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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8호 목차 › 성경 에세이

품 안의 자식

598호 · 2011-08-12

여보게,

우리끼리 얘긴데 솔직히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은 없지만, 더 예쁜 손가락은 있지 않은가? 자식 중에도 더 예쁘고 편한 자식이 있기 마련이지.

얼마 전에 우리 어머니를 뵙고, 이제는 장남인 내가 모시겠다고 했더니, 어머니께서 “나는 셋째랑 살다가 셋째 품에서 죽을란다. 셋째가 제일 편해. 호은 엄마도 제일 편하고.”라고 하시더군.

그러시면서 이 말씀도 덧붙이시는 거야. “셋째는 지금도 엄마라고 부르는데, 너는 어머니라고 부르잖니? 벌써 거리가 느껴져.” 그러고 보니 언젠가부터 나는 ‘어머니’라는 호칭을 쓰고 있더군. 그런데 셋째는 여전히 ‘엄마’라고 부르며 아침저녁으로 어머니와 함께 있으니, 셋째가 편하고 좋을 수밖에.

나는 어머니 말씀을 듣고 야곱과 에서가 생각났네. 내가 생각건대 야곱은 분명 ‘엄마, 엄마’ 부르며, 엄마 가까이에서 생활을 했을 걸세. 반대로 에서는 장남입네, 사내입네 하고 목소리를 깔고 어머니라고 불렀을 거고, 사냥한다고 밖으로만 돌았을 걸세. 그러니 리브가가 야곱을 더 끼고 돈 것이 이해가 되네.

여보게,

하나님도 동일하시지 않을까 생각하네. 하나님의 마음도 우리 어머니의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걸세. 하나님 아버지도 우리 모두를 사랑하시지만, 더 사랑하는 자가 분명 있다는 것을 성경을 읽으면 알게 된다네.

바로 품 안으로 들어오는 자식, 격을 두지 않는 자식에게 더 애정을 느끼시더군. 하나님이 다윗을 유독 사랑하신 것은 그의 품성 때문이거나 그의 믿음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는 그가 어린 아이처럼 품에 기대고 들어갔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네. 또 다윗이 법궤가 들어왔을 때 바지가 내려가거나 말거나 아이처럼 뛰며 기뻐하지 않았는가.

자식은 늙어도 부모 앞에서는 자식이라네. 우리 어머니가 나에게 차 조심하고, 몸조심하라고 당부하는 것을 봐도 자식은 나이 들어도 자식이라네. 근데 내가 어른인 체 하는 것이지. 그게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과 격이 생기는 것 같아서 섭섭한 모양일세. 하물며 하나님 앞에서 어른인 척 목에 힘주고, 가까이 하지 않고 밖으로만 돈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로 가겠는가.

그래서 나는 우리 성도들에게 항상 신앙에서는 어린 아이가 되라고 한다네. 하나님 앞에 따지지 말고, 하나님 말씀에 토 달지 말고, 잘못한 일이 있어도 도망가지 말고 무조건 하나님 품속으로 파고들라고 말일세. 품안의 자식이 예쁜 법이니까.

애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어디가 아파도, 다 부모만 찾지 않던가? 어린 애들이 부모 능력 봐줘가며 졸라 대던가? 무작정 조르고 떼를 쓰는 게 자식이지. 그런데 사실 그런 자식이 더 예쁘지 않던가. 하나님 앞에 무조건 떼쓰고, 어리광부리고, 엄마 젖 물어뜯는 그런 자식이 되게.

우리 어머니 보니까 “왜들 그러냐? 엄마도 힘들다.” 그러시면서도 얼굴에는 싫은 기색이 없으시더라고. 하나님도 분명 그러실 걸세. 하나님께 조르고, 조그만 일만 있어도 쪼르르 달려가면 하나님이 귀찮다 하실 것 같지만,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흐르실 것일세.

하나님 앞에서는 영원히 응석받이 자식이란 것을 잊지 말게.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눅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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