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제일이다
요즘 뉴스를 통해 듣게 되는 사건사고 소식은 세상이 얼마나 사랑에 메말라 있는지를 보여준다. 만삭의 부인을 살해한 의사를 비롯해 유명 대학교수가 4번째로 재혼한 아내의 재산을 탐하여 결혼 몇 개월 만에 내연녀와 계획적인 살해를 도모한 사실은 세상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 지식을 가르치는 교수 등 사회에서 인정받는 엘리트 지식인에다 풍족한 물질까지 모두 갖춘 그들에게 ‘사랑’은 너무나 생소한 단어였나 보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이러한 범죄자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 누구도 사랑이 가장 고귀한 것임을 가르쳐준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세상의 지식, 명예와 돈을 얻는 방법은 넘쳐나는데, 정작 그 모든 것이‘사랑’위에 존재할 때 비로소 빛날 수 있다는 사실을 가족도, 친구도, 연인도, 직장도 그들에게 가르쳐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우리를 더욱 씁쓸하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계명이 가장 크냐고 묻는 율법사에게‘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와 같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22:34~40)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이 부활의 길이라며(요10:17), 기꺼이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 위에 대속물로 내놓으셨다. 또한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셔서(요13:1), 부활 이후 자신을 부인한 배신자 베드로를 직접 찾아가 위로하시며 사랑을 완성하신다.
여기서 베드로는 예수님의 완전한 사랑 앞에 무너진다. 3년간 예수님 곁에서 귀신을 내쫓고 복음을 전했으면서도 결국 억척스런 뱃사람으로 돌아가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던 그가 변화된 것이다.
예수님을 잡으러 온 말고의 귀를 칼로 베어버리는 다혈질의 모습도, 초막을 짓고 물위를 걷겠다며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던 모습도 사라지고,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면 이방인에까지도 기꺼이 복음을 전하겠다며 머나먼 고넬료의 집으로 향하는 충성과 순종의 사도로 바뀌었다.
만약 예수님께서 자신을 배신한 베드로를 끝까지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극단적인 성격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을 증오해 범죄자가 되었을 수도 있다. 혹은 예수님을 배신한 자책으로 인해 우울증에 걸려 유다처럼 자살을 결심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이처럼 베드로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켜준 키워드는 단 하나 ‘예수님의 완전한 사랑’이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나는 이 한마디가 하나님이 얼마나 완전한 분이신지를 전부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문제의 해결점이 비록 흔한 말이지만, 그 ‘사랑’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한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지 못하고 나의 만족과 유익만 돌보면, 그 곁에서 소외된 누군가는 돌이킬 수 없는 아픈 삶을 살게 되고 그 가시가 우리를 찌를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느 곳에 있던지,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을 사랑하자! 그리고 그 분이 사랑하시는 내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자! 그리할 때에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알고(요13:35), 그 사랑 가운데 변화되어 빛과 소금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요일3:1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