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원하시는 삶
지난 19일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직분자 세미나가 있었다. 강사인 이시대 목사님은 이날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 읽어가며 산상수훈에 관해 설명하셨다.
“산상수훈은 예수님께서 군중 앞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산상수훈을 들어보면 여러 가지 말씀이 나오는데, 그것은 딱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그것은 예수님이 원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예수님이 원하는 삶은 어떤 삶인가 하는 것이다.
사람의 시각에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시각에서 원하는 사람과 예수님이 원하는 삶을 말씀하신 것이다.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물론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까지도 다분히 세속적이었고, 율법적이었기에 예수님은 삶의 기준과 목적을 명확하게 제시하신 것이다.
마태복음 5장 3절에서부터 12절까지를 우리는 ‘팔복’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복의 여덟 가지 유형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살면 이런 복을 받는다, 즉 ‘내가 원하는 삶을 살라’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내포되어 있다.
즉 심령이 가난한 삶을 살면 천국이 너희 것이 되고, 온유하게 살면 땅을 기업으로 받고, 의에 갈급한 삶을 살면 배부르게 되고… 이런 것이다.
그 뒤에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는 등의 말씀은 액면 그대로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사랑하고 화목하라는 말씀이고, 남의 여자나 남자와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깨끗한 삶을 살라는 말씀이다. 맹세하지 말라는 말씀은 맹세하지 않아도 네 말을 믿을 만큼의 진실된 삶을 살라는 거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진의를 파악해야 한다.
나는 이 산상수훈은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성령의 열매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인데, 그런 삶이야말로 예수님이 원하는 삶이라는 것이다. 이는 성자의 수준이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런 삶을 원하신다. 그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11:29)고 하셨다.
산상수훈의 결론은 마태복음 5장 48절이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곧 하나님처럼 온전한 삶을 우리 삶의 기준에 두고 살라는 말씀이다. 그럴 때 천국이 우리의 것이 되고, 그럴 때 복이 넘치고, 예비된 상의 주인공이 된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 삶은 어떤가? 우리 심령의 상태는 어떤가? 우리는 예수님이 원하는 사람이 되기 전에, 예수님이 원하는 삶을 살기 앞서 먼저 복부터 달라는 앞뒤도 없는 사람은 아니었는가? 예수님이 원하는 사람과 삶이 될 때 복은 자연 따라오게 되는 것인데 말이다.
총회장 목사님이 돈의 노예가 되지 말고 주인이 되라고 하신 말씀은 곧 예수님이 원하는 사람과 삶이 될 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녀는 아비를 닮는 법,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 하나님의 성품에 이르도록 노력하며 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