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사람은 노는 물이 다르다 (시1:1~6)
숯을 가까이 하면 검정이 묻고, 생선가게에 가면 생선냄새가 배게 되어 있습니다.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으면 똥냄새가 배지만, 화장품 가게에 오래 있으면 향기가 몸에 뱁니다.
같은 맥락으로 또 봅시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친구를 사귀면 나도 열공 모드가 됩니다. 그러나 매일 학교 땡땡이나 치는 친구를 사귀면 어느 순간, 몰래 학교 담을 넘어 오락실에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게 되어 있고,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은 노는 물이 다릅니다. 생활방식이나 사고자체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같은 물에서 놀아서야 되겠습니까?
저는 여러분이 복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시편 1편에 나오는 복이 여러분의 소유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러려면 노는 물을 갈아타야 합니다. 지금까지 흙탕물 같은 세상에서 죄와 뒤범벅이 되어 살았다면, 이제는 생수 속으로 들어와 생명을 꽃피우고, 열매를 맺어 거둬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아야 합니다.
악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근원적으로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요, 죄는 바로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하라는 것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중 가장 기본이며, 근간이 되는 것이 바로 주일성수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20:8). 하나님이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셨건만 경히 여기고 있으니, 이것이야 말로 가장 큰 죄요, 악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주일을 공일(空日)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놀러가고, 푹 쉬며 하루를 보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 다릅니다. 물이 다릅니다. 우리에게는 주일(主日)입니다. 이 날은 우리의 주인이시오, 주군이신 예수님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그 분을 위해 하루를 거룩하게 보내야 합니다. 교회에 나가 하나님의 낯을 뵙고, 그 분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청종해야 하며, 그 분을 찬양하고, 그 분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날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은 바른 예배의 시작이요, 주일을 지킬 때 하나님을 향한 경근(敬謹)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사 사장님 딸이 결혼한다고 하면 거기로 먼저 달려갑니다. 거래처에서 돈 준다고 하면, 수주 딸 일 있으면 주일에 교회는 뒷전입니다. 목에 힘 좀 주는 자가 만나자고 하면, 방귀 꽤나 뀌는 사람이 만나자고 하면, ‘아이고, 하나님’ 하고 쫓아갑니다.
그래놓고 하나님께 복 달라고 하면 하나님이 “그래, 여기 있다.” 하실까요? 신앙의 기초가 주일성수일진대, 기초가 그 모양 그 꼴이어서야 고층 빌딩을 지을 수 있을까요? 올리다가는 넘어져서 대형 참사만 날 텐데요. 그런 자에게 하나님의 큰 은혜는 절대 부당하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기독교는 모든 복을 받을 수 있는 축복의 종교입니다만, 신앙의 기초가 되어있지 않는 자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통계가 있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경제학자인 로버트 배로(Robert J. Barro) 교수가 20년간 세계 60개국을 통계적으로 연구한 것인데요. 그 결과를 보면 예배 참석율과 경제적인 삶이 상호보완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에 참석을 잘하는 나라일수록 잘 살고, 예배 참석을 못하는 나라일수록 못산다는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니까요. 신명기 28장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 받을 복이 얼마나 크고 어마어마한 지를요. 더불어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는 자,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자가 받을 대가도 간과하지 마시고 꼭 읽어보십시오.
“어쩌다 빠질 수도 있고, 안 갈 수도 있지, 사람이 왜 그리 융통성이 없고, 왜 그리 유별나게 예수를 믿느냐?”고 하시는 분들, 유별나지 않고 박사 땁디까? 유별나지 않고 올림픽 나가서 금메달 땁디까? 우리는 도상 위의 주자입니다. 하늘나라에는 승패만 있는 줄로 알면 착각입니다. 하늘나라에는 순위도 매긴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악과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빛과 어두움이 공존할 수 없고, 기름과 물이 하나 될 수 없듯이, 악과 선이, 죄와 의가 하나 될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잠언 1장에 있는 말씀처럼 악한 일을 도모하자며 우리를 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달라야 합니다. 노는 물이 달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그들과 하나가 되어 뒹굴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습니다.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잠1:26~28).
지금 물을 갈아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악의 뿌리가 깊어져서 뽑히지 않을 것입니다. 작년에 심은 나무는 금방 뽑히지요? 그러나 2년만 지나도 한참을 흔들어야 뽑히고, 더 오래된 나무는 뽑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 악과 절연해야할 이유입니다. 지극히 작은 죄도 회개하고 지금 돌아서서 하나님의 법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어른 대변만 똥입니까? 아이 똥도 똥이고, 파리똥도 똥인 겁니다.
저는 집안의 종손이자 장남입니다. 그러다보니 제사 문제가 큰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악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울어대는 어머니 때문에 가슴은 아프지만 제사를 파했습니다. 만약 정 때문에 믿지 않던 우리 가족들과 같은 물에서 지금까지 놀았더라면, 오늘의 이초석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 책으로 영혼을 채웁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혼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먹습니다. 노는 물만 다른 게 아니라 먹는 것도 다른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영혼이 강건하여져서 악한 마귀와 그의 추종자 귀신들과 싸울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죄와 악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세상 사람들과 같은 물에서 놀지 않고 나올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가 죄악의 주관자인 악한 영적 존재와 싸워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성령의 검이기에 그것이 가능하며, 그런 자에게 하나님의 축복은 쏟아질 것입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1:8).
물을 갈아탄다는 것은 곧 환경을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푸세식 변소였던 시절, 변소에 갈라치면 변소 안에 살던 쥐들이 놀라 후다닥 숨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쥐들은 온 몸에 똥을 묻히고 꾀죄죄한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곳간에 가보면 거기에 있는 쥐들은 털에 윤기가 자르르한 게 통통하니 팔자가 늘어져보였습니다.
쥐도 환경에 따라 그렇게 달랐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범을 잡으려면 범이 있는 산에 들어가야 하고, 전복을 따려면 바다에 들어가야 하고, 꿀을 따려면 벌이 있는 곳에 가야 하듯,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환경 안으로 들어가야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틀을 깨고 나가서는 안 됩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 끼리끼리 노는 것을 말합니다. 그럼요, 돌고래는 피라미와 놀지 않고 돌고래끼리 놉니다. 까마귀 가는 곳에 백로는 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 사람들과 노는 물이 분명 달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환경 안으로 어서 들어오십시오, 그것이 바로 구분된 삶이요, 거룩한 삶인 것입니다. 그런 자에게 시편 1편의 축복이 따를 것입니다.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찌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렘17:8). 할렐루야!
새로운 물에서 놀려면
환경과 생각을 바꿔라
돌고래는 돌고래끼리 놀고
피라미는 피라미끼리 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