의 나를 알면, 내가 나온 구덩이를 알면, 다시 말해서 올챙이 시절을 알면 절대 불평할 수 없고, 절대 주의 일에 나태할 수 없고, 감히 누구를 정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원은 애굽에서 떠나 종살이를 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의 소원을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어 그들을 애굽에서 건지셨습니다. 진짜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찌했습니까? ‘덥다’, ‘춥다’, ‘물이 없다’, ‘고기가 없다’고 계속 불평만 했습니다. 왜요? 애굽의 종으로 살던 자신들의 본질을 다 까먹었기 때문입니다.

이럴 줄 알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절기를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애굽의 종이었던 너희를 기억하고, 바로의 손에서 건지신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말입니다.

“장래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찜이냐 하거든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쌔 그 때에 바로가 강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낳은 것을 사람의 장자로부터 생축의 처음 낳은 것까지 다 죽이신고로 초태생의 수컷은 다 여호와께 희생으로 드리고 우리 장자는 다 대속하나니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으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찌니라”(출13:14~16).

사울이 왜 그처럼 변했는가 하면,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삼상9:21)라는 과거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찮은 목동에서 왕위에 오르게 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며 늘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법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오는 날, 너무 기뻐 뛰며 자기의 몸이 드러나도록 춤을 추었습니다. 이것을 본 그의 아내 미갈이 체통을 운운하며 다윗을 책망하자 다윗은 말합니다.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저가 네 아비와 그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로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삼하6:21). 목동이었던 자신의 과거를 잊지 않았기에, 불에서 그슬린 나무 같은 자신을 왕으로 삼으신 것에 그토록 감사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딤전1:12~13). 교회를 핍박하던 과거를 돌아보면 지금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겁니다. 마땅히 내침을 받아야 할 자신을 택하셔서 능력을 주시고 귀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핍박이 온들, 환난과 기근과 위협이 온들 그게 무슨 대수겠느냐, 오직 감사밖에는 없다는 겁니다.

저 역시 사도 바울과 같은 심정입니다. 농사꾼의 자녀인 저를, 세상에서 온갖 죄 가운데 살았던 저를, 잘 나지도 못한 저를 주님의 자녀 삼아주시고, 더욱이 주의 종으로 부르셔서 이 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를 맡겨주신 것을 생각하면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그래서 힘들다는 소리를 안 하는 겁니다.

그래서 못 쉬고, 동분서주하고 있는 겁니다. 까짓 핍박이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까짓 모함이요? 그것마저 감사할 뿐입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아휴, 나는 배운 것도 없고, 잘 난 것도 없어서 구역장 못해요.”, “나 같이 죄 많은 사람이 뭘 하겠어요.” 이러십니까? 당신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당신이 불에서 그슬리다만 나무 같은 자인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불에서 그슬리다만 나무 같은 우리를 택하셔서 세마포를 입히신 까닭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누린 그 한량없는 은혜와 사랑을 자손대대로 전파하라고 그러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백향목 같이 잘 나고, 많이 배우고, 죄 없다 하는 바리새인 같은 자를 쓰시는 것이 아니라 불에서 그슬리다만 나무 같은 우리를 통해서 만민에게 베푸시는 당신의 사랑이 전파되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격하고 보답하고자 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입히시고 돕는 자를 보내셔서 우리로 하여금 일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요약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나온 구덩이를 돌아보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그 사랑과 은혜를 자손대대에 전해야 합니다.

유의해야 할 것은 이 말이 과거에 연연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개구리가 “나의 본질은 올챙이야.” 하며, 자신을 과소평가하거나 낙담할 필요가 없음은 지금은 올챙이가 아니라 개구리가 되었기 때문이듯, 우리가 과거의 모습에 연연할 필요가 없음은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새 사람이 되었고, 더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당당히 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반포하며, 그 분의 사랑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울타리를 헐 때는

울타리를 칠 때를 기억하라

Think 하면

Thank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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