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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호 목차 › 객원컬럼

진실을 찾아서

627호 · 2012-03-02

1951년, 세계 3대 영화제 중의 하나인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인 금사자상을 수상하며 전후 일본의 힘찬 재건을 세계에 알린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羅生門)’은 한 시골 사무라이의 죽음을 둘러싼 사건공방을 통해 진실의 문제에 진지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사무라이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마다 증언이 달라 진실은 혼돈에 빠지고, 결국 사건의 진실은 현장을 지켜본 사람도, 죽은 영혼도 아닌 해와 나무와 바람만이 안다는 기묘한 설정으로 관객을 흡인하고 있다.

진실의 문제는 그 진실로 다가가는 여러 입장들이 상충될 때, 더욱 혼돈에 빠지곤 한다. 진실이 두려운 사람도 있고, 진실에 목말라 하는 사람도 있다. 진실의 무게가 다른 것이다.

완전범죄를 꾀했던 다윗왕은 아마 전자에 속할 것이다. 그는 자기의 씨를 잉태한 밧세바로 인해 불륜의 진실이 드러날까 두려워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 장군을 전장에서 죽게 한다.

우리아 장군의 순수한 우국충정이 오히려 죽음을 재촉한 것이지만, 다윗은 간단히 잠재울 수 있었던 진실이라 여겼을지 모르나 모든 인간사를 꿰뚫고 계시는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동자를 간과하고 말았다.

굽은 길은 결국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작은 섭리가 이루어진 셈이다. 반면 요셉은 진실에 목말라하며 노예로, 감옥으로 전전하지만, 정작 하나님이 그를 높이실 때 와서는 그 진실이 큰 의미가 없어진다. 바로의 꿈을 풀고 바로에게 붙들려 쓰임 받을 때, 그의 전과기록이 문제시되었다는 대목은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보디발의 아내를 겁탈하려했다는 죄목은 진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노예 신분이라는 한계 때문에 아무런 변명도 못한 채 감옥에 갇혀있어야 했다. 그런데 그를 감옥에서 구원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진실이 밝혀져서가 아니라 꿈을 잘 풀어주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우리 목사님이 기성교계의 표적이 되어 이단 시비를 받아왔지만, 이는 사실 칼자루를 쥔 자들에 의해 왜곡된 진실 때문이다. 그것이 지금까지도 여전히 목사님과 우리 교회를 괴롭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그러한 핍박이 오히려 목사님과 우리 교회를 부흥 성장시키는 계기로 작용했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진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이라지만, 목사님은 그것 때문에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거나 진실을 밝히겠다고 아우성치신 적도 없다.

필자가 여러 예를 들며 진실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까닭은 진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진실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주권이 중요함을 말하려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도 간의 다툼이 이는 내용들 가운데 이런 진실의 문제로 인해 서로 옳다고 주장하다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잔뜩 시험에 들어서는 신앙생활 자체에 힘을 잃어가는 모습들을 보기 때문이다.

때론 억울해하기도 하고, 진실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답답해하기도 한다. 그런데 만일 그러하다면, 스스로를 돌아보기 바란다. 전혀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처해 하소연할 곳도 없이 진실의 벽에 갇혀있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그 진실이 다윗의 경우처럼 가차 없는 응징으로 드러나게 할 필요가 있을 수도 있고, 요셉의 경우처럼 때가 되어 전혀 새로운 길로 인도할 수도 있다. 또한 목사님의 경우처럼 왜곡된 진실과 상관없이 진실의 벽 너머에 자신의 길을 내며 힘차게 나아가도록 인도하실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당신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진실을 다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의 사건을 통해 여러 가지 일을 이루신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스타일이시며, 그 과정에 여러 포석을 두시고 일을 진행하신다.

따라서 진실을 인내하며 기다리는 자에게 그 진실이 힘을 얻고 그 진실로 인해 새로운 길로 인도함 받는다.

이 역사의 전개과정은 아무도 모른다. 오로지 우리 삶과 인간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만이 그분의 계획대로 정연하게 진행하실 뿐이다. 고로 하나님께서 그 과정을 통해 나를 성장시키시려는 뜻이 있음을 믿고 기다리자.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자녀가 당신이 원하시는 일정 수준에 이르도록 끊임없이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훈련시키신다. 이는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도 아니요, 반드시 우리가 그 시험을 통과하고 극복해내야만 다음단계로 진입해갈 수 있다.

따라서 베드로전서 4장 12절에서 13절에 있는 베드로 사도의 말처럼, 우리에게 닥쳐오는 시험을 이상히 여기지 말 일이다.

Henry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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