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릴 줄 아는 것이 지혜다 (레19:23~25)
요즘 텔레비전 광고에 “이것은 마치 고3이 되자마자 대학생이 되는 것과 같다.”는 카피가 있더군요. 이는 4G LTE 스마트폰의 스피드를 강조한 것인데, 실제 고3이 바로 대학생이 되는 경우는 없지요. 열심히 공부하면서 1년을 기다려야 대학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럼요. 이렇듯 범사에 때가 있고, 기한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참고 기다릴 줄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뭐든 빨리 빨리 해야 하고, 당장 손에 잡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우물에 가서 숭늉 찾는 식이지요. 그러나 올챙이가 개구리 되는 것도 시간이 필요하고, 임신한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 것도, 그 아이가 사람구실을 할 때까지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밥을 해도 뜸을 들일 시간이 필요하고, 라면을 끓여도 라면발이 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조급합니다. 장사를 시작해도, 공부를 해도, 연애를 해도, 교회를 개척해도, 다이어트를 해도 단기간에 많은 열매를 따려고 합니다. 그것은 급히 부자가 되고 싶고, 빨리 부흥하고 싶고, 얼른 성공하고 싶다는 거지요.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그런 자들을 향해 명백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잠28:20).
오늘 본문의 말씀은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행할 일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말씀하신 것인데, 그 중 가나안 땅에 들어가 과목을 심거든 3년까지는 과실을 따지 말고, 4년째 이르러서야 과실을 따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드리고, 5년째부터 너희가 과실을 취하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조급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장사를 해도 넉넉히 기다려야 정상궤도에 올라서고, 목회를 해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야 부흥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조급해서 3년 만에 과실을 취하면 당장은 좋을지 모르나 그 이후에는 큰 수확은 어렵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과수원을 경영하시는 분들께 여쭤보십시오. 과목의 열매는 보통 3년째부터 열리는데, 그때 그들은 많은 가지를 쳐주어 다음 해에 크고 실한 과실을 기약한다고 합니다. 멀리 보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욥기서에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잘 보십시오. 이는 즉시로 네 사업이, 네 교회가, 네 나라가 창대해진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때가 되면’, ‘뿌리 내릴 동안 참고 기다리면’ 나중에 창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대만의 역사가이고 사학자인 ‘백양’이라는 사람이 쓴 이야기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본 사람, 미국 사람, 중국 사람이 사방이 막힌 돼지우리 속에 들어가서 상금을 걸고 인내심 경기를 했답니다. 그런데 일본 사람은 그곳에 들어가자마자 ‘아이고, 숨 막혀 못 견디겠다.’고 나왔고, 미국 사람은 어느 정도 견디더니 “아이고, 더는 못 견디겠다.”고 나왔답니다.
그런데 중국 사람은 아무리 기다려도 안 나오더랍니다. 그래서 들어가 보니까 중국 사람은 아예 돼지를 베개 삼아 누워 자고 있더랍니다. 그는 말합니다. 승부의 결정요인은 ‘인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가요? 중국의 파워가 날로 심상치 않음을 우리는 봅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4).
사면초가 상태에 놓인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정말 죽는 게 낫겠다 싶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일을 시작했는데 도무지 수확이 없어 애타는 분들도 있을 줄 압니다. 그러나 여러분, 포기하지 말고 기다리십시오. 이는 당신의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당신이 재수 없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당신이 벌려놓은 일, 당신이 계획한 일의 뿌리가 내릴 시간이 필요합니다. 달걀을 깨트린다고 병아리가 나오는 것이 아니듯 당신의 조급함이 해결해 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달걀을 품고 기다려야 병아리가 나오듯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십시오. 분명히 하나님은 당신의 간구를 들으실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시40:1~2).
목회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주님은 제게 ‘명성(名聲)’이라는 두 글자를 보여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받잡고 저는 너무 좋았고,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바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후에야 알았습니다. 그 말씀을 받고 되레 엄청난 환난의 바람이 불어 닥쳤습니다.
이단의 괴수요, 인격 파탄자처럼 온 교계 매스컴이 저를 매도했습니다. 그 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하나님께 부르짖고 부르짖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다렸더니 2000년을 기점으로 하나님이 저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사 세계로 빼내셨습니다. 때가 되매 제게 주신 ‘명성’을 이루신 것입니다.
기다림, 인내의 원천은 하나님이십니다. 고멜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는 호세아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 품으로 돌아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또한 우리 주님도 오래 참으사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벧후3:15). 그래서 죄인인 우리가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상 중에 하늘의 별처럼 자손이 번성함을 보여주셨건만, 그는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하여 하갈의 몸에서 아들을 보아 집안도 시끄러웠고, 오늘날까지도 이스라엘과 아랍국 간의 영원한 분쟁을 낳았습니다. 사
울은 제사장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중죄를 범했습니다. 블레셋군과 대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흩어지기 시작하자 백성들을 결집시키려는 목적으로 사울은 사무엘이 기다리라는 이레를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하게 제사장직을 침해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삼상13:14).
성경에는 조급함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 거듭 말씀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속히 잡은 산업은 마침내 복이 되지 아니하느니라”(잠20:21), “지식 없는 소원은 선치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그릇하느니라”(잠19:2),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잠21:5)….
그러므로 우리는 인내를 배워야 합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가을을 기다리는 것처럼, 욥처럼 온전한 인내를 배워야 합니다. 제 아들들이 속을 썩였지만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결국 돌아옵디다. 원통하고 분이 터지는 일도 기도하면서 기다렸더니 다 밝혀집디다. 성공이라는 것도 기다림 끝에 옵디다. 세상이 아무리 스피디한 세상이라지만 기다림의 법칙은 유효합디다.
그러니 조급하지 마십시오. 괜히 속병만 생깁니다. 때를 기다리는 것이 지혜입니다. 기다림은 일을 이루기 위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기다려줍시다. 말 안 듣는 자식을, 속 썩이는 남편을, 마냥 넘어지는 새신자를, 생각대로 안 되는 사업을 기다립시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살전5:14).
신앙생활에도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인내 말입니다. 예수를 영접하면 바로 평안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많은 핍박과 시련이 옵니다. 그 때를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의 평안이 오고, 하늘의 면류관이 당신의 것이 될 것입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1:12).
대어를 낚기 위해서는 오래 기다려야 하듯, 큰일을 이루고자 하거든, 대업을 꿈꾸거든 기다림부터 배우십시다. 기다릴 줄 아는 자만이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할렐루야!
바람 불 때 연을 날리고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라
인내는 희망을 품는 기술이며
폭력보다 가장 강력한 정복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