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시작을 기억하십니까?
작년 늦은 가을, 금식을 위해 기도원을 찾았다. 어머니의 품이 그러하듯 기도원은 찾을 때마다 푸근한 안식을 선사한다.
강사기도실에서 교회와 성도들의 기도제목들을 가지고 씨름을 하던 어느 날, 잠시 잠깐 기도원 경내를 둘러보았다. 겨울의 길목에 들어섰음인지 사위는 온통 잿빛으로 물들었다. 게다가 마침 갈수기(渴水期)인지라 기도실 옆 실개천은 몹시 메말라 있었다.
그저 작은 웅덩이에만 물이 고여 있을 뿐. 그런데 뜻밖의 광경이 시선을 확 잡아끌었다. 그리 넓지도 않은 그 자그마한 웅덩이에 온갖 물고기가 그득한 것이다. 그야말로 물 반, 고기 반이었다. 게다가 웅덩이의 크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손바닥보다 더 커 보이는 녀석들도 제법 여럿이 눈에 띈다.
아마도 물을 찾아 흘러가다 예까지 다다른 듯싶었다. 그 때 불현듯 스치는 깨달음이 있었다. ‘그래, 물이 있는 곳에 물고기가 모이듯, 생명이 있는 교회로 영혼들이 모여 드는 법!’ 너무나도 평범한 진리였다. 하지만 내게는 충격으로 와 닿았다.
그렇다. 조건이나 환경이 아닌, 정말 생명이 호흡하는 교회를 향해 목마른 영혼들은 발걸음을 옮긴다. 나 자신도 그 살아 숨 쉬는 생명의 말씀에 이끌려 예수중심교회에 발을 내딛게 된 것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이러한 의문이 뒤따른다. ‘지금 내가 섬기는 교회는 생명이 넘치는 교회인가, 과연 우리 교회는 지친 영혼들에 모든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가?’
깨달음과 함께 끊임없이 솟구치는 의문들을 하나하나 되새기며 기도 동산에 오르다가 문득 발길이 멈추어졌다. 그동안 수도 없이 오르내렸던 그 길이다. 하지만 한 번도 돌이켜보지 못했던 바로 그 길이었다. 그 길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내 신앙의 정체성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초반, 여름방학 기간 중에 기도원 봉사에 참여했다. 당시 부여된 임무는 동료 신학생들과 함께 기도 동산을 꾸미는 일. 그에 따라 기도 동산 곳곳에 개인 기도실을 세우고, 비만 오면 진창길로 변하기 일쑤였던 입구 언덕길도 콘크리트 작업을 했다.
그리고 더하여 길 양 옆과 언덕 사이사이에 단풍나무와 백일홍,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각종 나무들을 심었었다. 그리고 쏜살같은 시간이 흘러 20년 세월이 지났다. 그 잊혀져간 시간들 속에서 고작 손가락 굵기에 불과하던 나무들이 어느 샌가 시나브로 성장하여 기도동산 전역을 뒤덮고 있었다.
한자리에 진득이 뿌리를 내리어 버티고 섰더니 이젠 그 자체로 예술 작품으로 화(化)한 것이다! 그 나무들이 저마다 내게 말을 걸어온다. ‘잘 이겨 내었노라’며 ‘끝까지 승리하자’고.
정말 휘어질듯, 금세 부러질 듯 연약한 신앙이었다. 핍박도 많았다. 고난 또한 어찌 필설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단입네, 사이비네’ 하는 조롱은 물론 ‘부모의 뜻을 저버리고 주의 길을 간다.’ 하여 집에서 내쫓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믿음의 말씀을 새기고 또 새기는 동안, ‘예수 외에는 정복자가 없으니 오로지 예수만 섬기리라’는 가르침을 따라 한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섰더니 나 또한 저 나무들처럼 되어가고 있다.
고난을 의미하는 헬라어 ‘바사노스’는 ‘시금석(試金石)’이라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시금석이란 말 그대로 금속에 흠집을 내어 그 조흔색을 통해 대상 금속의 순도와 그 질을 측정하는 돌을 의미한다. 과거 금과 은 등을 화폐로 사용했을 때 그것이 진짜인지 혹은 가짜인지를 구별하기 위해 널리 사용되어졌다.
결국 성도에게 있어 시련과 고난은 자신이 참 크리스천인지, 아니면 짝퉁 크리스천인지를 증명해 보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셈이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내가 참 예수중심의 구성원인가 아닌가도 여기서 가름난다.
첫사랑의 뜨거움을 간직하며 신앙생활을 나름 잘 해 오다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소리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간혹 눈에 띈다. 멋들어진 예배당과 환경, 그리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저울질해보다 조심스레 발길을 옮기는 이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먼저 우리 모두가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다. 과연 그 모임에, 그 무리에 성령으로 말미암은 생명이 샘솟고 있느냐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우리 모두는 생명을 사모하여 여기 모였고, 그 생명을 땅 끝까지 전파하기 위해 이제껏 쉼 없이 달려왔다. 지금 이 시간 내 심령을 뜨겁게 달구었던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길 원한다. 그러하다면 우리 신앙의 시작이 무엇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으리라.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천국을 대망하는 그 부르짖음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Joseph Sh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