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인 시카고
가을이 보도(步道) 위로 떨어지는 10월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간직하고 있을 추억의 한 페이지를 열고 있을 터. 그러나 추억이 추억인 것은 그 추억을 수놓아준 아름다운 사람이 있기 때문이리라.
우리는 지난 9월과 10월, 미국 시카고에서 집회를 가졌다. 거기서 우리는 이근무 장로님이란 분을 만났다. 거무튀튀하고 소박한 인상의 장로님과 며칠을 지내며 우리가 받은 인상은 참으로 반듯한 분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목사님이 그분께 받은 인상은 더욱 깊었던 모양이다. 그분이 지난달 한국에 오셨을 때, 목사님은 정말 극진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자세로 이 장로님을 대접하시는 것이었다. 목사님은 그분이 있는 자리에서나 없는 자리에서나 동일한 인상을 말씀하시곤 했다.
“정말 반듯한 분이다. 나는 이 장로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다.”
그분은 하루 시간을 내서 시카고의 이곳저곳을 자세히 안내해주었다. 어느 관광가이드가 그렇게 소개해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 장로님은 해박한 지식으로 시카고의 역사로부터 소소한 뒷이야기까지 설명하며 안내해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분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내에 대한 극진한 사랑이었다. 치매에 걸린 아내를 마치 어린아이 돌보듯, 한시도 떨어지지 않은 채 사랑으로 보듬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마치 영화 ‘노트북’에서 치매에 걸린 아내의 기억을 잠시라도 되살려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하려는 주인공의 애절한 사랑을 보는 것 같았다. 그의 아내는 소녀 같은 부끄러운 웃음을 보이며 남편의 팔에 매달리곤 했다. 보는 이의 마음을 일견 아프게 하는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두 분의 금슬은 여느 젊은 연인들의 사랑 못지않게 깊고 아름다웠다.
시카고를 떠나던 날 아침, 이장춘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이근무 장로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목사님으로 하여금 시카고를 사랑하게 해주신 분은 바로 이 장로님이십니다.”
거듭되는 칭찬과 감사의 말에 몸 둘 바를 모르며 얼굴이 붉어지던 이 장로님의 순수한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목사님은 시카고를 떠나며 이근무 장로님과 작별을 고하는 자리에 함께 나온 아내를 따뜻하게 포옹해주셨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해주셨다. 옆에 서있던 이근무 장로님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금세라도 흘러내릴 것 같았다. 가슴 뭉클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한 사람으로 인하여 한 도시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말. 실감이 가는가? 세상 어느 곳에나 있는 지명(地名)들. 그러나 그 지명이 우리의 기억 속에 의미가 되고 추억이 되어 사랑하는 장소가 되는 것은 거기에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근무 장로님은 그분의 부드럽고 따스하고 반듯한 태도와 진심어린 말로 잊지 못할 시카고의 추억을 선물해준 것이다.
목사님은 자주 말씀하신다.
“나의 말과 행실은 내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항상 우리의 말과 행실에 반응하는 상대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열 사람의 의인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모세 한 사람으로 인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분노를 거두셨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믿음을 지키고 있는 의인들로 말세의 재앙을 늦추고 게신지 모른다. 나 한 사람의 선행이, 따스한 말 한마디가 나 하나뿐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 내가 사는 지역, 내가 사는 나라에 아름다운 이미지를 부여한다.
이국의 공항에 처음 내린 방문객은 그를 처음 맞는 택시운전사와 호텔리어, 식당 종업원의 말 한마디, 서비스 하나에 그 나라에 대한 인상을 갖게 된다. 교회에 찾아오는 새신자에게 우리의 말과 행실은 고스란히 그의 것이 되어 우리 교회에 대한 이미지, 믿는 자에 대한 인상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우리 믿는 자를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표현한 뜻을 잘 새기기 바란다.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고후2:15~16).
Henry H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