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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제철소에는 왜 불이 꺼지면 안 되는가? (행19:1~20)

626호 · 2012-02-24

제철소의 불은 어떠한 경우에도 꺼지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불이 꺼지는 순간 용광로에서 흘러나오는 쇳물이 파이프라인에서 굳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복구하는 것은 제철소를 다시 세우는 것보다 비용이 많이 들고, 수고롭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철소는 연중무휴 가동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제가 제철소 이야기로 문을 열었는가 하면, 우리 삶 속에도 연중무휴 불이 밝혀져야 하고, 뜨거워야 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성령이십니다. 제철소의 불이 꺼지는 순간 제철소 존폐의 문제가 제기되듯이, 우리 삶 속에 성령이 소멸되는 순간 우리의 존재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이는 로마서 8장 14절의 말씀, 곧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셨기 때문이고, 또 성령이 우리 안에 계셔야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4:6).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지 않으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것이요, 결국 하나님의 자녀일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성령은 누구일까요? 공생애 동안 모든 것을 다 이루신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성령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고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라”(요14:16).

‘보혜사’라는 말은 ‘우리를 돕기 위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아 항상 곁에 계신 자’라는 뜻이고, 또 예수님이 ‘다른 보혜사’라고 표현하신 것은 처음 보혜사는 바로 예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처음 보혜사로 오셔서 우리를 죄악과 질병, 저주와 죽음에서 건지신 후 부활 승천하시고, 그 다음 예수님과 똑같은 다른 보혜사가 오셔서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도와 천국까지 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고로 이제는 성령이 우리와 함께 거하셔서 우리를 채우시고,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와 동행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심과 같이, 성령이 곧 예수님이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이시지요.

그렇다면 성령이 우리 안에 임하시면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위에서 말씀 드렸다시피 성령은 곧 하나님이시요, 예수님이시기에 그 분이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먼저는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제철소에 들어간 철이 새롭게 되듯 말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다시 말해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는 것이기에 내 습성이나 성격 대신에 그 분의 성품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곧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같은 예전에 내게 없던 것들이 나타납니다. 성경은 이를 성령의 열매(갈5:22~23)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성령이 오시면 우리가 죄의 길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왜냐고요? 성령은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기 때문입니다(요16:8). 우리가 세상을 따라가고 죄를 지으면 성령이 책망해 주시기에 우리가 옳은 길, 진리의 길을 좇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이 오시면 우리가 장래의 일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6:13).

그리고 이사야서 11장 2절, 곧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라는 말씀처럼, 성령은 지혜의 영이요, 총명의 영이요, 모략의 영이요, 재능의 영이요, 지식의 영이요, 하나님을 경외케 하는 영이요, 거룩한 영으로서 이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면 우리를 이끌어주시고,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시고, 기억나게 하시고, 꾸짖으시고, 위로하시고,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절에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실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 권능이 있었으니 당연히 성령님도 권능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으셨으니 당연히 하나님이시며 예수님이신 성령도 동일한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더욱이 성령은 영이신고로 육을 입으셨던 예수님보다 더 큰 일도 하실 수 있기에 그 분이 우리에게 오신 것이 유익인 것입니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

그래서 그 분을 모신 우리도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능력이 무엇입니까? 무기입니다. 곧 이는 성령을 받는 것이며,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은사로 우리를 무장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무기가 좋으면 아무리 무서운 적이라도 무서울 것이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성령으로 인해 전신갑주를 입으면 세상을 능히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이렇습니다.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 믿음과 병 고치는 은사, 능력, 예언, 영분별, 방언, 방언 통역(고전12:8~10)입니다.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모인 120문도가 성령을 받은 후에 능력을 받고, 세상에 나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며 귀신을 쫓았던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날은 성령시대입니다. 신앙생활의 성패는 성령과의 교제가 있느냐 없느냐,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느냐 입지 못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오래 믿었느냐, 장로, 권사라는 직함으로 성패가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찌어다(고후13:13)”라고 했고, “성령을 소멸치 말며(살전5:19)”라고 말한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고 말한 것은, 성령을 받으면 모든 것이 가하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왜냐? 하나님이, 예수님이 성령으로 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성령을 소멸하지 않을까요? 이는 기도해야 합니다. 휴대폰의 배터리가 떨어지면 전기에 꽂아 충전하듯, 성령 충만은 오직 기도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습관적으로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바울도 베드로도,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배터리를 잠깐 꽂아놓으면 잠깐 쓸 수 있지만, 완전 충전하면 오래 쓸 수 있듯, 성령도 오래 기도하고, 깊이 기도하면 충만함을 잃지 않게 됩니다.

특히 방언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우리말로 기도하면 오래하기 힘듭니다. 1시간 이상 기도한다는 것은 방언기도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14:18).

성령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람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제철소의 불이 꺼지면 이미 제철소가 아니듯, 자동차에 기름이 없으면 고철에 불과하듯 말입니다.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교회에 다니는 자들 중에는 예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있고, 진정한 성도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바로 성령을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의 차이입니다. 예수의 이름만 불러도 구원은 받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로 권세와 능력을 받게 되고, 하나님의 깊은 속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늘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고, 성령의 은사로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도 천국 생활하고, 주님이 짓고 계신 그 나라에도 넉넉히 들어갑시다. 성령 충만하면 영혼이 잘 되고, 범사에 잘 되며 강건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New Start, 새로운 출발은

성령 충만으로 부터 출발한다

성령이 없는 신앙생활은

앙꼬 없는 찐빵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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