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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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8호 목차 › 성경 에세이

무덤 앞에 서서

608호 · 2011-10-21

여보게

사람들은 죽음을 참 두려워하지. 오죽하면 4층도 F로 쓸까. 그만큼 죽는 게 싫고, 무섭다는 이야기지. 그러나 그것이 회피한다고 해서 회피되던가. 우리 모두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중인데 말일세.

나는 기도원에 가면 내 가묘 앞에 꼭 서보네. 그 기분은 뭐랄까….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군. 하지만 그 앞에 서면 나 자신이 굉장히 차분해지는 것을 느끼네. 막 달리던 자동차가 갑자기 선 기분? 그리고 내가 나에게 진솔해지고, 모든 소욕이 다 사라지지. 나를 돌아보고, 나를 진단하고, 나를 다잡는 데는 내 무덤만한 게 없더군. 그래서 기도원에 가면 내가 그곳에 꼭 들린다네.

요즘 관에 누워보는 체험을 하는 곳이 많이 생겨났다고 하더군. 관 속에 들어가서 잠시 동안이지만 뚜껑을 닫고 있다가 나오는 것인데, 거기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이것이라네. “욕심을 버리고 살아야겠다. 아등바등 살 것이 아니라 베풀면서 살아야겠다. 사랑하면서 살아야겠다.”

죽음이라는 문 앞에서 자신을 반성하고 뒤돌아보는 계기가 된 거지. 그러고 보면 죽음이란 것은 두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 물론 우리 믿는 자들에게 죽음은 축복과 영광으로의 초대이기도 하니까 더욱 그렇지.

여보게,

사람들이 왜 그렇게 악착을 떨고 사는가? 왜 남에게 못할 일 해가면서 그토록 치부하는가? 왜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사기를 쳐가면서 기어코 남을 이기려하는가?

그 이유는 딱 한 가지라네.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거라는 생각에서이고, 이 땅에서 누리고 떵떵 거리고 사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그러나 어디 영원히 사는 사람이 있던가? 누구나 잠시 잠깐 동안 이 땅을 사는 거라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은 것이지(시103:15).

다 놓고 갈 것들 때문에 싸우고, 헐뜯고, 기운 뺄 필요가 있을까?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는데 꼭 그래야 할까? 우리는 그러지 마세나. 너무 움켜쥐지 말고, 너무 악착 떨지 말고, 선한 마음으로, 베푸는 마음으로, 진실된 마음으로 살아 보세나. 얼마 전, 한 시대의 영웅이라 불리던 자도 가더군.

나는 웰빙(well-being)도 중요하지만, 웰 다잉(well-dying)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네.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 역시 중요하고, 그를 위해 꼭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잘 죽기 위해서는 뭘 준비해야 할까? 결국 사는 동안 잘 사는 게 잘 죽는 준비라네. 남에게 선을 베풀고, 서로 사랑하고, 남을 이해하고, 없는 자를 돕고….

그리고 그 기반이 되는 것, 예수님을 믿어야 웰 다잉 하는 것이 아닐까?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면 웰빙은 물론이고, 웰 다잉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지. 도랑치고 가재 잡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라네.

전도자의 말대로 인생은 헛되고 헛된 것이네. 그러나 인생 안에 예수님이 거하시면 달라지지. 예수님으로 인해 인생은 값지고, 귀한 것이 되는 거라네. 그럴 때 웰빙 인생이 되고, 웰빙 인생이 마감되면 웰 다잉이 되는 거라네.

자네도 가묘를 하나 만들어줄까? 내가 지금까지 한 말이 무엇인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금방 깨달을 걸세. 우리 웰빙 하고, 웰 다잉 하세.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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