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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3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고착된 사고의 틀을 깨라 (행1:1-11)

603호 · 2011-09-16

요즘 아이들에게 가방이 없어서 책보에 책을 싸가지고 다닌 일이며, 먹을 것이 없어 물로 배를 채우던 보릿고개시절 이야기를 하면 ‘설마’ 그럽니다.

전혀 이해도 안 되고, 상상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 중에 또 하나가 바로 화장실일 겁니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집에 변소가 있는 집이 흔치 않았습니다. 대부분이 공동변소였지요. 그것도 요즘처럼 물을 내리는 수세식이 아니라 푸세식으로, 변소 밑에는 쥐들이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래서 어쩌다 귀신 이야기라도 들으면 그 날 밤엔 변소 가기가 무서웠습니다. 방안에 화장실이 있는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들으면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 같지만, 5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실정이 대부분 다 그랬습니다. 우리 집도 셋째인 이시대 목사가 태어나기 좀 전에서야 집 마당 한편에 변소가 있는 집으로 이사했었으니까요.

그런데 변소에서 사는 쥐들은 사람들이 들어가면 놀라서 후다닥 도망가기 바쁩니다. 어쩌다 밑을 내려다보면 온 몸에 오물을 뒤집어쓴 쥐들이 잔뜩 겁에 질려서 조심스레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요, 쥐들은 다 그렇게 살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광에 들어가 보니 거기에도 쥐들이 있는데, 이놈들은 변소에 있는 쥐랑은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털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게 마치 밍크 같고, 토실토실한 것이 사람이 들어가도 그리 놀라는 기색도 없이 되레 당당하게 사람을 쳐다봤습니다.

왜 그럴까요? 같은 쥐인데, 왜 그렇게 다르게 살까요? 그것은 생각의 차이입니다. 어떤 생각을 가졌느냐가 쥐팔자를 상팔자로 만들기도 하지만, 똥이나 먹고 사는 똥쥐로 살게도 한다는 것입니다.

변소에서 사는 부모 쥐는 자식 쥐들에게 아마도 그랬을 겁니다. “우리 팔자에는 이곳이 적격이야. 냄새가 좀 나긴 해도, 조심만 하면 먹고살 만한 곳이란다.” 그래서 그 자식들은 똥간이 전부인양 거기서 사는 겁니다. 그러나 광 속에 사는 부모 쥐의 생각은 다릅니다. “쥐라고 떨어진 쌀이나 먹고 살란 법은 없단다. 여기 곳간에서 맘대로 먹고 살아라. 혹 이곳에서 쫓겨난다고 해도 너른 들을 봐라. 거기에는 풍성한 곡식이 널려 있다. 그것이 다 너희 것이니 염려 말아라.”

변소의 똥쥐 신세로 살겠습니까? 아니면 곳간에서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쥐로 살겠습니까? 매일 초라하고, 남의 눈치나 보며 떠는 자로 살겠습니까? 아니면 마음껏 누리며 남에게 주는 빛나는 자로 살겠습니까? 저는 물론 사랑하는 우리 성도들 모두가 후자로 살기를 바라고, 또 그렇게 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무리 기도해도 여러분이 고착된 사고의 틀을 깨지 않으면, 당신은 변소의 똥쥐 신세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의 차이가 인생을 바꾸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나는 안 돼.’, ‘나는 못해.’, ‘이게 내 팔자야.’ 한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제가 누차 말씀 드렸듯이,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여러분의 생각이 보이는 당신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팔자대로 산다고 합니다. 팔자가 뭡니까? 바로 고착된 생각입니다. ‘나는 이렇게 살아야 돼. 이 이상은 안 돼.’ 이게 팔자입니다. 그런데 그 고착된 생각을 파하면 당신의 새로운 미래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서커스단의 코끼리를 보십시오. 왜 코끼리가 건드리면 뽑히고도 남을 썩은 말뚝에 매여서 덩치에 맞지 않게 재주를 부리고 있는 줄 압니까? 바로 팔자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 고착된 생각의 틀을 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집의 연산홍 이야기, 제가 많이 비유로 듭니다. 화분에서 3년 정도 자란 연산홍을 정원에 옮겨 심었는데도 그게 도무지 자라지 않아서 왜 그런가 하고 뽑아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연산홍의 뿌리가 화분에 있던 그 모습대로 돌돌 말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예사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뿌리 끝을 잘라내고 심으라고 해서 그대로 했습니다.

