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유산
가끔 대형 할인점을 들를 때면 참 안타까울 때가 있다. 떼를 쓰는 아이들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는 부모들의 모습을 대할 때다. 아이들 입장에서야 자기 생각과 요구를 설명할 길이 없으니까 그러는 것일 테지만, 그러나 그 중에 어떤 애들은 좀 심하다 싶기도 하다.
자지러질듯 소리 지르며 울며 땡깡 부리는 것도 모자라 아예 땅바닥에 드러눕기까지 한다. 부모 입장에서 속은 상하지, 아이는 자지러지지, 게다가 주위의 시선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으니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으로 그 긴박한(?) 사태를 대충 무마시키려는 경우가 다반사다.
사실 상황이 어떠했건, 무엇 때문에 그러하건,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이런 일쯤이야 한두 번쯤은 자연스레 겪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니까 어쩌다 그럴 수도 있겠지.’ 싶지만, 매번 악다구니를 부리듯 이런 식이라면 부모 스스로도 자신들의 교육 방법을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평소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던 한 어머니가 덕망 높기로 소문이 자자한 어느 유명한 학자를 찾아갔다.
“어떡하면 제 자녀들을 잘 양육할 수 있을까요?”
넌지시 바라보던 학자는 그녀를 정원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마침 정원에 심겨져 있던 네그루의 나무를 뽑아보라고 지시했다. 그녀는 묵묵히 나무 앞에 다가섰다. 노학(老學)의 지시엔 무언가 다 뜻이 있을 것이라 여긴 것이다.
첫 번째 나무는 아주 쉽게 뽑혔다. 이제 갓 심어 놓은 때문이었다. 두 번째 나무는 약간 힘이 들어가긴 했지만 비교적 수월하게 뽑혀 나왔다. 이 또한 그리 오래전에 심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 번째는 달랐다. 심은 지 꽤 시간이 지난 나무였던지 한참 동안 실랑이를 한 끝에 겨우 겨우 뽑아 들었다. 그런데 마지막 네 번째 나무는 도무지 미동조차 없다. 얼마나 견고하게 뿌리를 내렸던지 젖 먹는 힘까지 써보았지만 그 모습 그대로였다. 이미 온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버렸건만….
그 순간 노학(老學)이 입을 열었다.
“자녀 교육 또한 이와 같지요. 습관이 오래되어지면 이것이 삶 속에 깊이 뿌리를 내려 바로잡기란 게 여간 힘든 것이 아니랍니다. 자녀를 잘 키우길 원하십니까? 이제부터라도 자녀들에게 좋은 습관을 갖게 하세요.”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무엇일까? 돈이나 든든한 배경일까, 아니면 학식? 뭐, 다 좋다. 하지만 건강한 믿음과 좋은 습관만큼 훌륭한 유산은 없을 것이다!
자녀 교육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수산나 웨슬레,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바로 그녀다.
그녀는 평생에 19명의 아이를 낳아 모두를 훌륭히 길러내었다(비록 중간에 아홉을 잃기는 했지만). 그녀의 자녀 양육 방법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모든 자녀를 두 번씩 낳았다고 전해진다. 첫째는 그들의 몸을 낳았고, 두 번째는 반듯한 성품을 낳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녀는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 특별히 28개의 분명한 원칙을 정하고, 평소에 이를 실천에 옮겼다고 한다. 그중 눈에 띄는 몇 가지는 이러하다.
① 어떤 실수를 했더라도 자발적으로 고백하면 용서하라.
② 애가 울며 억지를 부린다고 해서 무조건 이를 받아 주지마라.
③ 선한 일, 모범이 되는 일을 했을 때는 반드시 칭찬하고 보상하라.
④ 약속한 것은 지극히 사소한 일이라도 꼭 지키게 하라.
어릴 때부터 갖게 되는 습관의 차이는 인생의 큰 차이로 나타난다. 어쩌면 ‘모든’ 차이가 이때 형성되는지도 모른다. 때문에 처음부터 올바른 습관을 키워야 한다. 미국 공교육의 아버지라 불리던 호레이스 만(Horace Mann)은 ‘습관은 케이블과 같다. 매일 한 가닥씩 꼬다보면 결국 도저히 끊어버릴 수 없게 된다.’고 했다. 공감이 간다.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그러나 결코 가벼이 흘려들을 수 없는 속담이 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
지금 우리 자녀들을 유심히 관찰해 보자. 그들에겐 어떤 습관이 형성되어 있는가! 혹여 지금부터라도 잘라버려야 할 싹은 없는가? 자극하고 격려해주면 인생의 근간(根幹)이 되어줄만한 소중한 습관은 없는가? “예루살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23:26).
-Joseph S.
