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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일꾼은 일머리를 아는 자다 (딤후2:1~7)

610호 · 2011-11-04

저는 올해 장로 및 권사, 안수집사 임직식을 조금 늦췄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제 귀에 들려오기에 신중을 기하기 위해서입니다.

‘누구는 주고, 왜 나는 안 주냐?’, ‘왜 그런 사람을 주냐?’는 등 잡음을 잠재우려고 시기를 다소 늦추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직분자의 자격과 자세에 대해 먼저 말씀을 드려, ‘과연 내가 직분자로서 합당한가, 나는 직분을 감당할 만한 그릇인가, 나는 직분을 감당할 만큼 성장했는가’ 자가 진단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코자 합니다.

먼저 직분과 직책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직분(職分)이란 직무를 수행하는 본분을 말하며, 직책(職責)이란 어떤 일에 대한 책임을 질만한 위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목사나 장로, 권사, 안수집사, 집사 등의 직분은 교회의 법과 규례를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목사가 주는 것이지만, 직책은 목사의 임의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안내위원장이나 성가대장 등은 제 권한이라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삼성이나 LG에서 사원을 뽑았다고 합시다. 이것은 그들에게 그 회사의 이름으로 일할 수 있는 신분을 부여한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부서에 투입하느냐는 전적으로 인사부장이나 사장의 권한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러나 세상 직분과 우리가 다른 것은 우리는 영존직을 부여받았다는 것입니다. 한 번 해병이 영원한 해병이듯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은 직분은 영원합니다.

그렇다면 왜 교회 내에 직분자를 세울까요? 그것은 성도를 온전케 하기 위함입니다. 성도를 온전케 하기 위해서 직분자는 자기를 헌신해야 합니다. 다른 성도를 위해 때로는 물질로, 몸으로, 시간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부지런히 주님의 겸손을 배우고, 다른 성도를 돕고 세워주어 그가 온전하게 되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럴 때 나를 직분자로 세우신 주님의 뜻을 이루게 됩니다.

또 직분은 하나님의 일, 즉 교회와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해 세웁니다. 개인의 영리나 만족을 위해 세우는 것이 아니고, 다만 하나님의 뜻을 더욱 원활하게 이루기 위해 직분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회사가 나를 직원으로 뽑았을 때는 일을 잘해서 회사에 이익을 남기라는 뜻이듯, 하나님이 예수 이름으로 우리를 직분자로 세웠을 때는 주님의 뜻을 이루고, 하늘나라를 확장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직분자를 세운 까닭은 역할 분담으로 일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역할분담의 시초는 모세에 의해서 일겁니다. 출애굽한 모세가 대소사의 일들을 다 처리하느라 골머리를 썩일 때, 그의 장인 이드로가 역할분담의 효율성에 대해 지적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능력과 지력을 갖춘 자를 찾아 역할을 나누니 모세는 물론이고, 백성들까지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었습니다(출18:14~27).

역할분담은 이렇듯 서로 사는 상생(相生)의 효과가 있고, 일의 극대화와 시너지 효과까지 거둘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6장에 보면 역할분담으로 인해 직분자가 세워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증가함으로 일들이 얽히고설켜 서로 불평하게 되자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들을 불러 회의를 하게 됩니다.

사도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행6:2~4)” 하니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웠습니다.

그러자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여 일곱 집사를 세웁니다. 이렇게 하여 사도와 성도의 직무가 분담되기 시작하였고, 사도는 성도에게 직분을 부여하여 특별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을 넘겨주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이 직분제도로 인하여 초대교회가 더욱 부흥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음은 직분자의 자격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찌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 보리요) 새로 입교한 자도 말찌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찌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딤전3:2~7).

먼저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요, 수신제가(修身齊家)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가정을 이끌 줄 아는 자가 교회도 아름답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직분자는 다시 말하면 일꾼입니다. 그러므로 일꾼은 일머리를 아는 자여야 합니다. 쉽게 말해 일을 할 줄 아는 자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학력위주나 문벌위주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일은 할 줄 아는 자에게 직책을 줘야 합니다. 그것은 차별이 아니라 구별입니다. 일도 할 줄 모르는데 직책을 가지고 있다면 그 교회가 어찌 되겠습니까?

셋째, 모세가 그랬고, 초대교회가 그랬듯이 덕이 있는 자여야 합니다. 일은 잘 하는데 덕이 없다면 성도들이 다 시험에 들 겁니다. 인성이 제대로 된 사람, 그리스도의 성품에 이른 사람을 말합니다. 그게 안 된다면 적어도 거기에 다다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지식이 없는 것은 가르치면 되지만, 인격이 안 된 사람은 가르쳐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5~7)”라는 믿음의 8음계를 당부했던 것입니다. 인품이라는 그릇 속에 예절을 담은 사람이 직분자로서 합당합니다.

넷째, 진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진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실이 기반이 될 때 만인과 화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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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교회의 직분은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좋고 나쁜 것도 없습니다. 이는 힘과 권력을 휘두르는 자리도 아니고, 세도를 부리는 자리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직분은 오로지 봉사직입니다. 헌신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헌신은 헌 신발이 되는 것입니다. 새 신발을 신으면 좋은 곳만 골라서 가지만, 헌 신발은 진흙탕에도, 오물 있는 곳에도 관계없이 갑니다.

그런 곳을 자청하는 것이 직분자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나도 드러나는 직책이면 좋겠다’, ‘나도 생색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할 것도 없습니다. 그저 자기 달란트대로 충성하면 됩니다.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을 위해 손발, 눈과 코 입의 역할을 각각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발이 힘들다고 안한다면 어떻게 교회가 진군합니까? 다 눈 하겠다고 하면 그게 기형이지 정상입니까?

또한 직분을 수행할 능력이 안 되면 좀 나중에 받으셔도 됩니다. 능력이 안 돼서 안 받는 게 죄는 아닙니다. 직분을 잘 감당하면 큰 복이고 하늘나라에 가서 상과 면류관을 받지만, 아니면 그것이 짐이 되고, 시험거리가 되어 결국 믿음마저 잃게 되는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의 비유를 잘 보십시오.

이익을 남기지 못한 자에게 주님은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에 여러 동역자들을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한 사람, 아킵보에게는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골4:17)고 했습니다. 직분 수행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자가 되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직분을 받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직분을 받거들랑 그 직분을 귀히 여기고 충성되게 일하며, 모든 이의 본이 되어 하나님과 주의 종과 성도들에게 인정을 받고 기쁨이 되십시오. 그래서 그 날 주님과 한 자리에서 떡을 떼는 영광을 누립시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4:2). 할렐루야!

종에게는 의지가 없다

오직 순종만이 있을 뿐이다

당신은 교회의 디딤돌인가

아니면 교회의 걸림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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