지금은 정원에 있는 바위를 덮을 만큼 크게 자랐습니다. 화분모양대로 말려 있는 뿌리, 그것이 팔자요, 그것이 고착된 생각입니다. 그것을 잘라내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환경에 살아도, 아무리 너른 곳에 살아도 그 팔자가 그 팔자인 것입니다. 팔자를 잘라내고, 고착된 생각을 잘라낼 때 비로소 연산홍이 자라듯, 우리의 인생도 활짝 만개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악한 것들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우리 마음속에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패배의식을 불어넣으면서 “그냥 이대로 살아. 네가 그렇게 사는 것은 하나님이 너를 버렸기 때문이야.” 라고 속닥거립니다. 그래서 좌절하게 하고, 낙담하게 하여 하나님을 멀리 떠나게 합니다.

그러나 속지 마십시오. 어떤 부모가 자식을 버리겠습니까? 자식이 그 부모를 떠날지언정 부모가 어찌 자식을 잊겠습니까? 산이 늘 그 자리에 있듯, 바다가 늘 그 자리에 있듯, 부모는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 하나님도 늘 그 자리에 계십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는 것이지, 하나님은 당신을 버린 적도, 떠난 적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독자를 죽여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런 분이 우리를 버리겠습니까? 예수님이 흘린 피가 아까워서도 우리를 못 버리실 겁니다. 마태복음 7장에 있는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9~11).

악한 부모도 제 자식은 챙기는데, 하물며 좋으신 우리 하나님이 당신을 팔자라는 틀에 매여 놓겠습니까? 변소에서 똥이나 먹고 사는 쥐로 만들겠으며, 말뚝에 매인 코끼리 신세를 만들겠습니까?

하나님은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놓으셨습니다. 당신이 생각만 바꾸면 세상은 달라지고, 당신의 운명도 바뀝니다. 생각을 바꾸는 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당신이 해야 합니다. 왜냐? 생각의 주인은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생각을 초월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생각을 바꾸십시오.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패배의식을 성공의식으로, 회의적인 생각을 적극적인 생각으로 바꾸세요. 한 마디로 축약하자면 온전히 하나님의 생각으로 바꾸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예비해 놓은 것들이 다 당신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23:7)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파란 안경을 끼면 세상이 파랗게 보입니다. 빨간 안경을 쓰면 빨갛게 보이고요. 긍정적인 안경, 할 수 있다는 안경을 쓰면 세상에 불가능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늘 ‘우리에게 불가능은 없다. 불가능이란 생각이 존재할 뿐’이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병에 오렌지 주스를 넣으면 오렌지 주스가 나오지 콜라가 나올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곧 똥 넣으면 똥 나온단 말입니다. 그러므로 생각을 바꾸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버려서 당신의 삶이 형편무인지경이 된 것이 아니라 당신의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패배의식이 당신을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여자라고 큰 생각을 못합니까? 키가 작다고 진취적인 생각을 못합니까? 못 배웠다고요? 아닙니다. 결단하면 됩니다.

질그릇이라도 보화를 담으면 귀한 그릇이 됩니다. 우리가 비록 질그릇 같은 존재라고 할지라도, 우리 안에 성령을 담았기에 우리는 귀한 존재입니다. 성령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입니다. 곧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니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으로 당연히 변환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분에게는 불가능이 없고, 어떤 회의나 패배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머리가 되고, 남에게 주는 신명기 28장의 축복의 주인공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육체의 장애인은 장애인이 아닙니다. 정신적 장애인이 장애인인 것입니다. 오늘 고착된 사고의 틀을 깨고 생각을 바꿉시다. 생각이 바뀌면 미래가 달라집니다. 박수치며 꽃다발을 들고 달려올 여러분의 미래가 기다립니다. 할렐루야!

병에 주스를 담으면 주스가 나오고

병에 똥을 담으면 똥이 나온다

생각은 부동의 자산이다

생각의 주인은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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